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사람들의 신경은 오히려 날카로워진다. 메리크리스마스란 말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크리스마스란 말도 그렇다. 할러데이라고 해야 한다. 기독교 냄새만 나도 그 흔적을 지우려 든다. 일단의 무신론자들이 전개하는 꽤나 시끄러운 세속화 운동 때문이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공공장소에서 종교적 표현은 안 된다는 슬로건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애써 지우려는 운동은 계속되고 있다. 올해의 경우 그러나 그 전쟁 양상은 그리 치열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경제적 한파 때문인가.
하기는 지난 11월 중간선거도 그랬다. 이슈는 온통 경제였다. 선거철이면 으레 재연되는 문화전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동성 간의 결혼, 낙태문제 등 미국사회를 벌겋게 달구던 이슈들은 모두 수면 아래로 잠복해 버린 듯 보였다.
문화전쟁은 그러면 마침내 휴전기를 맞은 것인가. 오히려 더 가열 될 전망이다. 아니, 벌써부터 그 전쟁은 치열히 전개되고 있다.
‘미국적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는 싱크탱크나 대학연구소에서 그것도 간혹 다루어지던 주제였다. 그 용어가 중간선거 이후 미국 정가의 키워드로 등장하면서 벌써부터 문화전쟁의 그 치열한 첫 라운드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왜 느닷없는 ‘미국적 예외주의’ 논쟁인가. 중간선거 직후 실시된 한 여론조사가 그 답의 한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이 조사에 따르면 60%에 가까운 미국인은 ‘미국은 인류 역사에 있어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역할을 부여 받은 것으로 믿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복음주의파 백인의 80%가 이 ‘미국의 특별한 역할’을 믿고 있다. 소수계 크리스천의 3분의 2도 같은 생각이다. 개신교와 가톨릭을 망라해 대다수 주류 기독교인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이 조사는 혹시 근본주의에 가까운 기독교 단체가 실시한 것이 아닐까. 그 결과가 너무 편향적인 듯해서다. 이 조사를 실시한 기관은 중도좌파 성향의 공공종교연구소(PRRI)다. 그 PRRI가 브루킹스연구소와 공동으로 한 연구조사 결과 드러난 사실이다.
아마도 PRRI 관계자들도 이 조사결과에 당혹해했는지 모른다. ‘미국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역할을 부여받았다’는 소명의식, 다시 말해 ‘미국적 예외주의’ 신봉자가 백인 복음주의자에 국한되지 않고 흑인과 히스패닉 등 소수계 크리스천에서도 상당히 많이 발견되어서다.
칼빈주의에서 비롯된 개념인 ‘미국적 예외주의’는 여전히 살아있다. 그리고 다른 개신교단은 물론이고 가톨릭, 유대계들도 그 신조를 받아들이고 있다. 말하자면 영국적 전통과는 거리가 먼 후기이민그룹에도 미국적 예외주의가 확산돼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이 같은 미국적 정서와 관련해 중간선거에 대한 해석이 새로이 시도되고 있고 동시에 ‘미국적 예외주의’는 정계, 특히 차기를 노리는 공화당 대권주자들의 정치 슬로건이 되고 있다.
무엇이 오바마 대통령을 탄생하게 했나. 많은 이유들이 거론 된다. 2년이 지난 지금에서 또 다른 각도의 분석이 제기된다. ‘쇠망의 길로부터 미국을 되돌리라는 염원’이 그 주요 이유였던 것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이다.
희망과 변화를 캐치프레이즈로 들고 나섰다. 그런 젊은 대통령 후보 오바마에게서 그 가능성을 보았다. 오바마 지지는 때문에 일종의 종교적 열정까지 띠게 됐다. 그 염원, 그 기대는 그러나 물거품이 됐다.
위대한 미국을 되찾으라는 숨겨진 어젠다를 미처 깨닫지 못했다. PRRI 여론조사가 밝힌 대로 다수의 미국인은 미국적 예외주의의 신봉자로, 위대한 미국을 계속 염원하고 있다. 이 사실을 간과했다. 그리고 유럽형 사회건설에만 매진했다.
그에 대한 반발이 ‘티파티’운동의 확산이다. 이와 함께 오바마의 민주당은 지난 중간선거에서 기록적 대패를 기록한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미국적 예외주의’는 이제 상아탑을 벗어나 정치 슬로건으로 육화(肉化)의 과정을 걷고 있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 미국의 쇠망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외침이 아닐까. 그 외침이 점차 거대한 공명현상을 일으키면서 새로운 형태의 미국적 내셔널리즘으로 분출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오바마는 나름의 미국적 예외주의 내러티브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그것이 결국 정치적 덫이 됐다.” 한 워싱턴 정치평론가의 지적이다. 미국이 맞은 위기, 예컨대 경제적 어려움, 중국의 추격 등을 위기극복의 자극제로 삼는데 실패, 패배감만 가중시킨 것이다.
이것이 말하는 것은 다름 아니다. 2012년을 향한 미국의 대권전쟁은 한 차례의 문화전쟁, 거대한 가치관의 전쟁이 된다는 것이다.
미국은 ‘하나님이 부여한 특별한 역할의 소명을 감당하는 위대한 미국’으로 거듭 날지, 아니면 한 때 세계를 풍미했지만 결국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마는 열강의 운명을 맞을지 그 싸움이 미국인의 내면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 내면의 싸움은 어떤 방향으로 결말지어질 것인가. 반환점을 돌아선 오바마의 정치적 행로도 여기에 달려있는 것이 아닐까.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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