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역사는 서부 개척의 역사다. 1607년 대서양 연안에 제임스타운이 처음 세워진 이래 1959년 하와이가 50번째 주로 편입될 때까지 미국인들은 서쪽으로 서쪽으로 이동을 계속해 왔다. 문제는 대서양에서 태평양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이 빈 땅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서부 개척사는 곧 인디언 살육의 역사였고 총은 그 필수불가결한 수단이었다. 연방 헌법이 수정 헌법 2조를 통해 언론의 자유 다음으로 총기 소유권을 보장하고 있는 것은 총이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했던 초기 미국의 현실을 말해준다.
미국의 또 하나 특징은 근대 최초의 민주주의 국가라는 점이다. 궁중에서 편안히 숨만 쉬고 있으면 되는 왕과 달리 미국 정치인들은 유권자들 사이를 누비고 다니며 표를 구하고 인기 몰이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결과 미국은 대통령이 가장 총에 잘 맞는 나라가 됐다. 넘치는 총 사이를 헤집고 다니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 안에 미국 정치의 비극은 내재돼 있다. 땅을 빼앗기고 구천을 헤매는 인디언 원혼의 복수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200년의 미국 역사상 지금 버락 오바마를 포함 44명의 대통령이 있었다. 그 중 4명이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고 총에 맞았지만 살아났거나 저격을 당했지만 빗나가 목숨을 건진 대통령이 6명이나 된다. 거의 4명 중 한 명꼴로 총알 세례를 받은 셈이다.
암살당한 대통령 중 가장 유명한 링컨은 취임도 하기 전 목숨을 잃을 뻔 했다. 당시 사설탐정으로 이름을 날리던 앨런 핑커튼이 이 음모를 발견해 링컨은 야밤에 몰래 백악관에 들어와야 했다. 암살당하기 한 해 전인 1864년에도 총격을 받았지만 총알이 모자를 뚫고 지나가는 바람에 아슬아슬 하게 살아났다.
1963년 암살당한 케네디는 취임도 못해 보고 죽을 뻔 했다. 1960년 12월 대통령 당선자 시절 플로리다에서 가족들과 휴가를 즐기고 있는데 정신이 이상한 전직 우체부가 차에 다이너마이트를 싣고 들이받으려 했다. 마지막 순간 가족을 다 죽여야 하는 것이 마음에 걸린 범인이 생각을 고쳐먹어 살아날 수 있었다.
이 범인은 며칠 후 교통 위반에 걸려 마각이 드러났고 6년간 교도소와 정신병원을 왔다 갔다 하다 풀려났다.
제임스 가필드는 1881년 7월 취임한지 넉 달도 안 돼 암살범 총에 맞은 뒤 이 총알을 빼내려던 수술이 잘못되는 바람에 11주 동안 고생고생하다 결국 사망했다. 윌리엄 맥킨리는 1901년 9월 취임 6개월 만에 무정부주의자 총에 맞아 1주일 후 사망했다. 그 결과 부통령이었던 시오도어 루즈벨트가 최연소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공화당 대통령으로 두 번 임기를 마치고 1912년 진보당 후보로 다시 나왔던 시오도어도 총에 맞았다. 그러나 그는 총알이 무려 50페이지나 되는 연설문 원고와 철제 안경 케이스를 관통하는 바람에 목숨을 건졌다. 그는 총알이 몸에 박힌 상태에서 연설을 끝낸 후 “숫사슴(Bull Moose, 진보당의 별명)은 총알 한 방으로는 죽지 않는다”는 명언을 남겼다. 가필드가 총알을 빼내려다 숨을 거둔 것을 경험한 그는 죽을 때까지 총알을 품고 살았다.
바로 코앞에서 두 번이나 총을 쐈는데 불발로 살아난 운 좋은 대통령도 있다.
전쟁 영웅 앤드루 잭슨이다. 그는 장군 출신답게 자기를 쏜 범인을 지팡이로 때려잡았다. 이 범인은 정신병자 판정을 받아 사형은 면하고 죽을 때까지 정신병원에 수감됐다. 이밖에도 프랭클린 루즈벨트, 해리 트루먼, 제럴드 포드, 로널드 레이건이 모두 총격을 받았으나 목숨을 건졌다.
지난 주말 애리조나 투산에서 범인이 총격을 가해 6명이 죽고 연방 하원의원 한 명이 중태에 빠진 사건이 벌어졌다. 범인은 과거 대통령 암살범 대부분이 그랬던 것처럼 정신이 약간 이상한 극단주의자인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미국이 충격에 빠져 총기 규제와 정치인 안전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지만 미국이 민주주의를 계속하고 연방 헌법이 총기 소유권을 보장하는 한 달라질 것은 거의 없다. 이 사건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것이다. 총기로 인한 비극은 미국이 짊어진 원죄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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