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논하거나 이슈에 접근할 때 주관적 또는 자기지식의 관념으로 접근한다면 정의와 본질 그리고 발전적 가능성을 간과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위 제목의 칼럼자의 글(한국일보 25일자 오피니언)은 한문을 쓰지 않고 소리로만 표시되는 한글로는 뜻을 알 수 없다는 내용인데, 한글이 소리로만 표시되는 글이라는 관념도 놀랍지만, ‘여의도 시계 제로’를 썸머 타임으로 이해했다는 그 한국어 독해 능력으로 한국어를 논하는 용기가 더 놀랍다. 나는 ‘여의도 시계 제로’라는 제목만으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뜻인지 바로 알아먹었으니 어쩌랴.
왜냐하면 ‘여의도’라는 주어의 의미를 가늠하면 그 다음 시계가 시간의 시계(時計)가 아닌 시야의 시계(視界)라는 것은 자연히 이해되기 때문이다. 한문 외에 어느 나라 언어나 앞, 뒤에 오는 단어나 문장으로 한 단어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시계라는 한문이 여럿 있다는 칼럼자에 지식의 관념이 한글을 이해하는데 오히려 독이 아니었나한다.
예로 유치원 네, 다섯 살짜리들 국어시간, 선생님이 ‘강을 건너야 하는데 다리가 없어요, 무엇을 이용해 건너요’ 하고 물으면 아이들은 ‘배요’한다. ‘상한 음식을 먹으면 어디가 아파요’ 하면 ‘배요’라고 하고 과일 중에 배를 들어 보이며 ‘무언가요’에 라고 해도 ‘배요’라고 답한다. 세 가지 답이 모두 ‘배요’다. 이 아이들은 똑같은 한국어로 각기 다른 세 가지 의미를 인지하고 있다. 위 칼럼자의 주장대로라면 배선(船) 배요, 배복(腹) 배요, 배리(梨) 배요 라는 한문 토를 달아 주어야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텐데 말이다.
한글이 그랬듯 영어도 18세기 초 까지 천대를 받았었다. 라틴어가 고급 언어로 유럽의 대세였고, 영국에서도 라틴어가 학문의 공통어였다. 영어는 소수 하층의 지방어였고, 복잡한 사상이나 시, 소설, 문서를 영어로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 시절 식자들의 관념이었다.
그런 환경에서 사백여년 전 존 밀턴은 영국이 국어를 가져야 되겠다는 신념으로 ‘실락원’이라는 명작을 영어로 써 냈다. 그렇게 멜케스터, 셰익스피어, 밀턴의 노력에도 영국에서 영어가 국어로 자리 잡는데 이백여 년이 더 걸렸고, 지금처럼 위상이 높아지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도쿄, 북경, 오바마에 한문 토를 안 달았다고 무슨 뜻인지 못 알아보는 한국 사람은 없다. 라디오, 초콜릿, 쇼트 트랙 등은 한문에서 온 말이 우리말화 했듯이 영어에서 왔지만 한국어화한 말이다.
한글사전에 라디오(명사)로 이미 오래 전에 등재 돼 있다. 시골 노인들도 라디오 하면 무얼 말하는지 알지만, 미국 사람이 강한 악센트로 레디오 하면 무슨 소리여 한다. 일본 사람이 ‘매그도나르도’한다고 시비할 건가. 언어는 소통의 수단이지 관념의 도구가 아니다.
중국은 컴퓨터, IT 시대에 한문을 놓고 엄청 고민했다. 수십만 명 용역을 동원해 ‘실용 한문 육천’하며 해결 됐다고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한글은 컴퓨터에 바로 입력이 가능하지만, 중국, 일본은 바로 입력이 불가능 하다. 속도가 생명인 IT시대에 세계 언어학자들이 한글을 주목하는 이유다.
핸드폰 같은 작은 기기 열두 개 자판으로 문자를 빠르게 주고 받을 수 있는 글은 한국어가 유일하다. 한국 언어의 구조, 한글자모의 설명과 사용법 예문 등의 해설서가 훈민정음과 합본인 ‘훈민정음해례’다. 세계 어느 문자도 어떻게 만들어지고 음성학적, 구조적 기능을 설명한 글자는 한글이 유일한 문자다. 부침으로 담보 상태에 있던 백년 전 언어학자 주시경이 귀한 글이라는 뜻의 한글이라 이름 해 오늘에 이른다.
물론 세계화 시대에 여러 나라 언어를 아는 것은 유익하다. 허나 한문을 모르면 한글만으로 뜻을 알 수 없다는 주장은 시쳇말로 웃기는 이야기다.
한글은 좌우 위 아래 다양한 조합으로 아직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한글만으로 뜻을 알 수 있는지 없는지 한글 세대 인기작가 공지영, 신경숙, 도종환, 한효주의 글을 읽어 보시라고 추천해 드리는 바이다.
정영근
블라덴스버그,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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