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LA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자동차 쇼를 보고 깊은 격세지감을 느꼈다. 70년대부터 매년 참관하여 30여 년간의 변화를 직접 경험하였기에 감회가 더 한 것 같다.
돌이켜 볼 때 70년대의 자동차 쇼는 단연 미국차가 주인공이고 외국 차는 들러리 정도였다. 우선 차의 크기에서 수입차, 특히 일본차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왜소했고 엔진 출력이나 승차감 역시 미국차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80년대 들어서 개솔린 파동을 겪으며 차의 경제성이 중요해지자 중대형차 일색인 미국 차보다 연비가 훨씬 좋고 잔 고장이 없는 일본차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동시에 부유층은 벤츠나 BMW 등 유럽제 고급차를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런 시기에 미국에 들어온 한국차는 인지도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시장 개척을 하게 되었다. 우선 값이 싸고 한국제품을 팔아준다는 애국심도 작용하여 내 주위에서도 한국차를 구입한 분들이 있었다. 그 당시 자동차 쇼에 가보면 한국차는 전시장 한 구석에서 위치해 조명도 빈약하고 관람객도 거의 없어 그야말로 찬밥 신세 같은 인상을 주었다.
90년대 들어 일본은 렉서스와 인피니티를 잇달아 내놓으며 유럽제 고급차들과 경쟁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유럽의 업체들도 기존의 인지도를 내세우며 그 명성에 걸맞은 차들을 만들어 고급차 시장의 확고한 자리를 굳히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진짜 고급차는 유럽제나 일본제라는 인식이 확산되었으며 캐딜락이나 링컨 같은 미국제품은 돈 좀 있는 노인들이나 타는 구태의연한 차고 전락한 것 같다.
2000년대 들어서며 미국산 차는 위축되고 그 반대급부로 팽창하는 일본차는 위세를 더해갔고 고급차 시장도 유럽산 차와 첨예한 경쟁을 하는 양상을 보였다. 동시에 한국차도 서서히 그러나 착실히 인지도를 높여가며 계속적인 품질 개선과 파격적인 보증제를 실시하여 경제적이면서도 타볼만한 차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이렇게 세월이 흘러 마침내 이번 자동차 쇼에서 단연 주목을 받으며 두각을 나타낸 차가 현대·기아 자동차였다. 전시관에 들어서면 곧 바로 보이는 위치에다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정성 들여 설치한 단, 충분한 조명과 세련된 전시 방법 등 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인상을 주었다.
파견된 직원들의 태도에서 자신감이 보이는 것도 분위기를 높여 주었다. 역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전시된 차들의 새로운 디자인과 향상된 성능은 물론이고 한층 고급화한 내장재와 매끈한 조립 솜씨 또한 수준급이었다.
한편 지난 수십 년간 비교적 견실한 차를 만들어 오던 일본은 최근 들어 그 개발 잠재력이 한계점에 도달한 듯한 느낌을 주었다. 특히 토요타의 경우 2-3년 전부터 품질 저하 현상이 눈에 띄게 나타나더니 아니나 다를 까 최근 유례없는 대규모 리콜 사태를 불러왔고 실제로 10만대 당 불만건수가 금년에 86.6건(지난 4년 간 평균은 37건)으로 최악의 상태이다. 니산과 폭스바겐도 각각 61.7건과 58.7건으로 불만족도 2위와 3위를 기록하고 있다.
혼다와 애큐라도 추구하는 디자인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울 정도로 방황하는 것 같았고, 그 중 몇 개 모델은 보기에 거북할 만큼 조잡해 보였다. 한마디로 전체적인 품질 면에서 전보다 저하된 느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반면 한국차는 겉보기에도 일제보다 탄탄하고(독일 차 수준으로) 타보면 더 실감난다. 현대 소타나, 아제라, 베라크루즈 등과 2년 전 출시되어 ‘올해의 차’로 선정된 제네시스의 인기가 피부로 느껴졌다. 특히 이번에 새로 선보인 최고급차 에쿠스를 타보려고 줄 서있는 사람들을 보며 한국차의 비상을 실감하였다.
이 어려운 경제 위기 속에서도 최고의 판매 성장률을 보인 실적이 말해주듯 이제는 확실히 한국차가 어느 나라 차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으며 오히려 여러 면에서 앞서 간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벤츠 E클래스나 BMW S시리즈 또는 렉서스 ES350을 사는 것보다 현대의 제네시스가 더 낫다고 자부한다.
디자인, 엔진 성능, 내부 공간의 크기, 승차감이 더 좋을 뿐 아니라 가격도 저렴하니 최선이 아닌가. 여기에 더하여 최근 자동차 전문지의 조사에 의하면 차종별 재구매율에서 현대차는 3위를 차지하여 벤츠 6위, BMW 10위보다 앞섰다.
전자산업의 절대 강자였던 일본을 따라잡고 일찌감치 90년대에 일본 조선업을 능가한 한국은 자동차 산업에서도 세계적인 강국으로 부상할 것이 기대된다.
한인들 모두가 힘을 모아 밀어준다면 그 시기는 더 빨리 오리라는 확신이다.
조정훈 <건축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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