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은행 직원들이 은퇴하면, 남은 것은 넥타이라고 한다. 깔끔하게 입는다는 것은 남의 시선에 거슬리지 않게해서 좋다. 하지만 유달리 우리네의 사고방식은 너무 외모에 신경을 쓰는 것 같다. 속빈 강정이라도 거죽만 번지르하면 쉽게 믿어버리는 경향은 없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기꾼이 더 잘 차려 입는다.
오래 전, 한국을 방문해서 고속버스를 타고 지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휴게소에서 내려보니 한 사람이 자신의 자동차 본네트를 열고서는 들여다 보고 있었다. 차를 조금 손볼 줄아는 터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도와주려고 가서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아래 위를 쳐다보고는 대꾸도 하지 않는다. 왠 거지같은 녀석인가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만약 예수님께서 초라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신다면 우리는 어떤 태도로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닷컴 시절에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나왔다. 이 아이디어들이 모두 오늘날 우리에게 필수 불가결한 생활 도구가 되어버린 인터넷 세상이다. 당시 젊은이들이 편안하게 책상 앞에 앉아서 일하며 기발하게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직장의 복장 규정 변화였다. 20여년 전 다니던 직장에서는 금요일을 자유 복장의 날로 (casual day) 정했다. 그리고는 매주 금요일 저녁 얼마나 많은 차들이 일과 후에도 주차장에 남아있는지 점검을 했다. 금요일이면 평상시보다도 더 많은 차들이 일과 후에도 남아있음을 알고는 복장 규정을 전면 폐지했다. 복장 규정 폐지가 능률 향상에 크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 아이디어는 실리콘밸리에서 동부로 재빠르게 퍼져나갔다. 일본에서 출장오는 사람들에게도 회의에 양복을 입지 않으니까 그렇게 준비하고 오라는 연락을 취했었다. 그들 역시 좋아했다. 그후로 직장에서 양복입은 사람을 보면 취직 인터뷰하러 온 사람들이다.
일요일이면 한인 교회에서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양복을 입고 예배를 드린다. 대통령을 만나러 가는데도 양복을 입는데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날 양복을 안입을 수 없지 않느냐고 말한다. 신약 성경의 요한 복음 11장에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빠인 나사로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스도께서 죽어 무덤 속에 있는 나사로에게 “나사로야 나오라”고 하신다. 죽어 수의를 입은 그대로 나오라고 하신다. 가식없이 자아가 죽은, 있는 그대로 하나님 앞에 서기를 그리스도는 원하신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사무엘 상 16:7)”는 말씀이 뜻하는 바가 크다. 사람을 만나러 갈 때에는 양복을 입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을 만나러 갈 때에는 복장 규정이 없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속에 든 생각 그대로를 가지고 와서 다 토해내길 원하신다.
한국 중, 고교의 교복제도가 자유를 억누른다고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우리들의 과시욕을 억누를 수 있어 좋았던 것 같다. 한국은 아주 큰 명품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자기 과시욕이 자신은 물론 사회에서 위화감을 조장하고 있다. 아무리 옷차림이 사람들을 계층으로 나누는 세상이지만, 교회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 고종 황제가 상투를 자르도록 단발령을 내렸을 때, 많은 신하들이 반대했지만 이제는 가르마 타고 양복입는 일이 오히려 우리의 전통이 되었고 권위의 상징이 되었다. 다니는 교회에서는 양복입은 사람들이 없다. 사실 나 자신은 양복을 입기도 싫어하지만 입을 일이 그렇게 없어 복장은 결혼식과 장례식을 빼고는 항상 자유 복장이다. 직장의 회장도 자유 복장이고, 소속 교회의 담임 목사도 자유 복장이라, 맘 편하게 자유 복장으로 일하고 신앙 생활한다. 목사인 사돈과 처음 상견례할 때에도 서로 자유 복장으로 만나서, 대화를 나눌 정도로 외모에는 신경을 안쓴다.
얼마전, 이 지역에서 여섯분의 여성 화가들이 그룹전을 열었다. 그 중의 한분이 초대를 해서 이웃에 계신 분과 함께 갔었다. 그 이웃은 문화 생활을 하려면 정장을 해야 한다며 양복으로 빼입었고 카메라도 지참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렉서스 차로 가자고 했다. 전시장에서 각 작품에 관해 화가와 대화를 나누다, 자신의 작품 앞에 선 화가 사진을 한장씩 찍었다. 위치를 정해주고 어디를 보라고 한 후 찍은 사진들이었다. 집에 와서 사진을 컴퓨터 화면에서 한장씩 봤더니, 작가들의 눈길이 모두 옆에서 사진찍고 있던 바로 그 양복으로 빼입은 이웃에게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이웃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야기했다. “역시…, 옷이 날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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