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욱 객원논설위원
마음의 평화는 어디에서부터 오는 걸까. 참으로 어려운 질문이다. 수많은 철학자와 심리학자 혹은 종교인들이 이 한 마디의 질문을 평생의 화두로 삼고 살아간 사람들이 수천에서 수억은 될 것이다. 그래도 지금, 이 한 마디의 질문에 ‘바로 이거다’하고 대답할 사람은 많지 않다. 계속해서 이 질문의 답을 얻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다.
한 번쯤은 이 질문에 자신의 답은 무엇인지 점검해 볼 필요는 있다. 아무리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이라도 생각해 볼 문제 아니겠는가. 하루하루 변화무상하게 변해가는 이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마음의 평화도 얻지 못하고 돈과 명예와 부와 권력만 잡으려다 갑자기 쓰러져 불귀의 객이 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너무 억울하다 생각되지 않는가. 사실, 산다는 게 무언가. 그저 태어나서 먹고, 마시고, 자고, 즐기다 가는 것이 사는 건가. 그렇지만은 않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사람답게 살다 가야, 사는 것 아닌가. 사람으로는 왜 태어났으며, 산다는 것은 왜 이렇게 불안 속에서 살아야 하는가. 이런 질문은 고사하고 사람으로 태어났는데도 먹을 것만 욕심내며 산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짐승일 것이다.
몇 년 전 엘리베이터 안에서 강도를 만난 적이 있다. 엘리베이터의 좁은 공간에 뒤 따라 들어온 강도에겐 흉기가 들려 있었다. 강도는 복면을 쓰고 있어 눈만 험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엘리베이터에 탄 것을 보니 잠복해 있었을 듯싶었다. 강도는 들어오자마자 흉기를 들이대며 돈을 요구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3년씩이나 훈련받고 육군 병장으로 제대한 김 병장 아니던가. 이런 순간엔 그저 이런저런 생각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무조건 돌진이었다. 달려들었다. 순순히 무릎 꿇고 살살 빌 줄만 알았던 그 강도는 당황해졌다. 흉기가 얼굴로 날아들었다. 무조건 찔러댔다.
좁은 공간에서의 혈투는 그렇게 시작됐다. 나중에 생각한 것이지만, 무모해도 너무나 무모한 행동이었다. 그렇게 대들다 당한 동포들이 어디 한 둘인가. 귀중한 생명까지도 잃은 동포들도 많다. 그런데 그때엔 그런저런 생각이 전혀 나질 않고 무조건 이 강도를 이겨야만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결국 강도는 나를 굴복시키지 못했다.그리곤 허겁지겁 달아났다. 그러나 남겨진 나는 얼굴이 피투성이로 변해있었다. 눈퉁이와 귀 언저리, 입 위를 흉기에 찔렸다. 찔린 상처에선 계속 피가 흘려 내렸다. 옷은 찢어 질대로 찢어졌고 옷도 피 투성이었다. 앰블런스가 오고 경찰이 오고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 한 번도 강도가
나타나지 않은 아파트였기에 그렇다.
수개월 동안 경찰서를 드나들며 경찰의 강도 검거에 협력해야만 했었다. 그러나 강도는 잡히지 않았다. 처음엔 그 강도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만에 하나 그 강도가 휘두른 흉기에 급소를 찔렸다면, 그 때엔 사망 아니면 평생 불구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가정은 어떻게 되나. 자식들은 또 어떻게 되고.그러나 이미 마음에선 그 강도를 용서하고 있었다. 용서의 마음은 곧 평화로 이어졌다. “얼마나 먹고 살기 힘들었으면 강도짓까지 했을까”. 그 때 찾아온 마음의 평화.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마음의 평화였다. 시효가 지나지 않아 설령 그가 잡힌다 하더라도 그를 용서해주고 싶다. 마음의 평화는 이런 용서와 마음을 비우는 데서부터 오나 보다. 그러나 강도 만난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하나 있다. 강도를 이기지 못할 바엔 처음부터 순순히 돈을 내어주고 강도를 도망시키는 편이 훨씬 지혜로운 방법이라고. 지금도 강도 만났던 그 순간과 상황은 사진 찍어놓은 것처럼 선명하게 내 기억을 장식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강도를 향한 용서의 마음도 변함없다.
마음의 평화는 마음을 비우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때에도 온다. 또 역리가 아닌, 순리대로 살아가려 할 때 마음의 평화는 온다. 순리가 무엇인가.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하늘에 맡기며 살아가는 것이 순리다. 억울한 일을 당했는가. 상대를 용서해 보자. 분명코 마음의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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