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카운티 한인회에서 ‘한국전 참전 기념비’ 건립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도산 선생이 활동했던 리버사이드에 안창호 선생 조형물을 세우고 초기 이민자들이 정착해 살면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보냈던 중가주 지역에 이를 기억하는 기념물을 세웠다는 소식은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그런데 오렌지카운티에 한국전 참전 기념비를 세운다는 발상은 좀 생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보도에 따르면 기념비를 만드는데 최소한 60만달러가 소요될 것이라 한다. 이 기금은 한국정부와 대기업의 지원, 그리고 모금을 통해 충당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리고 기념비 디자인 공모가 끝나는 대로 공청회를 거쳐 건립 장소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들었다.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는 성 싶은데 이 일에 관해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절차가 합리적이어야 한다. 60만달러라는 돈이 한인회 자체에서 마련되는 것이 아니고 외부의 지원과 모금에 의해 조달되어야 한다면 한인회 이사회의 결정만으로는 부족하다. 주민 공청회를 열어 기념비 건립에 관한 주민들의 의견을 묻는 게 당연한 순서다.
둘째, 일의 선후가 뒤바뀌었다. 오렌지카운티 한인사회는 ‘한인종합회관 건립’이라는 숙원사업이 있다. 이 지역 한인들이 각종 행사나 문화 활동, 결혼식 등, 공동 행사에 사용할 수 있는 종합회관 건립을 위해 한인회가 오랫동안 기금모금을 해 오고 있다.
현재 30여만달러가 모아져 있고 최근에 종합회관 건립 추진위원회까지 구성되었다. 이는 현 한인회장의 공약사업이기도 하다.
60만달러가 필요하다는 한국전 참전 기념비 건립을 추진하게 되면 종합회관 건립은 뒤로 미루어 질 수밖에 없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 시기에 공약사업을 제쳐두고 불요불급한 새 사업을 벌이는 게 타당한가. 한인들의 실생활에 도움을 주는 회관 건립에 역량을 집중하여 먼저 마무리하는 것이 순서다.
알다시피 워싱턴 웨스트 포토맥 공원에 미국인들의 한국전 참전 뜻을 되새기고자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이 기념비는 한국전에 참전했던 당시 제25 보병사단 출신 인사들이 1985년 기념비 건립을 위한 모임을 만들어 미국 의회 전쟁기념물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1992년 기공식을 갖고 1995년에 준공되었다. 시작에서 마무리까지 10년이 걸렸다. 공사기금 1,800만달러 중 1,300만달러는 미 정부가 부담하고 500만달러는 한국 기업들이 부담했다.
그런데 최근 미 동부지역 재향군인회에서 워싱턴 DC에 6.25전쟁 추모의 벽을 건립하려 한다는 뉴스를 들었다. 미 정계와 손잡고 1,000만달러 경비를 마련하고 있는 중이며 대표가 한국에 나가 모금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한 해 300만 이상이 DC를 찾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홍보 전략도 세워나가고 있다 한다.
기념비는 한 번 세우면 오래 지속될 조형물이다. 적절한 보존과 관리가 안 되면 애물단지로 전락할 개연성이 크다. 찾아보는 이가 적으면 건립의 의미는 반감된다. 작은 규모로 만들어진 기념비에서 그 실례를 볼 수 있다. 건립에서부터 관리와 홍보에 이르기까지 긴 안목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미 서부지역에 참전 기념비를 세운다면 100만이 넘는 한인이 거주하는 이 지역 한인사회의 위상에 손색없는 기념비가 되어야 한다. 워싱턴 참전 기념비나 6.25전쟁 추모의 벽 건립 규모와 과정은 좋은 선례다. 이런 일을 특정지역 한인회가 단독으로 추진하기는 버거운 일이다.
각 지역의 한인단체, 그리고 각계의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장기적이고 복합적인 마스터 플랜을 마련하면 좋겠다. 일부에서 추진 중인 한국 정원 만들기 사업과 연계하여 추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한다.
이 글을 쓰기 전에 OC 주민들과 단체장의 의견을 두루 수렴했다는 사실을 밝혀둔다. 한국전 참전용사를 기념하자는 좋은 뜻은 충분히 공감한다. 그러나 이 사업은 OC 한인회가 앞장서 서둘러야 할 만큼 시급한 사안이 아니다. OC 한인회는 지역 한인들의 숙원사업인 ‘한인 종합회관 건립’에 힘을 모으는 게 옳다.
정찬열/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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