뉴스를 보니 지난해 미국인들이 신청한 파산이 160만건에 달한다고 하더군요.
LA카운티도 예외가 아니어서 지난해 파산신청 건수가 그 전해에 비해 54%나 늘었다는 겁니다.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현실은 여전히 냉혹하고 차가운 것 같습니다.
한인 변호사들에게 문의해 보니 한인들의 파산도 비슷한 추세라고 설명하더군요. 경기침체의 삭풍이 한인들만 비켜 갈 수는 없는 일이겠지요. 파산은 여러 가지 이유로 초래됩니다. 도덕적인 해이와 판단 착오, 능력 부족 등 개인적인 원인들도 작용하지만 전반적인 경기침체와 실직, 급작스런 부동산 시장 붕괴 등 개인으로서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외적인 요인들이 작용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당신들 역시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가항력적인 이유로 파산에까지 이르렀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파산이 바람직한 경험이 될 수는 없는 일이죠. 하지만 파산이 일단 현실로 다가온 이상 이를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파산이 자랑스러운 계급장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수치스러운 일도 아니죠. 불편해진 상황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한인들은 체면을 중시하는 사고방식 때문인지 파산을 현실로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만약 지금 당신들이 이런 생각에 발목이 잡혀 있다면 한시라도 빨리 털어버리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실패자라는 심리적인 낙인을 찍는 일을 가장 경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미국의 파산법은 실패자에게 한번 더 기회를 주자는 취지로 생겨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경쟁사회에서 낙오와 실패는 불가피합니다. 이들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지 않은 채 영원히 도태시킨다면 그 사회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싸움만 있을 뿐 도전과 창의성은 사라지게 됩니다. 미국은 일찌감치 이것을 간파했습니다. 그래서 파산하는 기업과 개인들을 죄인 취급하기보다는 회생기회가 필요한 대상으로 여깁니다. 이런 관용은 일부의 파산법 악용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개척자 정신을 유지하는데 크게 이바지해 왔습니다.
이번 NFL 시즌 중 가장 화제를 모았던 선수는 필라델피아 이글스의 쿼터 백 마이클 빅이었습니다. 그는 투견혐의로 2년 가까이 복역한 ‘전과자’입니다. 그런 빅이 과연 재기할 수 있을지 의구심의 눈초리가 쏠렸지만 이글스가 그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었고 그는 이것을 최대한 살려 완벽한 부활을 알렸습니다.
개를 잔인하게 다룬 빅을 여전히 용서하지 않는 미국인들이 많이 있지만 빅의 재기 스토리가 깊은 영감을 준 것은 사실입니다. 빅은 개인적으로 파산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채권자들과의 합의를 통해 채무조정을 받은 후 최소한의 돈으로 생활하면서 현재 열심히 빚을 갚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그가 그라운드에서 열심히 뛸수록 그 속도는 빨라지겠지요.
파산한 한인들에게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사자성어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를 뜻하는 이 말은 간사한 꾀로 사람을 속여 희롱하는 것이나 눈앞의 차이에만 마음이 팔려 그 결과가 같음을 모르는 어리석음을 뜻합니다. 그런데 한 동양철학자는 이것을 이렇게 풀이하더군요. “인생을 결산해 보면 얻은 것과 잃은 것의 합은 결국 같다”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초반에 얻은 것이 많은 사람은 후반에 무너지는 경우가 많고 한 곳에서 손해가 난 사람은 다른 곳에서 이익을 얻는 수가 많다는 거죠. ‘성패 총량 보존의 법칙‘이라 이름 붙일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러니 지금 실패했다고 너무 낙담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이런 풀이가 무슨 큰 위로가 되겠습니까마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잃지 않는다면 재기의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질 것입니다. 물론 실패에서 배운 교훈을 잊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겠지만 말입니다. 검은 구름이 하늘을 덮어도 먹구름을 뚫고 내려오는 한줄기 햇살은 항상 있는 법입니다.
실패의 경험 없이 진정한 성공을 이루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파산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일 뿐입니다. 당신들이 멋지게 다시 일어선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기 바랍니다. 이 칼럼이 그런 가슴 뛰는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지는 것을 상상해 봅니다. 그런 날이 머지않아 오리라 기대합니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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