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성인 릴케가 살로메와 톨스토이를 만나지 않았다면, 또 니체와 키에르케고르의 사상과 접촉하지 않았다면, 그의 위대한 실존사상이 깃든 시와 작품은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추수감사절이다. 헤어졌던 가족들이 만나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사랑을 나누는 날이다. 자녀들을 대학과 사회로 내보내고 바람 든 무처럼 가슴으로 바람소리 들으며 기다려온 부모에게는 더할 수 없이 기쁜 만남의 날이다.
삶의 역사는 만남으로 이어진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 학문과의 만남, 예술과의 만남, 삶의 면면에서 접하게 되는 다른 객체와의 만남이 우리의 인생이다. 지난 주일 각 교회에서도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리고 교우들과 서로의 신앙과 사랑과 만나는 기회를 가졌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라” 패사디나의 한 교회. “신앙생활에서 접근은 하지만 접촉에는 주저한다. 그저 그 근처에 있지 말고 확신과 사랑으로 접촉해야한다. 문제를 안고 주님과 함께 가야 한다” 확신에 찬 목사님의 설교이다.
우리는 삶에서 때로 단테의 천국과 지옥의 9계단과 만나기도 하며 생존을 위한 안간힘을 다한다. 예기치 못했던 참담한 경험과 난제의 허방에서 헤매기도 하고, 기쁨과 슬픔의 골짜기와 조우하며 외로움의 쓰나미를 덮어쓰기도 한다.
이 모든 만남이 우리의 삶의 면면한 그림이며 기록이다. 인생은 수없는 만남으로 이루어졌기에, 새로움과의 만남에서 접근과 접촉의 문제는 우리 일상생활에서 과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에서 알리사와 제로옴은 사촌형제로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어느 날 목사님의 설교 중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을 듣는다. 알리사는 성서의 가르침대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고상한 금욕주의적 이상대로 도덕적 수련을 실천에 옮긴다.
그녀는 제로옴과 헤어지고 스스로 선험적 덕으로 자신을 얽매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 힘겨운 싸움을 하다 결국 죽게 된다. 임종 때 알리사는 자신에게 묻는다. “나의 마음이 부인하는 이 덕은 과연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라고.
지드는 지성인의 프리즘으로 세상을 보는 도덕적 이성적 선입견에서 자신을 해방시켜 정신의 자유를 얻는다면 세상은 더 넓고 깊고 아름다울 것이라 주장한다. 또한 그의 소설은 자아의 희생으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신앙의 형식주의를 고발한 문학이다. 21세기의 정신적 자유 속에서 신앙과 접하는 우리들은 행복하다.
파스칼도 “우리가 처참한 상황을 경험하지 않고 하나님을 아는 일은 우리에게 자만을 가져온다. 하나님을 모르고 우리의 처참한 상황만을 알 때에는 절망이 뒤따른다. 예수님께서 인간이 처참한 상황에 있을 때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주기 때문이다”고 했다.
“착하고 정직한 것만이/ 마지막 감동이라고 굳게 믿었던/ 젊고 싱싱한 날들은 멀리 가고/ 노을이 색을 바꾸며 졸고 있습니다” (마종기, ‘디아스포라의 황혼’ 부분)
“한 세월 멀리 겉돌다 돌아와 보니 너는 떠날 때 손 흔들던 그 바람이었구나// 바람은 흐느끼는 부활인가, 추억인가, 떠돌며 힘들게 살아온 탓인지 아침이 되어서야 이슬에 젖은 바람의 잎, 무모한 생애의 고장 난 신호등이 나이도 잊은 채 목 쉰 노래를 부른다” (마종기, ‘길목에 서 있는 바람’ 부분)
‘현실’을 이방인으로 견디며, 과거의 추억에 잠기어 회한의 노래를 부르는 고장 난 신호등, 그러나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은 현재의 실존적 삶이다. 오늘을 살며 오늘과 만나고, 현재만이 완전한 내 것이기에 돌아보지 말자. 돌아보면 울컥 가슴이 아프기에.
진정한 만남은 대화에서 시작해서 마침내는 영적 합일을 이루는 경험을 의미한다. 인간이 진정으로 인간다워지기 위해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장벽이 없이, 허위가 없이 영혼과 영혼의 교섭 곧 마음과 마음의 교제가 필요할 것이다.
김인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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