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의 눈물, 남성의 반응 상관관계
▶ ‘성적 거부 메시지’ 화학신호 밝혀져
흔히 “여성의 최대 무기는 눈물”이라고 한다. 아무리 무지막지한 사내라 해도 눈물을 흘리는 여인 앞에선 일단 한풀 꺾인다. 여성의 눈물이 일시적이나마 남성을 ‘무장해제’ 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과학전문지인 ‘저널 사이언스’는 최근 여성의 눈물은 단순한 감정표출이 아니라 남성의 ‘성적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화학신호(chemical signals)’라는 내용의 논문을 실었다. 이 논문을 작성한 이스라엘 와이즈만 연구소의 연구진은 여성이 흘린 눈물의 냄새를 맡은 남성들의 경우 성적흥분이 둔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와이즈만 연구소의 신경생물학 교수이자 논문작성자 가운데 한명인 노암 소벨 박사는 “화학신호는 언어의 한 형태”라며 “우리가 밝혀낸 바에 따르면 여성이 흘리는 눈물의 화학신호는 ‘No’혹은 ‘지금은 안되요’라는 성적인 거부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남성의 눈물이 전달하는 화학신호는 무엇일까. 소벨 박사는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언제 어디서건 힘들이지 않고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했는데, 남성 지원자가 단 한명밖에 오지 않아 일단 여성의 눈물로 연구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광고를 보고 연구소를 찾은 70명의 ‘울보’ 여성들 가운데 필요할 때마다 자유자재로 눈물을 철철 흘리는 ‘수도꼭지’는 6명으로 이들이 ‘눈물 은행’ 역할을 담당했고, 나머지는 비상시에 대비한 ‘보조 저수지’ 역을 맡았다.
실험에 사용할 눈물은 필요할 때마다 조그만 유리병(바이얼)에 1밀리씩 받았다. 수집한지 두 시간이 경과한 눈물은 사용할 수가 없기 때문에 6명의 ‘수도꼭지’들은 수시로 연구실로 달려와 울어야 했다. 소벨 박사와 연구원들은 여성 자원봉사자의 뺨에 생리식염수를 흘린 뒤 이를 수거하는 방식으로 ‘짝퉁 눈물’도 만들었다. 일단 진짜와 짝퉁 눈물을 확보한 연구진은 한쪽 면에 끈끈이가 부착된 패드에 하루는 진짜를, 그 다음날에는 가짜 눈물을 뿌린 뒤 실험에 참여한 20대 후반 남성들의 코밑에 붙여주었다. 끈끈이 패드를 코와 입술 사이의 인중에 붙여두면 우는 여성을 포옹할 때와 거의 비슷한 눈물 냄새 전달효과를 갖게 된다.
첫 번째 실험은 이들에게 여성의 사진을 여럿 보여준 뒤 성적매력을 평가해보라는 것이었는데, 진짜 눈물 냄새를 맡은 날 더 낮은 점수가 나왔다. 반면 슬픈 영화에 대한 반응은 동일했다. 자원봉사자들을 진짜 눈물 냄새를 맡은 그룹과 생리식염수 냄새를 맡은 그룹으로 나누어 최루 영화인 ‘챔프’를 보게 한 뒤 실시한 반응검사에서 양측은 감정적 수준의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수준은 진짜 눈물 냄새를 맡은 쪽이 훨씬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마지막으로 연구원들은 뇌영상법을 이용한 실험을 실시했다. 혈기왕성한 20대 남성 자원봉사자들에게 ‘야동’ 수준의 영화 ‘나인 앤 하프 위크’의 유럽 상영판을 감상케 한 뒤 MRI촬영을 통해 뇌 특정부위의 반응을 들여다본 것.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진짜 눈물냄새를 접한 남성들은 성적흥분을 관장하는 부위의 활동이 짝퉁 눈물에 노출된 남성에 비해 둔회된 것으로 나타났다.
처음 실험을 시작할 당시 연구진은 눈물의 화학신호가 슬픔이나 공감을 촉발하는 것으로 가정하고 이를 과학적으로 입증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초기실험에서 여성의 눈물은 남성의 기분(mood)이나 공감(empathy)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대신 여성의 눈물이 남성의 성적흥분에 찬물을 끼얹는 효과를 가져 온다는 엉뚱한 증거가 발견됐고, 이에 따라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춘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되었던 것.
눈물은 크게 ‘반사적 눈물(reflexive tears)’과 ‘감정적 눈물(emotional tears)’로 구분된다. 양파껍질을 벗길 때 저절로 나오는 눈물이 반사적 눈물이다. 동물의 눈물도 반사적이다. 지구상의 동물 가운데 감정적 눈물은 인간만이 흘린다.
‘반사적 눈물’과 ‘감정적 눈물’이 화학적 구성성분이 다르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는 세인트 폴 소재 리저널 하스피탈의 알츠하이머 연구센터 소장이자 생화학자인 윌리엄 H. 프레이 박사는 이스라엘 연구진의 논문은 “울음이 스트레스와 관련된 독소 제거 작업이라는 내 이론과 양립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왜 눈물이 성적흥분을 가라앉히는 효과를 내는 것인지에 대한 원인규명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벨 박사는 여성의 눈물이 “성적 거부의 화학신호를 전달하는 이유는 수수께끼”라고 시인하고 “여성이 생리기간에 훨씬 자주 운다는 몇몇 연구결과들이 있는데, 생리학적 관점에서 이 기간은 성행위에 적합지 않기 때문에 여성의 입장에선 상대의 성적흥분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며 울음의 화학신호는 이같은 필요를 수용한 진화의 산물일 수 있다고 추론했다.
그러나 시카고대학의 심리학교수 마사 K 맥클린톡은 “여성이 생리기간에 더 많이 운다는 것은 정설로 확립된 바 없다”고 지적하고 “눈물이 성적흥분을 가라앉히는 이유는 더욱 근원적인 심리적 과정에 뿌리를 대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맥클린톡 교수는 군거잡혼이 이루어지던 원시시대의 여성들은 자신의 생리기간 중 남정네들의 관심이 다른 상대로 옮겨가는 것을 막기 위해 집단적으로 월경주기를 맞추어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 40년전 학계를 뒤흔들어 놓았던 인물이다.
한편 소벨 박사는 눈이 보이지 않는 뒤지(mole rat:두더지의 일종)의 경우 암컷이 눈물로 얼굴을 문지르면 수컷들의 공격이 줄어든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며 눈물의 화학신호가 동물에게도 일어나는 것인지 여부 역시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소벨 박사는 이어 여성들에게 ‘No’라는 거부의사를 화학신호로 전달하라고 권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남성의 접근에 눈물로 대응하기보다 그냥 ‘안된다’고 말하는 것이 훨씬 좋은 대응 방법”이라고 그는 거듭 강조했다.
<뉴욕타임스-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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