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사리 또 한 해가 기울고 있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미국 경제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의 살림이 계속 쪼들렸던 한 해였다. 하지만 한국의 사정은 다소 나아 보이는 듯해 다행이란 생각이다.
금년에도 한국 기업들의 제품이 최고 수준의 품질과 디자인으로 세계시장을 확장해 왔고, 한국의 스포츠는 동계올림픽, 월드컵 축구, 아시안 게임, LPGA 등에서 선전을 거듭하여 스포츠 강국의 면모도 과시했다. 한국의 연예 상품들도 각지에서 인기를 끌어 왔고, 지난 달에는 선진 20개국의 정상회의인 G20을 손색없이 주최하여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세계 경제가 모두 어려운 가운데 한국이 비교적 잘 하고 있다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 사는 우리들이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에 이렇게 관심을 갖는 이유는 고국에 대한 사랑과 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이 잘 될 때 우리도 잘 되고 한국의 어려운 점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어려운 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 일어났으면 좋았을 일이 발생했다. 이 달 초 한국 국회에서 여당의 예산안 단독처리를 둘러싸고 벌어진 ‘난투극’ 말이다. 국회의원들이 육탄전을 벌여 국회가 또 다시 무법천지로 되었다. 고함, 욕설은 물론이고 주먹과 발길질이 오가고 멱살을 잡고 잡히고 집기가 내 팽개쳐지고 옷이 찢어지고 단추가 뜯겨 나가고 유리창이 박살나고 물건들이 부서졌다.
어이가 없다. 그런데 이 어이없는 일이 반복되고 있어 더 어이가 없다. 폭력국회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계속 되풀이되고 있는 연례행사가 되었다. G20 등을 개최하면서 “잘 나가고 있는” 한국으로서 창피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무엇이 문제일까? 한 마디로 한국사회에서 법치가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국회폭력, 위장전입, 특혜채용, 논문과 연구조작, 허위학력, 부정입학 등의 불법, 탈법이 저질러 질 때 정치가, 관료, 교수, 연예인 등 사회지도자나 유명 인사들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지만 사실 그들이 바로 우리 자신들이다.
불법집회, 불법 도로점거, 불법 상행위, 교통규칙 위반 등 거의 매일 보는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들도 바로 우리 자신들이다. 창피하고 부끄러운 얘기지만 언제부터인지 우리들 사이에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낮은 도덕성, 상황 의존적인 윤리의식, 그리고 정의 불감증이 팽배해 있다는 말이다.
법치(法治, Rule of Law)란 글자 그대로 법에 의해서 다스린다는 말이다. 무슨 일이든 법으로, 법에 따라 처리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는 오래 전부터 법 아닌 다른 것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거의 전통이 되어 왔다.
법 대신에 통치자의 아량이나 재량으로, 명분이나 자존심, 관계나 연고, 감정이나 인정 등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 말이다.
법치는 민주주의의 바탕일진대 법치도 민주주의를 먼저 시작한 구미에서 더 철저히 다루어지는 느낌이다. 얼마 전 원로 의원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미국의회는 그를 동료의원들 면전에 세워놓고 잘못한 일을 낱낱이 드러내 창피를 준 일이 있었다.
반면에(쉽게 교통질서 부재나 부정부패 만연 등을 통해 보아도) 중국, 인도, 동남아 등지에서 법치가 느슨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는 반드시 경제의 후진성 때문만은 아니다. 법치에 익숙하지 않은 문화적, 역사적 배경과 사람들의 비이성적 성향도 큰 몫을 하고 있다.
누가 어떤 일을 경우에 어긋나게 처리할 때 우리는 “그런 법이 어디 있어”라는 표현을 곧잘 한다. 이 말을 뒤집어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모두가 지키도록 정해 놓은 법을 따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쉽게 이런 법, 저런 법을 만들어 적용하고 있다는 말이다.
“어떻게 국회의원이란 사람들이 저런 짓을 할 수 있을까”하고 남만 탓하거나 남의 일처럼 여길 일이 아니다. 문화적 배경이건 우리들의 성향이건 어떤 이유에서든지 우리가 법치에 약하고 무딘 사람들이라면 이는 하루 빨리 고쳐야 할 일이다. 새해엔 법치에 관한 한 우리들 스스로가 어떻게든 좀 달라져야 하겠다.
장석정
일리노이 주립대
경영대 부학장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