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필적고의’(未畢的故意)란 말이 떠오른다. 자기의 행위로 말미암아 어떤 범죄결과의 발생 가능성을 인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의 발생을 인용(認容)한다. 그 심리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정부가 한 말이던가. 김정일 체제는 한마디로 미친 체제라고. 그 체제가 말 그대로 미친 짓을 하고 나섰다. 미국의 핵과학자를 평양으로 불러들여 자신들의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여주고 2000개의 원심분리기를 가동하고 있다고 과시했다. 그리고 바로 며칠 후 서해상의 대한민국 영토 연평도에 무차별 포격을 가해왔다.
사상 유례가 없는 3대 세습에 광분해 있다. 그러니 못할 짓이 없는 게 북한체제가 아닐까. 천안함 사태에, 또 한 차례의 핵 장난에, 그리고 연평도포격에 이르기까지. 그 북한에 온 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다. 그 뒤로 그런데 한 모습이 어른거린다. 냉소를 머금고 있다고 할까. 그런 북경의 얼굴이다. 그와 동시에 떠오른 게 바로 ‘미필적고의’란 용어다.
언뜻 보면 상황은 종전의 패턴에서 하나도 다를 것이 없는 것 같다. 새로 핵무기 개발프로그램을 공개한다. 미국과 서방은 즉각 규탄에 나선다. 그러자 긴장 수위를 더 높인다. 군사적 도발을 하는 거다. 상황은 한층 악화되어 간다.
마침내 중국이 거들고 나선다. 자제를 촉구한다. 그리고 대화의 장을 마련한다. 북한도 핵시설 동결의사를 넌지시 보인다. 별 대안이 없다. 마지못해 미국은 대화에 나서고 그 대가로 북한은 보상을 받는다. 중국은 주요외교무대의 주인공으로 새삼 각광을 받고.
한 주가 넘었다. 북한의 연평도포격에 따른 한반도 긴장상황이. 이 사태는 결국 종전처럼 유야무야 되고 말 것인가.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게 전개될 것 같다.
왜 북한은 포격을 가해왔나. 아무래도 권력승계와 관련된 내부사정 같다. 많은 관측통들의 지적이다. 과거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이어지는 권력승계과정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80년대 아웅산 폭파사건, KAL기 폭파사건 등이 그것이다.
사정은 그 때보다 훨씬 나쁘다. 이런 상황에서 3대 권력세습에 매달리고 있다. 그 자체부터가 무리다. 그러니 긴장국면을 조성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북한의 도발은 때문에 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관측이 일부에서 강력히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보다도 중국에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왜 북한은 포격을 가해왔나. 이에 대한 또 다른 분석에 따른 해결방향제시다. 워싱턴의 분석은 이쪽에 한 층 무게를 두는 느낌이다.
번번이 북한을 감싸왔다. 천안함 사태 와중에도 두 번씩이나 김정일 방문을 호스트하면서 극진한 예를 다했다. 김정일이 아들 정은과 함께 장춘시를 방문했을 때 후진타오는 정치국 상무위원을 9명을 모두 대동하고 영접했다. 이 같은 감싸기에, 극진한 예우가 또 한 차례의 무모한 도발을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분석이다.
아무리 이성을 상실한 체제가 북한이라고 해도 믿는 구석이 없이 이처럼 무모한 도발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새삼 제기되는 것이 중국책임론이다.
“중국은 북한을 근본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하는 데 있어 중심 측이다.” 오바마 행정부 고위당국자의 발언이다. 이번 사태에 보다 큰 책임은 중국에 있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여·야를 따질 것이 없다. 민과 군의 구별도 없다. 거기다가 언론도 가세했다. 그러면서 확산되는 것이 중국책임론이다. 이 중국책임론의 행간행간에는 ‘혹시…’하는 음모론을 경계하는 시각도 담겨져 있다.
미필적고의를 넘어 묵인 내지, 교사(敎唆)에 의한 도발일 가능성도 있다는 시각 말이다. “북한의 농축 우라늄시설 공개, 그리고 뒤이은 연평도 포격은 오바마 대통령의 동아시아정책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다.” 로버트 카플란이 파이낸셜 타임스에 기고한 내용으로, 이 글에도 그런 시각이 엿보인다.
동아시아지역에서 중국의 도전이 날로 거세지고 있다. 이 같은 중국의 도전을 맞아 미국은 전방위 외교를 펼치면서 중국 봉쇄의 그물을 치고 있다. 그 상황에 연평도 포격사건이 발생했다. 그 타이밍에 주시한 것이다.
하여튼 미국의 대응이 여간 예사롭지 않다. 한미 해상기동훈련재개와 함께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를 서해에 진항시킨 것부터가 그렇다. 이는 북한을 향한 무력시위로만 볼 수 없다. 진짜 목적은 중국에 대한 무언의 압력이다.
관련된 워싱턴포스트의 기사가 관심을 끈다. 과거 클린턴과 부시 행정부 때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인용했다. 중국은 미국이 정말로 군사조치를 취할 자세를 보일 때만 북한에 압력을 넣었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조지 워싱턴’호 서해진항결정을 이 맥락에서 풀이했다.
그리고 이런 지적도 했다. “중국은 근본적으로 북한을 아시아의 동독으로 보고 있다. 그 동독이 무너졌을 때 소련도 붕괴한 사실에 유념한 것이 중국의 북한정책”이라는 것이다.
연평도포격사건은 어쩌면 동아시아의 안보지형이 구조적 변화를 보이고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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