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후면 퇴임하는 아놀드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유산을 한마디로 압축한다면? : 북가주 신문 새크라멘토비가 온라인 독자들에게 물었다. 다양한 표현으로 올려진 1,200여명의 응답 역시 한마디로 압축될 수 있다 : Failure(실패)!
불과 7년 전 세계 최고의 액션배우에서 미국 최대 주의 주지사로 변신하며 온 세계 미디어의 조명을 받았던 화려한 등장에 비하면 너무 초라한 퇴장이 아닐 수 없다.
스타 주지사에 한 표를 던졌던 2003년 이후 우리의 삶은 기대처럼 나아졌을까. 과학적 수치로도, 정서적 체감으로도 그건 확실히 아니다. 주 예산 적자는 3배로 늘어났고 주 공무원 수는 10% 증가했으며 세금은 주민 1인당 1,000달러 꼴로 인상되었다. 그런데도 차량국이든 법원이든 민원서비스는 늑장의 연속이고, 올라가는 큰 아이 대학등록금에 늘어나는 작은 아이 특별활동 과외비로 중산층의 어깨는 짓눌리고 있으며 불안에 떠는 저소득층의 복지는 계속 줄어만 간다.
그게 모두 슈워제네거의 탓인가. 그는 완전히 실패한 주지사인가.
“…”
전문가들의 평가도 엇갈린다. 서슴없이 낙제점을 준 익명의 독자들과는 좀 다르다. 그래서 다행히 졸업생 ‘아놀드’는 보다 공정한, 덜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고 떠날 수 있을 듯싶다.
사실 그에 업적도 적지는 않다.
보다 중도적 공직자 선출을 위한 오픈 프라이머리와 독립적인 선거구재조정 시스템 정착 으로 교착상태 해소를 위한 정치개혁의 터를 닦았고, 미국 최초의 지구온난화법 성사로 환경보호에 앞장섰으며, 종업원상해보험법 개정으로 비즈니스의 비용절감을 도왔다. 도로·다리·학교 등 기간시설 보수와 급수시스템 개선위한 공채발의안 합의 도출로 장기적 투자의 발판을 마련했고, 재정 정상화를 위한 예비기금 의무적 비축안도 2012년 주민투표에 회부되도록 못 박아 놓았으며, 신입 공무원의 연금혜택도 10년전 수준으로 대폭 축소시켰다.
그의 측근들은 슈워제네거의 과감한 리더십과 끈기가 없이는 불가능했을 업적이라고 강조하지만 유권자들의 시선은 여전히 냉담하다. 높았던 기대만큼 실망도 크기 때문일 것이다.
주지사 첫 당선전후 자신에 찼던 그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지지부진한 주정계에 ‘참신한 아웃사이더’로 등장한 인기스타는 주 의사당 앞에서 빗자루를 높이 치켜들고 “새크라멘토를 쓸어버리겠다”며 부패척결을 약속, 특수이해집단의 정치개입에 진저리쳤던 캘리포니아를 열광시켰다.
그가 쏟아놓은 공약들은 쉽고 단순하며 다소 원색적이어서 귀에 쏙쏙 들어왔다. “정신 나간 적자지출을 끝장내겠다” “(주정부의) 크레딧 카드를 찢어버리겠다” “구태의연한 정부조직을 박살내고 효율적 체재로 탈바꿈 시키겠다”…
그리고 그의 캐치프레이즈였던 “우린 수입 한도 내에서 살아야 한다!” - 이것이 ‘주지사’ 슈워제네거에겐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대표적 공약이었고 당시 6개월전 재선된 현직 주지사를 주 사상 처음으로 소환하면서까지 유권자들이 그를 선택한 이유였다. 이 과제만 실현했더라면 적자는 해소되었을 것이고 그는 성공한 주지사로 입장 때 못지않게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으며 퇴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더 이상 빚지지 않는 긴축재정도, 특수집단의 이해가 개입된 부패 척결도, 효율적 서비스위한 정부의 조직 재정비도, 그가 소리 높여 외쳤던 대표공약은 그 어느 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물론 원인은 복합적이다. 전국적, 아니 세계적으로 덮친 경기침체 탓도 있고 30여년전 주민발의안 13에서 시작된 비합리적 조세제도의 탓도 있을 것이다.
민주당은 지출삭감 때마다 완강하게 반대하고 공화당은 세금인상이라면 필사적으로 반대하니 균형예산이 이루어질 수가 없다. “나 말고도 새크라멘토엔 120명의 주의원이 있더라”던 주지사의 한탄처럼 사실 현 캘리포니아 재정난은 요인만 꼽아도 여러 가지다. 그러나 누가 책임자였는가.
슈워제네거의 가장 큰 실수는 실기(失機)였다고 한 전문가는 지적한다. 지지율이 65%에 달했던 취임초기에, 민주당도 두려워했던 자신의 높은 인기를 정치적 자산 삼아 과감한 지출삭감과 적절한 세금인상을 단행하며 균형예산의 틀을 잡아야 했는데 오히려 세금인하와 공채발행 등으로 적자의 규모만 늘려놓았기 때문이다.
실패와 재기를 거듭하며 새크라멘토의 정치역학을 익힌 그가 합리적 재정정책을 추진했을 땐 이미 늦어 버렸다. 여론을 설득해야할 지지도는 바닥이었고 경기침체가 덮쳐오고 있었다.
그래도 최선의 노력을 한 그에 대해 정치학자 조 매튜가 내린 평가가 흥미롭다. “이념에 얽매이지 않은 중도파 슈워제네거는 모든 것을 시도했다. 세금을 깎기도 하고 올리기도 했으며 지출을 삭감도 하고 늘리기도 했다. 민주당과 손잡고 진보정책도 시도했고 공화당 당론에 충실하는 보수파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모든 방향으로 가보았다, 그런데 그 어떤 것도 효과가 없었다. 체제가 망가졌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망가진 정치체제를 바로 잡아야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것, 그것이 그가 남긴 유산이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아놀드가 이제 무대에서 내려오고 있다. 아놀드의 ‘제3기’가 되지 않기 위해 1월3일 취임하는 제리 브라운 ‘새’ 주지사는 어떤 ‘마법’을 동원할 것인가.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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