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표결에 부쳐질 오바마 재정위원회 적자축소 플랜의 표제는 ‘진실의 순간(The Moment of Truth)’이다.
어제 표결하려다 내일로 연기된 이 보고서 최종안이 겨냥하는 삭감의 칼날은 어느 누구도 피해가기 힘들 것이다. 거의 전 국민의 희생 동참을 요구한다. 이미 해당 당사자들이 거세게 반발하며 채택저지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보고서는 이런 희생이 없이는, 희생을 설득하는 정치인들의 용기가 없이는 미국의 재정을 뒤흔들 엄청난 적자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는 ‘불편한 진실’을 단호하게 지적하고 있다.
지루한 숫자의 나열인 ‘적자’는 골치 아픈 이슈이긴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사항만 잠깐 짚어보기로 하자.
2010년 회계연도 연방예산은 2조2천억 달러의 세금을 거둬들이고 3조6천억 달러를 지출하는 것으로 편성되었다. 그 차액인 1조4천억 달러가 미 시상 2번째 규모라는 현 적자다. 세수입과 지출이 이 상태로 계속되면 향후 10년간 적자는 매년 1조 달러씩 늘게 된다.
경기가 활성화되어 세수가 늘어나면 문제해결은 간단하다. 의회예산국은 경제가 좋아지면 10년후 세수가 4조6천억 달러로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한다. 부시감세안이 금년말로 완전 종료될 것을 전제로 한 수치여서 공화당의 주장대로 부유층에까지 감세안이 연장된다면 달라진다.
정부예산이 반드시 균형을 이루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적자가 국민총생산(GDP)의 3%를 넘지 않는 수준까지만 축소하면 합리적 운영이 가능하다. 현재 적자는 GDP의 10%나 된다.
연방정부의 지출 분야는 크게 5분야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연방정부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은 메디케어-메디케이드-소셜시큐리티의 세 프로그램이다. 40%를 차지한다. 다음은 국방예산으로 20%, 교육과 환경보호에서 식품안전과 외교, 기간산업, 과학 리서치에 이르기까지 비국방 재량지출항목이 20%, 국가부채에 대한 이자 지불이 6%, 그리고 나머지 14%는 실업수당과 푸드스탬프 등을 포함한 사회안전망 지출이다.
정부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지출을 줄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어디서 얼마나 줄여야 할까. 세수도 늘려야 한다. 누구에게서 얼마나 더 세금을 징수해야 할까…결국 적자해소 대책은 이 두 질문에 설득력 있고 합리적인 대답을 찾아내는 것이다.
59페이지에 달하는 ‘진실의 순간’도 지출삭감과 세수증가를 배합한 ‘하이브리드 플랜’을 담고 있다. 모든 대책마다 찬반이 엇갈리지만 특히 뜨거운 쟁점은 네 가지다.
첫째는 소셜시큐리티 수혜연령을 69세로 끌어올리기다. “경제가 더 나빠지면 80세까지 일하라고 할 것이냐? 아니, 그때까지 마음 편히 일하도록 취업은 보장할 것이냐?” 현재 소셜시큐리티 수혜인구는 5천만명에 달한다. 이같은 최대 이해집단의 분노에 찬 반발을 잠재우긴 쉽지 않을 것이다.
둘째는 국방예산 대폭 삭감이다. 성역시 되어 온 국방예산 삭감은 리버럴 민주당 의원들도 역풍이 두려워 잘 나서지 않는 부분이다.
셋째는 주택모기지 이자에 대한 세금공제 혜택 제한. “가뜩이나 빈사상태에 빠진 주택경기에 확인사살까지 할 셈인가?” 주택건설업계의 비명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다.
넷째, 결국 논쟁의 핵심은 지출삭감과 세금인상의 비율로 귀착될 것이다. 민주당은 삭감 줄이기에 필사적이고 공화당은 세금인상을 강력 반대한다. 이번 ‘국가 재정책임 및 개혁위원회’ 보고서는 삭감과 증세의 비율을 3대1로 잡고 있다. 세금인상 보다는 지출삭감 쪽에 비중을 둔 것이다. 민주당 대통령이 출범시킨 위원회이지만 보다 강한 반발이 리버럴 진영에서 터져 나오는 이유다. 노조는 “근로계층은 죽으라는 것이냐”고 비난했고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한마디로 수용 불가능”이라고 잘라 말했다.
자칫 국가의 재정위기까지 초래할 수 있는 적자해소를 위해선 지출삭감과 세금인상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 정답을 실현하는 데는 정치생명을 걸어야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불행히도 정답이 고통을 수반하는, 그래서 유권자에게 인기가 없는 대책들이기 때문이다.
최종 보고서는 위원회 18명 중 14명이 서명해야 채택되고, 채택되어야 의회 표결에 회부될 수 있다. 현재로선 ‘초당적’ 위원회에서의 채택 전망조차 어두운 편이니 양극화된 의회에서의 가결은 거의 불가능 할 것이다.
솔직히 재정위원회 공동위원장들의 경고처럼 현 미국의 재정적자가 국가파멸을 초래할 ‘암적 존재’로 악화될 것인지, 전문가가 아닌 우리는 잘 알 수가 없다. 어쨌든 보고서로 적자에 대한 ‘불편한 진실’이 드러났고 이제 적자는 진지한 토론이 필요한 우선과제로 던져졌다. ‘적자 대책’이 미국의 뜨거운 화두로 떠오를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새해에도 양극화 대립의 교착상태를 예고하는 워싱턴을 향해 공동위원장들은 호소한다. 경고 담긴 호소다 : “미국의 문제는 심각하다. 시간이 없다…당신이 어느 당이든 다음세대를 위해 보다나은 삶에 대한 약속을 지켜야 하는 애국적 의무가 있다”
오바마가 적극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고 공화당이 이념을 뛰어넘는 용기를 보인다면 불가능해 보이는 이 의무를 지킬 수도 있을 텐데…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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