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처럼 이번 여행에서도 대학로에 가서 연극을 보려고 전철에 올랐다. 전철에 올라 주위를 살피다 혼자 시익 웃었다. 65세가 넘는 내 또래 사람들이 무표정이랄까, 아니면 불만에 차 있다고나 할까. 어찌되었던 등산복이 아니면 이웃 집 마실가는 점퍼차림에 지친 모습의 사람들이 보였다. 반면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또 다른 하나의 그룹 사람은 옆의 친구와 아니면, 휴대 전화로 재잘대고 있거나 이이폰 4 세대니 갤럭시 S니 하는 요사이 새로 출시된 휴대폰에 매달려서 문자를 보낸다. 인터넷을 뒤져 본다거나 하다못해 유럽의 축구시합을 보기도 하는 등, 휴대폰에 아주 몰입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들의 얼굴과 몸매는 지금 65세가 넘은 우리 또래 사람들이 낳은 아이들이라 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얼굴색은 희멀건 하고 눈과 코 등 생김새가 다르고 큰 키에다 몸매는 유럽의 아가씨들 같았다. 65세 이상의 사람들과 이 시대의 젊은 사람과 이렇게 다룰 수 있을까?
너무 일찍 도착한 것 같았다. 나는 아침 겸 점심으로 “이랏사이 마생” 하는 일본말로 인사를 하는 소나무길 골목에 있는 일본식 식당에서 5,000원짜리 홋까이도 된장 라면을 먹었다. 음식점 손님이나 분위기는 진정 내가 외계인처럼 느껴지는 곳이었다. 식사를 끝내고, 한때 아이스하키 선수라고 무척이나 휘젓고 다니던 춘당지 연못이 있는 창경궁으로 향했다. 지금은 어찌되었나 호기심이 났기 때문이었다.
창경궁 명정전 앞에 앉아 좀 쉬려는데 내 귓전에 어떤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처마 밑에 철 망사가 보이시죠. 예전에는 철사가 아니라 특수 삼베로 만들었지요. 새가 둥지를 틀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새가 둥지를 틀면 구렁이가 기둥을 타고 올라오지요. 임금님을 깜짝 놀라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리고 저 임금님 앉는 자리 뒤에 병풍처럼 된 소위 일월 오봉이라는 그림을 보세요. 중국의 황제가 용의 그림을 쓰지 못하게 했지요. 그래서 해와 달 그리고 백두산, 한라산, 묘향산, 금강산, 한양의 삼각산을 상징하는 다섯의 봉우리로 팔도강산의 주인임을 뜻하는 그림으로 만족해야 했지요.”
나는 고개를 돌려 보았다. 어떤 젊은 여자가 열심히 듣고, 쓰고 있었고, 중년의 여자가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모 대학교의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는 여학생이 고궁지킴이 도우미란 직책의 여자를 특별 초빙, 설명을 듣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염치불구하고 방해를 하지 않을 터이니 그저 곁다리로 설명만 듣겠다고 하면서 거의 두어 시간을 쫓아 다녔다.
나는 운이 좋아 아주 흥미롭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했어야 할 것 같았다.
사실 창경궁이란 애초에 조선 초기 성종이 할머니인 세조의 정희왕후, 어머니인 소혜왕후, 작은 어머니인 안순왕후를 위해서 지은 궁이라 역사보다 궁궐 내에 여인들의 이야기가 더 많아서 저기가 장희빈이 약사발 받고 죽은 곳이요, 저기가 드라마 동이의 주인공인 최숙의가 놀던 냇가요, 저기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곳이요, 여기가 66세 영조가 15살의 정순왕후를 맞이한 곳이요, 하기도 하고 혜경궁 홍씨가 머물던 곳, 순조, 정조가 태어난 곳 등등 하면서 이야기에 끝이 없는 듯 했다. 고궁지킴이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어느덧 낮 공연 연극을 볼 시간이 되었다.
제목이 ‘배 고프다 제 4 탄’이었다. 제목이 사회를 고발 하는 듯 했고, 20,000 관객 동원에 시리즈 4탄이라 해서 꽤나 기대를 하고 극장 안으로 들어선 순간 아차 하였다. 오늘 창경궁에서나 극장에서의 관객이라는 사람들이 딸을 데리고 온 것 같은 사십 대 여자 관객 두어 명을 빼고는 모두 오늘 전철에서 보았던 그 휴대폰에 매몰되었던 그 세대의 아이들(?) 그것도 대부분이 여자들이었다.
내가 본 그날의 연극의 형태도, 관객을 무대로 불러서 대화를 같이 하기도 하고, 관객에게 빵을 던져 주기도 하는 등 여러 변화를 시도 하는 듯 했고, 그 세대들이 괴성을 지르며 같이 호흡을 하는 듯 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 내용의 함량이 모자라는 듯한 별볼일 없는 연극이었다.
다시 전철을 타고 약속된 친구들이 모인 한식당에 들어섰다. 순간 나는 오늘 전철에서 보았던 휴대폰 세대에게 밀려서 구석에 석고처럼 앉아있던 우리세대의 사람들을 다시 보고 있었다. 나는 확연히 나에게 이야기 할 수 있었다.
“그래, 이제 한국땅의 주인은 지구인이 아니고 화성인이야, 그리고 나는 한국이 화성인에게 빼앗겼는지도 모르고 지구를 돌고 있는 달나라 사람인지도 모르겠어.”
이영묵
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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