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법인들이 연중 가장 바쁜 시기를 맞으면서 언스트 & 영의 직원들은 앞으로 두달 주 60시간씩 근무를 해야 한다. 과거 같으면 집집마다 한바탕씩 큰 소리가 난다. 남편이, 아내가 저녁 시간에 제때 나타나지 않는다고 부부 싸움이 나고 아이들은 야구 경기를 빼먹었다고 소동을 부리는 것이 연례행사였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런 ‘난리’를 겪지 않아도 된다. 언스트 & 영등 미국의 대표적 회계법인들은 직원들의 근무시간 자유선택제를 정착시켰다. 가장 바쁜 시기에도 예외가 아니다.
자녀 교사면담 등 필요에 따라 근무시간 조정
가정과 일 마찰 없이 병행하면서 이직률 감소
언스트 & 영 애틀랜타 지사의 파트너인 데이빗 리즈의 감사팀원 15명은 매주 월요일 아침 회의에서 그 주의 개인 사정들을 내놓는다. 아이들의 야구 경기, 교사 면담, 필라테 레슨, 결혼식 등 근무시간과 겹칠 수 있는 일들이다. 그리고는 서로가 서로의 일을 대신 맡아줄 수 있도록 시간을 조정한다.
감사팀의 근무시간이 주 6일임에도 불구하고, 한 팀원은 출신 대학의 풋볼 결승전을 보기 위해 애리조나에 가려고 다음 월요일과 화요일을 쉰다. 리즈 역시 딸의 마라톤 경기를 보기 위해 3일 동안 뉴올리언스에 갈 계획이다.
“마감기한이 아주 빡빡하지만 팀원들이 필요에 따라 근무시간을 조정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리즈는 말한다.
직원들의 일과 개인 생활의 균형을 존중하는 데 있어서 회계분야는 미국 기업들 중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직원들이 자녀들과 지내도록 여름 한철 내내 쉬도록 배려하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덜 바쁜 계절이면 주 3일만 근무하도록 하는 기업도 있다. 회계분야 대기업에서 출산 휴가는 보통 12주이고, 아기의 아빠들도 보통 6주 휴가를 받는다. 연방법으로 부모들에게 허용되는 12주 무급휴가 외에 추가로 주어지는 것이다.
몇몇 기업들은 3개월이나 6개월의 안식휴가를 주면서 온전한 의료보험과 봉급의 40%를 제공하기도 한다. 직원들이 등산을 하거나 아프리카에서 학교건물을 짓는 등 일생의 꿈들을 추구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숫자 따지는 이들이 이렇게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근무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하는 것이 득이 된다는 계산이 나왔기 때문이다.
회계법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의 전무이사 제니퍼 알린에 의하면 자유로운 근무시간제를 도입하면 연간 이직률을 통상 24%에서 15%로 낮출 수 있다. 신규 직원 한사람을 채용하고 훈련시키는 비용이 사직하는 직원 봉급의 1.5배가 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래서 200명의 이직을 막으면 3,000만 달러가 절약된다는 것이다.
들로이트의 여회장인 샤론 알렌은 융통성 있는 근무 시간제 덕분에 이직이 줄어들면서 연간 4,500만 달러 이상을 절약했다고 말한다.
근무 시간을 필요에 따라 조정하고 싶은 것은 모든 직원들의 바람이지만 특히 자녀를 가진 엄마들은 근무시간 자유선택제를 가진 기업들에 몰릴 수밖에 없다.
“자유로운 근무시간은 여성들에게 제1의 이슈이지만 남성들에게도 제2, 혹은 제3의 이슈가 된다”고 들로이트의 캐시 벤코 부회장은 말한다. 벤코는 직원들이 직업상의 계획에 개인적 목표와 필요를 함께 고려할 수 있도록 회사측과 상의하는 개인별 커리어 프로그램을 만들어 호평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세 자녀를 키우는 직원은 그 필요에 맞게 회사 측이 근무시간을 조정해주는 것이다.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의 경우 여직원들은 출산 후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갈 때까지 몇 년간 휴직을 한 후 복직을 보장받는다. 회사는 이들이 휴직하는 동안 연장교육과 면허 유지에 필요한 과정들을 이수하게 도움으로써 복직 후 근무에 차질이 없도록 한다.
언스트 & 영, 들로이트, KPMG 그리고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 등 미국의 4대 회계법인들이 근무시간 조정에 있어서 미국 기업들 중 선두를 달리는 것은
이들 기업이 끊임없이 서로 보조를 맞추려 애를 쓰기 때문이다.
“우리는 직원들이 하는 말을 경청하는데, 근무시간 선택제가 그들과 가족들에게 대단히 중요하다고 지속적으로 말을 합니다. 매일 밤 우리 회사의 자산들이 문밖으로 나가 집으로 갑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이 다음날 돌아오고 싶어하는 장소가 될 필요가 있습니다”
언스트 & 영의 제임스 털리 회장의 말이다.
회계업계의 근무시간 선택제는 지난 1990년대 들로이트가 처음 도입했다. 산후휴가를 넉넉하게 하고 근무 일정을 융통성 있게 하는 것이었다. 당시 회계사들은 연중 바쁜 시기에 보통 주 60시간 이상씩 일을 했다. 그러면서 많은 젊은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훨씬 빨리 회사를 떠나는 현상을 보게 되었다. 그런 근무시간으로는 가정을 병행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근무시간 선택제는 제2의 물결을 맞았다. 출산하는 엄마들에게만 혜택이 주어지는 데 대해 많은 직원들이 불평을 하자 몇몇 기업들이 이 제도를 전 직원에게로 확대했다.
근년 들어서는 이 제도가 더욱 확장되면서 예를 들어 언스트 & 영은 메모리얼 데이, 독립기념일, 노동절 연휴를 4일로 늘렸다. 이 기업의 전국 직원 2만3,500명 중 현재 1,700명의 여성과 300명의 남성들이 자유근무 시간제를 택하고 있다. 여성들은 융통성 있는 근무시간을 택한다고 해서 승진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다. 그래서 파트너 되기 직전 단계인 시니어 매니저 급 여성들 중 25%가 이 자유근무시간제를 활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달라스 지사의 파트너인 브룩 사이크스는 첫 아이가 태어날 때 6개월간 휴직을 했고 이후 4년간 근무시간을 평소의 45~50시간 대신 35시간으로 줄였다. 이렇게 근무시간이 풀타임에 미치지 못했지만 언스트 & 영은 그를 파트너로 승진시켰다. 근무시간 보다는 실력에 따라 평가를 한다는 것이다.
회계법인들은 자신들이 모델이 되어서 미국의 기업들에 근무시간 자유선택제가 정착하기를 바라고 있다.
<뉴욕타임스 - 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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