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와 대화를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대화의 처음과 끝을 부모가 차지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거꾸로 생각하면 부모가 자신의 말만을 하는 자리가 되는 것이다. 아이에게 바라는 것이 될 수도 있고, 훈계가 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자녀가 자신의 입장과 생각을 부모에게 전달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면 그것은 올바른 대화의 장이 분명히 아니다. 당연히 그 자리는 아이에게 지루하고 무의미한 것일 수밖에 없다. 미국의 교육에서 그토록 강조하는 ‘대화’란 무엇일까. 그리고 언제부터 시작해야 할까. 하버드 카운슬링 센터 리처드 손 원장(임상심리학 박사)으로부터 얘기를 들어봤다.
아이들 정서·감정 파악 눈높이 대화수준
간단한 답변엔 또 다른 말로 이어 나가야
■ 어리게만 보지 마라
초등학생, 아니면 그보다 어린 나이라도 거기에 맞는 감정과 정서가 있다. 이는 중학교 또는 고등학교 자녀가 느끼는 것과 같다고 봐야 한다. 다시 말해 큰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과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사고능력에서 아직 어린 만큼 대화의 수준을 잘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 대화는 빠를수록 좋다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자기 의견과 주장이 있게 마련이다. 다만 그것이 일방적일 수 있거나,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 문제다.
항상 강조되는 것은 아이가 말하는 것을 끝까지 듣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잘못된 것, 문제가 있는 것을 지적하고, 이해시키는 것이 순서이다.
이민가정에서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언어이다.
한국어와 영어가 섞여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인데, 자녀가 학년이 올라갈수록 영어가 훨씬 쉬워진다.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는 어떤 말을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초등학교 3학년 정도 접어들면 아이들은 영어가 주어로 확실히 자리 잡기 시작한다. 때문에 이 시기에 앞서 가정에서 어떤 말을 사용할 것인지 부부가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 대화를 위한 3대 주제
무조건 말을 한다고 좋은 대화일 수는 없다.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주제가 명확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부모들은 ▲학교생활 ▲가정 ▲친구관계 등에 대해 확실히 꿰뚫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미국식 인식이 가미돼야 한다.
1. 학교생활
학교생활 전반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하는데, 한인 부모들의 경우 취약한 부분이기도 하다.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고, 학교 일과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등에 대해 알아야 하고, 학교가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 시간을 내서라도 구석구석 살펴봐 둬야 한다.
학교생활은 자녀의 시간 중 가장 중심이라고 볼 수 있다. 학교를 모르면 자녀와의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들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를 위해 우선 학교를 방문해 보는 것이 시작이며, 한 발 더 나아가 담임교사와의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한다. 또 학교에서의 자원봉사 활동, PTA 모임, 담임과의 컨퍼런스 등에 꾸준히 참석할 필요가 있다.
2. 가정
자녀가 집에서 하는 일, 특히 자기 방에서 무엇을 하고 있고, 요즘 어떤 일에 관심이 있는지 등도 빼놓아서는 안 된다.
한 집에 살고 있다고 대화의 문의 열려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3. 친구
내 아이가 누구와 가장 친하게 지내는지, 그리고 요즘 아이들은 무엇에 흥미를 느끼고 있으며, 서로 어떤 주제를 가장 많이 택하는가에 대해서도 알아두도록 한다. 이는 자녀에게 들으면 가장 좋지만, 교사 또는 다른 학부모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 대화의 틀을 만들자
대화란 묻고 답하는 것이며, 감정을 주고받는 것이다.
부모의 입장에서 자녀와의 대화에서 질문은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데 문제는 질문의 방법에서 자녀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거나, 부모가 궁금한 것에 대한 간단한 답변을 듣는 것으로 그친다는데 있다.
대화의 틀은 어릴 때부터 만들어가면 사춘기를 맞았을 때도 쉽게 넘어갈 수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그만큼 부모의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그리고 추천할 만한 방법 중 하나 부모 스스로 모델이 되는 것이다.
초등학교 이하의 자녀들에게 부모의 일거수일투족은 사실상 현장 교육과 다름없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의 자녀들은 거의 스펀지 수준이다. 부모의 언행 하나하나를 그대로 빨아들인다. 말투, 행동 등 어느 것 하나 가리지 않는다고 보면 맞다. 결론적으로 부모가 모범을 보아야 한다.
이는 대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자녀에게 무엇을 물어보고, 아이가 간단히 답을 했을 때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또 다른 말을 이어갈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만약 자녀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면 부모가 먼저 나서야 하는데, 쉬운 방법으로는 “엄마는 오늘 이런 일이 있었단다”는 식으로 그날 그날의 경험이나 감정 등을 먼저 얘기하면서 아이가 따라오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묻고 답하는 과정의 반복이 결국 대화의 틀을 자리 잡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만약 초등학교 학생이라고 이런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정말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다.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대화가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대화하자 해놓고
질책 늘어놓다니
■ 부모의 자세
아이들과 대화를 한다고 해놓고, “너는 왜 책을 읽지 않니?” “왜 숙제는 항상 늦게 시작하니?” “다른 아이는 혼자서 다 하는데 너는 왜 못하지?”라는 식으로 아이를 몰아붙인다면,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부모가 말을 걸어오는 게 싫어질 것이다.
대화의 장을 공고히 하고 싶다면, 우선 자녀의 못마땅한 점들을 뒤로 제쳐 놓고 아이들의 얘기를 귀담아 듣는 모습을 보여주도록 한다.
그리고 항상 일관된 감정을 보여주도록 해야 하며,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일부 부모들은 나름대로 인내를 가지고 응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조건반사적으로 반응하기도 하는데 이 또한 옳은 자세가 아니다.
대화를 나눌 때는 푸근하고 부드러운 자리가 되도록 해야 한다.
만약 아이가 정말 잘못했다면 단호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환경과 때를 잘 맞춰야 한다.
자녀와의 대화에서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이 질책성으로 하는 것이다. 푸근한 마음을 보여주도록 한다.
자녀와 원만한 대화를 하고 싶다면 학교생활 전반에 대해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황성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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