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동안 조용하던 토끼 마을에 또 사단이 났다. 지난 봄 한밤중에 몰래 담을 넘어 새끼 돼지들을 물어 죽인 늑대들이 이번에는 대낮에 느닷없이 돌팔매질을 해 새끼 돼지 여럿을 죽인 것이다. 지난 번 습격 때 혼이 나고 “대비를 철저히 하겠다” “다시 공격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던 돼지 집안의 공언은 이번 사건으로 빈말임이 여실히 드러나고 말았다. 날아온 돌멩이에 대응할 돌들도 제대로 준비해 두지 않았던 것은 물론이고 싸움이 “불필요하게 확대되지 않도록” 만든 교전 수칙에 따라 상대방이 던진 돌과 같은 크기의 돌에 던진 숫자만큼만 던지기 위해 날아오는 돌을 세다 맞아죽은 돼지까지 있었다.
이 교전 수칙이라는 것은 일단 상대방 공격이 끝난 후에는 반격을 가할 수 없게 돼 있기 때문에 돌을 던진 늑대들이 희희낙락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돼지들은 속수무책으로 앉아 있을 수밖에 없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치듯 짱돌을 던져 수십 마리의 돼지 사상자를 낸 늑대들은 “사상자가 발생했다면 유감이지만 날아온 돌에 가만히 있다 맞은 것은 가만히 있던 돼지 책임”이라는 ‘자는 귀신도 일어나 웃을’ 성명을 발표했다.
덩치로 보면 돼지 개개인도, 돼지 집안 전체도 늑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돼지들은 수공예품을 만드는 재주는 있어 이를 내다 팔아 먹을 것은 풍족하다. 배운 도둑질이라고는 남의 물건 도둑질 하는 재주밖에 없는 늑대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러면서도 매번 늑대에게 당하는 것은 전면전이 벌어질 경우 만들어놓은 공예품이 다 망가지는 것은 물론이고 넘치는 먹을 것을 남겨두고 일찍 이승을 하직해야 하는 돼지들이 많이 생기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굶어죽으나 싸우다 죽으나 죽기는 매일반이라는 늑대들과는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다. 늑대들도 이를 알기 때문에 마음대로 돼지 집안을 유린하는 것이다.
돼지들은 이런 늑대 등쌀에 견디지 못하고 지난 10년간은 늑대가 좋아하는 돼지 살점을 상납하며 근근이 평화를 유지해왔다. 그러던 것이 늑대의 요구가 끝도 없자 돼지 마을 지도자가 바뀌면서 더 이상 살점을 주지 않기로 했고 이에 앙심을 품은 늑대가 계속 심통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태로 여러 돼지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지만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다. 무슨 일이 터질 때마다 늑대 편을 들던 ‘이상한 돼지’들도 이번만은 늑대를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벌건 대낮에 같은 돼지가 죽는 모습을 보면서까지 차마 늑대를 옹호할 수는 없었나 보다. 지난 번 야밤 늑대 습격 사건을 돼지 집안의 자작극이라고 우기던 돼지들도 이번에는 조용하다.
이보다 중요한 변화는 늑대의 패악질이 계속될수록 전통적 우방이었던 독수리 마을과의 관계가 돈독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독수리들은 과거 돼지 집안이 동네 깡패들에 얻어터질 때마다 돼지를 도와줬는데 무슨 영문인지 일부 ‘이상한 돼지’들은 사사건건 독수리를 물고 늘어져 한 때 관계가 소원했었다.
그러던 것이 늑대의 도발이 계속되면서 돼지가 믿을 것은 독수리밖에 없다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도 돼지와 독수리는 늑대 집 울타리 근처에서 사상 최대의 방어 훈련을 했다. 이에 대해 늑대는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며 펄펄 뛰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좌시하고 있다. 늑대도 독수리의 날카로운 발톱과 부리에 할퀴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늑대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바로 독수리다. 독수리와의 굳건한 동맹보다 더 효과적인 늑대 도발 방지 정책은 없다.
돼지 집안은 앞으로는 정말 진짜 당하고만 있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코미디 같은 교전 수칙도 바꾸고 돌멩이도 단단히 비축해 놓겠다고 한다. 이토록 피를 보고도 또 가만히 있는다면 돼지는 동물의 자격도 없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하지 않는가. 옛날 한 성웅 돼지는 “살려고 하면 죽고 죽기를 각오하면 산다”는 말을 남겼다. 후손 돼지들이 선조의 가르침을 얼마나 따를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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