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1학년 때였다. 필자가 다니던 H 대학과 라이벌인 Y 대학 사이에 풋볼 경기가 있었다. 두 학교 사이의 가장 큰 스포츠 행사로서 평소에는 썰렁한 스타디움을 꽉 채우고도 넘치는 많은 관중이 모인다. 재학생들은 물론 많은 졸업생들이 가족들과 함께 구경하러 온다. 오래간만에 옛 친구들과 만나 회포도 풀고 교정도 걸으면서 옛 추억을 되살려 보는 기회를 갖게 된다.
그런데 필자가 1학년 때는 그 풋볼 경기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재학생들에게는 홈 게임은 전부 무료인데 이 경기는 어웨이 게임이라 따로 표도 사야했고, 필자의 학교에서 한두 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곳에서 열리는 경기라 갈 생각을 못했다. 표 값도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들에겐 제법 부담스런 액수였다.
그런데 경기 당일을 불과 며칠 남겨놓지 않고 어느 선배 한 분이 이 경기에 가지 않겠느냐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표를 구해주시겠다는 것이었다. 크게 마음에 끌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고마운 배려를 차마 거절할 수 없어 그러겠다고 했다. 해서 다른 한인 학생들과 여럿이 함께 대학원에 다니던 다른 선배 한 분의 차를 얻어 타고 경기가 열리기 하루 전 그 대학이 있는 뉴헤이븐으로 내려갔다.
문제는 필자를 포함해 같이 내려간 일행 중에 그 누구도 당일 저녁에 머물 곳에 대한 대책을 세운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 학교 근처에 도착하자 갈 곳이 없었다. 학생들이어서 주머니 사정도 넉넉하지 않았기에 어디 호텔방을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어차피 타 지역에서 수만 명이 구경을 하러 오기 때문에 아주 일찍 예약을 하지 않고서는 방을 구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하는 수 없이 필자가 용기를 냈다. 근처 공중전화박스로 가서 그 지역 전화번호부에서 무조건 성이 ‘Kim’인 사람을 찾아보기로 했다.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면 같은 한국 사람일 것이란 생각에 한번 사정해 보기 위해서였다. 맨 처음 눈에 보이는 김씨 집에 전화를 했다. 아무도 받지 않았다. 그 다음 김씨 집에 전화를 했다. 전화가 연결됐다. 한국말로 인사를 했더니 다행히 반갑게 받아주셨다. 자초지종을 설명 드리자 잠시 난감해 하시더니 다른 사람 이름과 전화번호를 주시면서 그 곳에 한번 전화하여 부탁해 보란다. 바로 전화했다. 그런데 이 분이 설명을 들으시더니 하루 밤만 재워달라는 이 대책 없는 학생들의 요청을 선뜻 받아 주시는 거였다. 약 15분 정도 기다렸더니 어느 여자 분이 차를 타고 오셨고 그 분을 쫓아갔다. 그 후 저녁도 얻어먹고 내어 주신 두어 방에 나누어서 하룻밤을 보낸 후 다음날 아침까지 잘 먹고 경기장으로 갔다. 참 고마우셨던 분이었는데 불행하게도 지금은 이름이 생각나질 않는다.
이와 비슷한 경우가 대학을 졸업하고서 또 한 번 있었다. 대학 졸업 기념으로 친구 하나와 동북부와 캐나다의 노바스코셔 쪽으로 여행을 갔다. 필자의 아주 오래된 차로 말이다. 그런데 이 차가 보스턴을 지나 메인주에서부터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가속된 상태에서 속도가 내려가지를 않는 것이다. 액셀레이터 페달을 놓아도 속도가 줄지 않기에 브레이크를 밟고 있어야 했다. 신호대기에서 빨간불에 걸릴 땐 한 발 갖고서는 안 되어서 아예 두 발로 온 힘을 다해 브레이크를 밟고 있어야 했고, 서 있는 동안 옆 좌석에 앉아 있던 친구가 빨리 뛰어나가 차 앞을 열어 손으로 레버를 내려 속도를 떨어뜨리곤 했다. 그러다가 또 속도가 올라가면 다음 신호등에서 설 때까지 기다렸다가 같은 것을 반복해야 했다.
그렇게 노바스코셔에의 주청 소재지인 헬리팩스까지 왔는데 도저히 그 상태로는 관광은 고사하고 다시 버지니아까지 돌아갈 일이 까마득했다. 차를 고치고 갈 수 밖에 없는데 어디서 믿고 고칠 수 있을지 막막했다. 그 때 다시 떠오른 것이 김씨 성을 가진 한인을 찾아보는 것이었다. 전화번호부에서 김씨를 찾았더니 다행히 몇 명이 있었다. 한 군데 전화했더니 다른 김씨에게 전화해보라고 알려주었다. 그 곳에 전화했다. 전화가 연결된 곳은 그 지역서 태권도장의 관장으로 존경을 받으시는 지역 유지라는 것이었다. 모텔도 운영하신다고 했다. 덕분에 모텔방 하나를 그냥 얻어서 그 모텔 1층에 있는 일식집에서 저녁까지 얻어먹었다. 그리고 다음 날 소개해 주신 정비소에서 차를 손 본 후에 버지니아로 다시 향할 수 있었다. 정말 고마우신 분이었다. 그런데 이 분도 역시 성이 ‘김’이었다는 것 외에는 성함이 기억이 안 난다. 벌써 30년 전의 일이니 지금 필자가 헬리팩스에 가서 찾아보아도 더 이상 이 세상분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예전 필자가 학생 때 이렇게 염치없는 부탁에도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도와주셨던 그 분들의 후한 인심을 생각해보며, 과연 생면부지의 누가 지금 필자에게 갑자기 전화해 하룻밤만 신세를 질 수 있겠느냐고 물어본다면 선뜻 그렇게 방을 내어 줄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필자 외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다른 분들이 주위에 많이 있으니 그 사람들 핑계를 대고 그냥 지나치지 않을까 두렵다. 물론 필자가 학생 시절이던 30년 전과 달리 이제는 세월이 바뀌어 세상도 많이 변했고 인심도 덩달아 많이 야박해진 것도 사실이다. 아니, 사실 변하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란 걸 필자를 포함한 지금의 사람들이 애써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주머니 사정은 추워졌지만 마음은 그래도 훈훈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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