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마니아式 민중혁명, 북한에서도 가능할까? (3)
넷째, 다른 동유럽 국가에 비해 ‘반체제 인사와 단체의 활동’이 거의 없는 것은 루마니아와 북한의 공통점이다. 80년대 루마니아에는 북한의 5호담당제 같은 것이 있어 체제 비난이 쉽지 않았다. 또 8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루마니아의 여러 지역에서 차우셰스쿠의 정권사퇴를 촉구하는 시위가 일어나긴 했지만 이는 모두 산발적인 수준에 그쳤다. 차우셰스쿠는 독일의 게슈타포(Gestapo)와 같은 루마니아 비밀경찰조직인 ‘세쿠리타테(Securitate)’를 만들어 반체제 인사들을 거의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반면 폴란드나 체코 등 다른 동유럽 국가에서는 공산주의 시절에도 바웬사와 체코의 ‘77헌장그룹’ 등 반체제 인사와 단체가 암암리에 활동함으로서 자연히 80년대 말 자국의 민주화 운동의 주체가 되어 대중의 힘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재 북한에는 루마니아처럼 반체제 활동이 거의 전무한 것은 물론 80년대 루마니아보다 더 강력한 북한식 철권통치가 실시되고 있어 폴란드나 체코처럼 반체제 인사가 주도하는 북한의 체제붕괴는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루마니아인들은 과거에 ‘잘살아 본 경험’이 있다는 사실이다. 루마니아 경제수준은 소련공산주의가 루마니아에 도입되기 이전에 그리스보다 우위였고 또 제1차 세계대전 이전 루마니아의 수출규모는 세계 10위권이었다. 하지만 차우셰스쿠는 루마니아를 농업국으로 전락시키려는 소련의 흐루시초프 정책에 반대하여 중공업 위주의 스탈린식 경제체제를 통한 국가발전을 꾀했다. 즉 루마니아 공산당은, 국민의 윤택한 생활과 직결되는 경공업 발전을 도외시한 채 아무런 시장조사 없이 자의적으로 선정한 루마니아 3대 주력산업인 철강업, 기계공업 그리고 중화학공업만을 과도하게 발전시켰다. 시장경제 원칙을 무시한 루마니아 경제정책은 대내외적인 여러 요인으로 인해 실패했고 결국 80년대 말 루마니아 경제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특히 130억 달러 이상의 외채를 모두 상환하기 위해 국민을 희생시키면서 까지 기아수출(飢餓輸出)을 단행함으로써 국민들의 불만은 가중되었다. 품질이 좋다 싶은 농산물은 모두 수출되어 정작 루마니아인들은 먹을 게 없었고, 대신 국가에서 배급되는 최소한의 1일분 식량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야만 했다. 또한 전력난으로 인해 하루 TV 방영시간은 고작 2시간이었으며, 루마니아 3대 주력산업은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했기 때문에, 80년대 내내 루마니아는 심각한 에너지난을 겪어야 했다. 따라서 루마니아인들은 난방시설이 작동되지 않는 아파트에서 겨울 내내 혹독한 추위에 떨어야만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80년대 말 루마니아인들의 불만은 최고조에 달했다. 하지만 혁명 이후 루마니아인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차우셰스쿠의 집권초기부터 80년대 초까지는 생활하는데 큰 불편은 없었다고 한다. 결국 80년대 중·후반으로 접어들면서 계속되는 루마니아 경제정책의 실패가 혁명의 큰 단초(端初)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루마니아 독재체제는 북한을 모델로 삼긴 했지만 ‘북한의 아류’에 불과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또 우상숭배를 포함한 북한식의 족벌독재체제가 루마니아에서 뿌리를 내리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차우셰스쿠 집권시절, 종교를 포함한 개인의 자유는 상당부분 인정되었고 또 검열제가 실시되고 있었지만 루마니아 일부 작가들은 차우셰스쿠 독재체제를 우회로 비판하는 작품들을 출판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관제집회에 동원된 루마니아 국민들도 집회가 끝날 즈음 공산당으로부터 받은 선전용 피켓을 내동댕이치기도 했다고 한다. 결국 루마니아와 북한의 독재체제를 살펴보면 큰 틀에서는 비슷하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어 보인다.
현재 북한 주민들의 생활수준은 80년대 말의 루마니아인들보다 더 열악한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북한식의 철저한 억압과 통제로 인해 이들의 불만의 목소리는 내재(內在)된 채 밖으로 크게 전달되지 않고 있다. 북한의 경제는 지금 파탄지경이라고 한다. 따라서 앞으로도 계속 북한 주민들이 극도의 굶주림과 추위로 고통 받는다면 향후 어떤 일이 벌어질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올 들어 연이은 북한의 도발을 보면서 필자는 북한의 독재체제가 9부 능선을 넘어 극으로 치닫고 있다는 느낌이다. 물극필반(物極必反) 즉 사물의 전개가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하는 우주만물의 섭리처럼 언젠가는 북한 주민들도 루마니아인들처럼 자신의 목소리를 크게 낼 날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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