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적 낙랑시대/ 기와들이 살아나다/ 그 님의 붓 끝 따라/ 천년 잠 벗어 던지고/ 아, 나도/ 낙랑의 여인/ 오랜 잠을 끝내자// 바라보면 창연(蒼然)해라/ 볼수록 고운 미소/ 어디쯤 낙랑 하늘/ 걸어두고 왔을까/ 아, 문득/ 귀를 적신다/ 왕자 호동 말 발굽소리’
한민족의 영혼이 깃든 역사물을 제재로 하여 유현(幽玄)한 전통적 미학을 되살렸다.
’낙랑 하늘 그리며’라는 시조다. 지은이는 현원영 시조시인. 나이가 80을 훌쩍 넘어섰다.
어르신들의 나이 듦을 위로하는 ‘인생은 60부터’라는 얘기는 이제 먼 옛날의 얘기처럼 들려온다.
세상의 바뀜과 세월의 흐름 속에 이제는 ‘인생은 70부터’라는 말이 어르신들의 나이 듦에 대한 위로의 말이 아닌 진정 새로움을 개척해 내는 희망의 언어가 되었다.
호주 뉴 사우스 웨일즈의 ‘영’이라는 마을에는 70세에 붓을 들기 시작 102살의 최고령 화가 라이스터 홀란드 할아버지가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올해로 100세가 되는 시인 시바타 도요 할머니가 희망을 준다. 지난해 3월 99세의 나이로 처음 펴낸 시집 ‘약해지지마’가 70만부를 넘기는 판매량을 기록하며 희망의 메시지를 던졌다.
그들의 도전에서 새로운 희망이 엿보이며 그들의 활동을 통해 새로움에 도전해 볼 수 있는 희망의 근거를 찾아내는 것이다.
라이스터 홀란드 화가나 시바타 도요 시인처럼 북가주 지역 한인 중에서도 우리에게 희망을 선사하는 이가 바로 현원영 시조시인이다.
현원영 시조시인 역시 젊은이들도 선뜻 배우기를 꺼려하는 시조에 대한 입문을75세의 늦깎이로 시작, 신인문학상 수상은 물론 제2회 미주동포문학상과 제1회 춘원 현석주 아동시조문학상, 해외부문 시천시조문학상을 비롯하여 두 권의 시조집까지 펼쳐내며 80을 훌쩍 넘어선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얼마 전 그는 두 번째 시조집인 ‘낙랑하늘 그리며’를 출간하기도 했으며 아직도 시조에 대해서 배고파하고 있다.
그는 얘기한다. "덤으로 사는 내 인생 늦깎이 내 이름 섧지 않을 훌륭한 시조 하나 쓰고 싶어요"
스스로는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 말하면서도 진정 그가 추구하는 늦깎이 시인으로서 내는 욕심은 덤이 아닌 새롭게 시작하는 인생의 표지를 한 장씩 넘기고 있는 듯 희망을 던져주고 느끼게 만든다.
그는 56년의 삶을 미국에서 지내면서 언제나 무언가에 목마름을 느꼈으며 그 목마름이 바로 한국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적인 것을 너무나 모르고 살아온 그의 인생임을 깨달았다. 그가 고유의 전통적인 정형시조를 공부하게 된 이유다.
현 시인은 이를 두고 "귀소본능이 아니겠는가"라고 답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것"이라며 현 시인은 75세의 만만찮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한국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시조시인 유성규 박사의 집무실에서 40여 일간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시조공부에 매진했다.
그의 이 같은 억척스러움은 미국으로 건너와 한 학기에 28학점씩 이수한 그의 이력과 밤잠을 자지 않고 공부한 덕에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기까지 장학생이었다는 그의 젊은 시절의 회상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노력하는 자에게는 불가능이 없다"라는 말처럼 그의 노력의 댓가는 2003년 5월 ‘시조생활’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현원영 시조시인은 자신에게 있어 ‘시조’란 "의무감이자 애국심의 발로"라고 한다. 그가 전통적인 것을 깨달았을 때 한국사람으로서 죄 지은 듯 한 느낌을 받은 이유를 "700여 년의 장구한 세월을 끊어짐 없이 이어 내려온 시조가 민족의 꽃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스스로 부족하다며 자신을 낮춘다. 시조도 그렇고 컴퓨터도 그렇고 모든 것이 늦깎이라고 한다. 하지만 늦깎이이기에 더 열심히 노력할 수 밖에 없다는 그는 "지금까지 해온 것에 감사하지만 그래도 늦깎이 섧지 않은 시조 하나는 쓰고 싶다"는 말을 던진다.
새로움에 대한 도전으로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는 현원영 시조시인. 올 한 해에도 그의 이 같은 열정이 더욱 들불처럼 타올라 귀한 시조들을 맛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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