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잠실 롯데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소공동 롯데로 가기 위해 지하철 2호선을 탔다. 그 전에 잠실 지하상가를 지나는데 젊은 여성들로 넘쳐났다. 주말 오후인데다 요사이 강남역 지하상가가 리모델링 중이고 수능 시험이 끝나서 그럴 것이다.
동행했던 뉴욕에서 온 여성 사업가 손님도 그 인파에 놀라는 눈치였다. 그분이 가게들(거의 옷이나 화장품 등 여성관련 상점들)을 좀 살펴보자고 한다.
그러고 보니 그 곳에는 젊은 여성들뿐만 아니라 나이 든 여성들도 꽤 있었다. 난 들어가진 않았지만 고급 옷들도 많은 듯 했다. 난 지하철 상가 옷들은 1만~2만원짜리이고 많아야 10만원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30만~40만원짜리 옷들도 많다고 한다.
털 재킷 등 털 달린 옷들이 가게마다 쇼 케이스 진열 상품이었다. 올 겨울 여성 옷 유행이 그런 털옷을 입는 것이라고 한다. 여성 유행은 보통 파리에서 뉴욕으로 그리고 서울 등 전 세계적으로 전파되는 ‘트리클다운’(trickle-down) 현상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이젠 올 파리 패션이 곧바로 잠실 지하철 상가에 나타나는 시대가 되었다. 어느 면에서는 뉴욕을 건너뛰는, 더 이상의 시차(time-lag)가 없는 시대이다.
그분도 5만원 정도 내고 털 달린 옷을 하나 사는 것 같았다. 물어보지 않았지만, 생각하는 용도에 합당한 가격이니 구입하는 것일 것이다. 지하상가이건 백화점이건 가격 차이에 따른 품질의 차별 말고는 대등하다는 이야기이다.
롯데호텔의 경우 11층은 식당가이고 10층만 듀티-프리(duty-free)층인데 소공동 롯데는 원래의 10층뿐만 아니라 9층도 듀티-프리 샵들로 되어 있었다(잠실 롯데는 아직 10층만 듀티-프리 층이다).
소공롯데의 듀티-프리 점들은 중국인들로 만원이었다. 물론 일본인들과 내국인들도 많지만. 루이비통이나 프라다 가방점 앞에는 중국인들이 긴 줄을 서고 있었다. 이런 추세라면 그들 때문이라도 롯데는 듀티-프리 점을 8층까지도 확장하여야 할 것 같다.
그 기회비용은 롯데가 잘 알고 있겠지만. 한국인은 중국 공항 면세점에서 샤핑하고 중국인은 한국 공항에서 하고… 규모 면에서 한국이 손해를 볼 것 같지는 않다. 한국 내 면세점들이 부유한 한국인들을 끌어들이기는 하지만. 여행은 소비진작, 경기부양을 가져오고 그래서 관광은 범세계적 성장산업이다. 나아가 관광이 석유를 앞질러 세계에서 가장 큰 국제적 산업이 된 것엔 듀티-프리 샵이 그 일익을 담당하였다.
가 보지는 않았지만 인천공항은 더 하다고 한다. 그러니 루이비통이 해외에 최초로 호텔 신라와 협력 하에 인천공항에 면세점을 연다고 하는 모양이다. 한국에서도 곧, 가장 인기 있는 샤핑 몰은 공항 몰이 될지 모른다. 마치 피츠버그 주민들한테 가장 인기 있는 샤핑 장소가 피츠버그 공항인 것처럼.
헤어지기 전 호텔 지하 퍼브, 바비 런던에 가서 목을 축이기로 하였다. 이곳은 일요일 저녁이라 한산하다. 필리핀 가수가 귀에 익은 영어 팝송을 부르고 있다. 모처럼 코로나 맥주를 시키니 한 병에 1만3,000원, 10달러가 훨씬 넘는다. 전에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맥주 값은, 기억이 확실치 않지만 기천원이었던 것 같은데.
하긴 이젠 호텔 밖 커피 체인의 커피 값도 한잔에 6,000원이니… 커피 체인 스타벅스는 단순히 커피를 파는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집과 직장 사이에 존재하는 ‘제3의 공간’ ‘특별하다고 느끼는 공간’을 판다는 것이다. 타당한 면이 있지만 그 대가로 커피 가격이 턱없이 높아진다.
맥주는 ‘Goods’인 상품이지만, 술을 즐기지 않는 내겐 Bads는 아니더라도 무관심한 기호상품이기 때문에, ‘너무 비싸’ 앞으로 내게 맥주는 호텔에서는 마시지 못할 품목으로 변할 것 같다.
그래도 예전에 영국식 퍼브(public house)의 감을 얻기 위해 이곳 바비 런던과 명동 사보이호텔 구디구디를 몇 번 가 봤던 추억 때문에 온 것인데, 그 추억의 대가다.
호텔 앞 정원에 전기로 밝힌 크리스마스 데코레이션이 장관이다. 네온사인이 없어져 좀 어두운 느낌이 들었던 서울거리에 전기 불들이 흘러내리고 있다. 저 아름다운 광경 값을 나는 무엇으로 내고 있는 것일까? 그것이 무엇이든, 또 아무리 미미해도 그것이 이 사회에 구체적으로 기여하는 내 몫일 것이다.
정요진 한국 사이버산학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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