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하원의 공화당 시대가 다시 열렸다. 2006년 중간선거 참패 후 4년만이다. ‘오만한’ 공화당에 염증 느낀 민심이 열어주었던 ‘민주당 천하’가 어느새 사라지고 다시 유권자의 ‘전권 위임’을 주장하며 공화당이 재등극한 것이다.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이라는데 민심의 체류기간은 그보다 더 짧아지려 한다. 먹고살기 힘든 경제불안 탓일 것이다. 만사 제쳐놓고 경기회복에 몰두하지 않으면 다수당은 언제라도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5일 출범한 112대 연방의회는 새해 새얼굴의 활기찬 모습과는 달리 해묵은 이슈를 둘러싼 당쟁으로 시작되고 있다.
개원 전부터 시끌시끌 끓어오르는 설전의 이슈는 새로운 하원다수당이 내놓아야할 긍정적 메시지와는 거리가 멀다. 내일 절차투표를 거쳐 다음 주 법안 표결로 일사천리 강행하겠다고 선언한 첫 주요과제가 이른바 “일자리 죽이는” 헬스케어개혁법 폐기안이다. 오바마의 ‘역사적’ 업적인 헬스케어개혁법에 칼을 들이댔으니 타협 아닌 대결의 2년을 예고하는 선전포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폐기안은 이번 112대 의회에선 살아남지 못한다. 시간과 에너지의 낭비다. 하원에선 공화당의 첫 파워과시로 무난히 통과되겠지만 민주당이 다수당인 상원에선 상정조차 힘들 것이며 만에 하나 상원을 통과한다 해도 오바마의 거부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원의 공화당 수는 대통령의 거부권을 번복하기엔 한참 부족하다.
공화당 지도부는 “유권자들과의 약속 이행”을 강조하고 있지만 민주당 뿐 아니라 대부분 정치학자들도 상징적 제스처로 일축한다. 전 국민의 기대와 관심을 받고 있는 첫 행보로, 시급한 경제 해결책 아닌 캠페인용 제스처를 택한 것은 현명한 일일까. 정치적 전략이겠지만 정치적으로도 악수(惡手)가 아니었을까.
민주당의 헬스케어개혁이 중간선거 공화당 승리의 한 원인이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분노의 대상은 개혁법 내용 자체가 아니었다. 일자리 창출과 경기회복을 뒤로 밀어둔 채 개혁안에만 집착한다고 민주당을 공격한 공화당의 비난에 유권자가 공감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공화당이 파워를 쥐자마자 헬스케어에 대한 집착을 이어받은 듯 민주당의 실수를 답습하려 하고 있다.
공화당이 초당적 합의는커녕 선전포고를 하며 의기양양해도 할 말도, 선택의 여지도 별로 없어 ‘타협’만을 다짐하는 민주당에겐 공화당의 헬스케어개혁 폐기 선언은 그리 나쁜 징조가 아니다. 자칫 공화당이 스스로 빠질 함정이 될 수도 있으니까.
중간선거 출구조사에서 나타난 개혁안 폐기 지지는 48%였고 확대 및 유지는 47%였다. 공화당이 ‘전권 위임’을 주장하기엔 찬반여론이 엇비슷하다. 그 다음이 더 흥미롭다. ‘전 국민 의무적 가입’ 조항엔 60%이상이 반대했지만 ‘병력을 이유로 가입거부 금지’‘26세까지 성인자녀 부모보험 가입 허용’‘중병시 보험취소 금지’등 혜택조항엔 70% 이상이 강력지지 한다고 응답했다.
공화당은 개혁안의 전면폐기가 불가능할 경우 조항별 폐기를 추진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어떤 조항을 폐기하려는가. 이미 시행에 들어간 인기 혜택 조항을 폐기시키려는 의원은 없을 것이다. 의무적 가입조항이 좋은 표적이지만 전 국민의 의무적 가입이 전제되지 않으면 인기있는 혜택은 유지될 수 없다. 폐기논쟁이 가열되면 그동안 불충분했던 개혁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더해지면서 오히려 개혁안은 폐기 대신 미 국민의 일상으로 정착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2012년을 향한 오바마와 민주당에겐 잃을 것이 없는 싸움이다.
더구나 공화당은 폐기시키겠다는 ‘오바마케어’에 대한 대안을 아직 내놓지 못했다. 공화당의 ‘노우케어(NoCare)’라는 민주당의 비아냥에 대꾸할 말이 없는 것이다.
헬스개혁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남발해온 ‘대안 없는 비난’은 다수당으로 도약한 공화당이 모든 이슈에서 직면하게 될 가장 큰 도전이다. 이제는 반대가 아닌 ‘통치’를 해야 한다. “의료보험에 전 국민이 의무적으로 가입하지 않으면 값싼 혜택도 불가능해지는 현실”을 설득시켜야 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의무적 가입은 싫고 값싼 혜택은 받고 싶은 민심을 적절히 수용해 최선의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오바마의 민주당과 타협하며 초당적 합의를 이루지 않고는 넘기 힘든 도전이다. 불과 4년 전 집권당이었던 공화당의 지도부가 그것을 모르겠는가. 다분히 감정적인 폐기안 추진소식을 듣고도 오바마가 “얼마동안 보수진영 달래기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며 워싱턴의 정치관행으로 일단 톤다운 시킨 것도 공화당의 이런 입장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공화당 하원의 첫 행보를 액면 그대로 ‘2년 전쟁의 신호탄’으로 확정짓고 포기하기엔 미 국민의 경제상황이 아직은 너무 어렵다. 정치가에게도 정치에 우선해 해결해야할 과제가 있는 법이다. 지금 서민을 위한 일자리 창출과 경기회복이 그렇다. 진정으로 민생을 돌보려는 초당적 합의가 없이는 불가능한 과제다.
공화당의 첫 걸음은 대결로 내딛었어도 결국엔 오바마와 손잡고 타협의 정치를 펴는 파트너가 되기를 기대한다. 새해 첫 주이니까 이런 기대쯤은 해도 괜찮지 않을까.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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