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미국월드컵이 열리기 직전이었던 것 같다. 패사디나에 위치한 당시 리츠-칼튼호텔에서 FIFA(국제축구연맹) 집행위원회가 열린 것을 취재한 적이 있었다. 오래전 일이어서 많은 부분이 희미해졌지만 그때 느꼈던 FIFA 집행위원회에 대한 인상은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그것은 극도로 폐쇄된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배타성과 오만함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취재기자들이 몰려들었으나 그 누구도 집행위원들과 인터뷰는커녕 얼굴 한 번 구경하기도 쉽지 않았다. 취재차 호텔에서 반나절을 헤맸지만 그때 이미 집행위원회 소속이었던 정몽준 위원의 배려로 회의 시작 전 잠깐 회의장 안에 들어갔다 나온 것이 소득의 전부였다. 수많은 취재기자들이 회의장 밖에서 경비요원들에 가로막힌 채 한참을 기다렸으나 이들은 회의를 마친 집행위원들이 취재진의 접근이 금지된 호텔 내 정원에서 기념촬영 하는 것을 유리벽 너머 먼발치서 바라보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그때 옆에 서 있던 한 백발이 성성한 외국인(국적은 모르겠다) 베테랑 기자가 “미국 대통령도 이보다는 취재하기가 훨씬 쉽다”면서 “저들은 자기들이 이 세상의 신들인 줄 안다”고 내뱉은 것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났지만 2일 2018과 2022 월드컵 개최지 선정투표에서 드러난 FIFA 집행위의 모습은 그때와 거의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올림픽과 함께 지구촌 최고의 스포츠 이벤트인 FIFA 월드컵을 좌지우지하는 이들 집행위원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파악한 언론매체가 전 세계에 단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보통 이런 레이스가 있다면 누가 유리하고, 누가 불리하다는 예상 정도는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기 마련인데 전혀 그렇지 못했다. 아무도 섣불리 예상을 내놓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나마 예상이라고 나온 것들도 실제 결과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2018년 월드컵의 유력한 후보였던 잉글랜드는 달랑 2표(이중 한 표는 자국출신 제프 톰슨 부회장 것이었다)를 얻는데 그쳐 제일 먼저 탈락하는 수모를 당했고, FIFA 자체평가 보고서에서도 모든 면에서 최고로 평가받았던 미국 역시 한번도 선두를 위협하지 못하고 고배를 마셨다. 반면 한때 가장 가능성이 적은 후보로 꼽혔던 카타르는 결과적으로 시종 여유있는 리드를 지킨 끝에 2022 월드컵 개최권을 따냈다.
미국의 수닐 굴라티 축구협회장은 결과가 나온 뒤 “FIFA의 조사 결과 미국은 분명 한국, 호주와 함께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면서 “특히 미국은 그 중에서도 최고 평가를 받았었다. 어떻게 카타르가 승리하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충격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의 패인은 유치신청이 약해서가 아니었다. 결정은 정치적인 문제, 특히 인맥과 전술 등에 의해 좌우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집행위원들이 객관적인 자료가 아닌, 자신들의 이해 기준에 따라 표를 줄 대상을 정한 것이라는 의미다.
FIFA 집행위원들은 수적으로 현재 단 24명(이중 2명은 자격정지상태)에 불과할 뿐 아니라 한 번 선출되면 거의 종신직이며 절대적인 파워와 함께 무엇보다도 누구에게도 잘 노출되지 않는 ‘비밀성’과 ‘폐쇄성’이라는 현대사회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특권을 누린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는 이들의 손에 엄청난 권력이 놓여 있으니 어떤 형태로든 부패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BBC 등 영국언론들은 잇달아 FIFA 집행위원들의 부패상을 해부하는 언론보도를 터뜨려 FIFA를 곤혹스럽게 했다. 그러자 FIFA 집행위원들은 가장 강력한 후보였던 잉글랜드에 사실상 전혀 표를 주지 않는 것으로 응답했다. 영국 월드컵 유치위원회가 자국 언론들의 잇단 FIFA 비판보도에 대해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두려워했던 것이 사실로 나타난 셈이다.
부패한 사회와 정권은 언론이라는 감시기구를 통해 견제가 된다. 하지만 FIFA 집행위는 바로 그 언론의 접근 자체를 원천 봉쇄하고 있어 견제가 쉽지 않다. 물론 FIFA라고 개혁의 바람을 영원히 비껴갈 순 없겠지만 언론이라는 접근조차 차단된 상태에선 그 때가 언제가 될지 현재로선 요원해 보인다.
김동우 부국장 대우·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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