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헐리우드 진출하려는 한인 위한 길 터주고 파”
"한인이라는 장점을 백분 활용해 할리우드업계에 진출하려는 한인 후배를 위해 길을 닦아주고 싶어요.”
브래드 피트, 오프라 윈프리, 스티븐 스필버크, 스팅, 데이빗 베컴 등 신문을 펼쳤다 하면 나오는 영화배우와 감독, 프로스포츠 선수, 토크쇼 진행자, 가수 등이 계약한 소속사 크리에이티브 아티스트스 에이젠시(CAA)에서 이런 거물급 인사를 직접 상대하는 산호세 출신 26세 한인 여성이 있다.
할리우드 연예계 중에서 마케팅 등 다른 분야에 한인이 더러 있지만 대본을 놓고 감독, 제작자, 대본 필진들이 계약협상을 벌이거나 대본을 놓고 토론하는 자리에 참석하는 한인은 극히 드문 경우다. “영화계는 워낙 인물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기 때문에 생김새에 대한 선입견이 많은” 결과다.
밀피타스의 대형인쇄소 ‘하이텍 프린팅’을 30년 운영해온 이영호씨와 이영희씨의 딸 수잔 리씨는 원래 변호사가 되어야 했다. 부모가 처음엔 의사가 되기를 바랐는데 과학에 너무 관심이 없는 것으로 진단됐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초중고등학교(피드몬트힐스고교 졸)를 산호세에서 다닌 수잔씨는 그래서 UCLA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대학을 졸업할 때만 해도 변호사가 되기 위해 로스앤젤레스의 대형 법률회사에 취직하고 법대 입학시험인 LSAT도 ‘잘’ 봤다.
그러나 법대 지원서와 함께 내는 personal statement(자기소개서)는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입학사정관들에게 설득력있게 왜 변호사가 되고 싶은지를 거짓말하지 않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었던 것. 많은 고민 끝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힘든 일”, 즉 부모에게 변호사가 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로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행복하지 않다”. 이러한 ‘통보’는 부모로서 그리 놀라운 것은 아니었다.
본보 문화면 기사를 쓰는 이정훈 기자가 작은 아버지인 수잔씨는 7살 때부터 장래 희망이 소설가라고 말하고 다녔다. 산호세에서 차를 타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사시는 샌프란시스코로 가면 뒷좌석에서 내내 소설책에서 눈을 때지 못했다. 혼자서 시를 쓰는 와중에서도 3학년을 월반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현실을 택하고 일단 꿈을 접었다.
법대를 포기한 이후 약간의 방황이 있었다.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었고 로스앤젤레스에서 살게 되면 영화계를 당연히 생각하게 되니” 남가주대학(USC)의 6주 하계학기에서 영화제작 강의를 들으면서 처음으로 촬영카메라를 돌려보고 편집도 혼자 다해서 단편영화 3편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때 또다른 깨달음이 있었다. “촬영현장은 적성에 맞지 않는다”였다.
소설이든 촬영대본이든 ‘활자가 있는’ 창작물을 본격적으로 쓰느냐, 아님 취직하느냐를 한참 고민하다 연예계 직업소개소에 이력서를 내봤다. 그러자 ”할리우드의 지배적인 에이젠시“(CNN, 포천 메가진 등의 평)인 CAA에서 오라고 했다.
“처음 1년 동안 농담이 아니고 우편물관리실에서 일했어요. 편지가 도착하면 받는 사람에게 갖다주고 오는 일을 했어요. 그러나 나중에 보니 잘 나가는 직원들 대부분이 우편물관리실에서 시작했다고 해서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지요. 그러다 못마땅하면 조수를 무자비하게 자르는 것으로 소문난 보스가 저를 조수로 발탁했어요. 그 분의 조수로 이제 1년 버텼으니 일을 잘 소화해낸 것 같아요”
수잔씨는 보스의 이름과 일하면서 상대하는 유명인의 이름을 밝히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주로 하는 일을 이렇게 설명했다.
“CAA는 탤런트 에이젠시로 알려져 있지만 일종의 할리우드 해결사 역할을 하는 곳이에요. 제작자가 영화를 만들고 싶은데 대본이 없으면 대본을 찾아주고 감독이 아이디어가 있는데 영화화하기 위해서 대본작가가 필요하면 서로 연결한 뒤 그 관계를 중간에서 관리해요. 소속 배우, 가수, 스포츠 선수의 매니지먼트하는 것은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저는 글에 욕심이 많아서 매일 영화대본을 읽는 부서로 배정돼 행복하고 또, 소설은 나중에 써도 늦지 않아요. 할리우드에서 커리어를 계속 키워나갈 생각이에요. 아시안계, 특히 코리언은 이 분야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서반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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