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 하원의 권력교체가 이뤄지던 지난 5일 미 의회 의사당은 하루종일 북적거렸다.
하원 의원 사무실이 있는 의사당 인근 레이번 빌딩은 평소와 달리 온종일 북새통이었다.
존 베이너 하원의장의 취임사가 끝나고 다수 의원들이 사무실로 돌아온 이날 오후 2시께 이후부터 레이번 빌딩의 각층 복도는 오고가는 사람들로 분주했고, 의원 사무실들에는 손님들이 쉴새없이 드나 들었다.
새로 등원한 의원들을 축하하는 가족 친지들과 지역구 주민들이 몰려들기도 했지만, 새로 권력을 쥔 공화당 고위인사들에 `눈도장’을 찍거나 비록 의사봉을 내줬지만 영향력이 여전한 민주당 측에 ‘정성’을 들이려는 이해 관계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한인을 비롯, 일본, 중국계 등 아시아계 풀뿌리운동(grassroot) 단체들의 움직임이 유달리 눈에 띄었다.
개원일이고 축하파티 분위기이기 때문에 의원 사무실들도 평소와 달리 높은 문턱을 낮춰 내방객들을 맞는터라 친분을 쌓고 다지기에는 이날 만큼 기회가 좋은 날이 없다는 판단들때문이었다.
뉴욕에 본부를 두고 있는 한인 풀뿌리운동단체인 한인유권자센터(KAVC.Korean American Voters Council) 김동석 소장 일행도 이날 오후 내내 레이번 빌딩에서 살다시피하며 의원 사무실을 순회했다.
공화당의 일리애나 로스-레티넌 하원(플로리다) 외교위원장, 하원 코리아 코커스 공동의장인 외교위 유럽.유라시아 소위원장 댄 버튼(인디애나) 의원, 스콧 가렛(뉴저지) 금융위 금융감독소위원장과 민주당의 게리 애커먼(뉴욕), 에니 팔레오마배가(사모아), 마이클 혼다(캘리포니아), 조지프 크롤리(뉴욕) 의원 등 7명을 차례로 면담했다. 평소 같으면 이처럼 많은 의원을 잇따라 면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평소 유대를 다져온 이들 의원에게 미국내 한인 공동체 발전을 지지해준데 대해 감사의 뜻을 전하는 공로패도 함께 전달하고, 격의없이 환담을 나누는 시간들을 가졌다.
특히 댄 버튼 의원은 사무실에 진열된 신라시대 금관을 특별히 소개하며 "내가 정말 아끼는 것"이라고 한국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고, 팔레오마배가 의원은 바뀐 의회에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준 전망에 대한 의견을 자세히 피력하기도 했다.
이날 면담한 의원들은 대체로 한인 유권자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구 의원들로 후원금 모금 행사 등으로 평소 한인유권자센터와 네트워크가 다져진 의원들이다.
김동석 소장은 "1993년부터 의회 네트워크 구축활동을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한인 풀뿌리운동 단체활동으로 발전한 것은 2002년 이익단체 등의 무제한적인 정치자금기부, 즉 `소프트머니’(soft-money)를 금지한 새 정치자금법이 발효되면서부터"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의원들은 자발적 유권자들의 기부금인 `하드머니’(hard-money)가 필요하게 됐고, 유권자들의 표와 후원금을 조직화할 수 있는 풀뿌리운동 단체들과의 연계를 찾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지난 2002년 소프트머니를 금지하는 정치자금법인 ‘매케인-파인골드법’이 통과된 후 1인당 기부한도액이 연간 2천달러인 하드 머니를 낼 수 있는 개인 후원자들을 많이 모으는 것이 의원들의 고민거리가 됐다.
이 때문에 비영리 풀뿌리운동단체들이 후원자들을 조직화하며 의원들의 `갈증’을 해소해주는 대신 공동체 이익을 해당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통해 관철시키는 네트워크가 형성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됐다.
2007년 2차대전때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과.책임을 요구하는 결의안채택, 2010년 미국내 한인공로 결의안 채택 등이 한인유권자센터의 풀뿌리운동이 낳은 성과물이다.
하지만 한인 커뮤니티의 의회내 영향력은 같은 아시아의 일본, 중국계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의회를 겨냥한 한인 풀뿌리운동단체는 한인유권자센터가 거의 유일하다.
중국은 각 지역에서 중.소상인을 중심으로 결집한 중국계 커뮤니티 조직력이 점차 커져가고 있고 중국계 미국인의 보좌관 숫자도 늘고 있다. 일본 커뮤니티도 본국 정부, 기업의 지원을 등에 업고 있다.
김 소장은 "2009년 1월 111대 의회 개원일에도 의원회관 순방을 다녔는데 그때와 비교해 이곳을 방문한 중국계들의 움직임이 유달리 많은게 눈에 띈다"고 말했다. 이들이 로스-레티넌 외교위원장 사무실을 찾은 시간에 중국계 인사들도 대거 방문했다.
의회내 막강한 파워를 행사하는 대표적 미국내 민족 풀뿌리운동단체는 미-이스라엘공공정책위(AIPAC)이다.
미국내 유대인 단체 지도자들이 1954년 창설한 이곳은 이스라엘을 위한 로비활동을 펼치는 강력한 단체로 발전했다. 6백만명에 달하는 유대계표과 후원금으로 의원들의 정치 생명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중간선거후 AIPAC 지역 단체들이 움직여 티파티 계열 의원들 상당수에 대한 이스라엘 방문 행사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친(親) 이스라엘 의원 확대를 위한 움직임이다. AIPAC의 공격적 로비 행태는 다른 민족 커뮤니티의 질시까지 받을 정도다.
김 소장은 "AIPAC 영향력과 움직임은 혀를 내두를 정도"라며 "한인 커뮤니티도 미국에서 세금을 내는 납세자이자 유권자로서 정치적 영향력을 높이고 권리를 찾기 위해서는 의회를 움직이는 풀뿌리운동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연합뉴스) 성기홍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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