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금융위기 이전까지 망하기 직전에 놓인 기업을 정부가 개입해 살려야 하느냐를 놓고 가장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던 것은 크라이슬러 자동차 케이스였다.
1979년 크라이슬러는 누적된 경영난으로 폐업 일보 직전까지 갔다. 당시 이 회사 회장이던 리 아이아코카는 회사가 문을 닫을 경우 대량실업 사태가 발생할 것이며 이들에게 연방 정부가 지급해야 할 실업 수당만 해도 천문학적 숫자라며 한 번만 회생의 기회를 줄 것을 호소했다.
대기업 특혜를 반대하는 좌파는 좌파대로, 정부의 시장 개입에 반대하는 우파는 우파대로 구제 금융에 반대했지만 아이아코카의 간절한 호소는 여러 의원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크라이슬러는 원하던 도움을 받았다. 이 때 정부가 해 준 것은 직접 돈을 준 것은 아니고 크라이슬러가 진 빚에 대한 지불 보증이었지만 어쨌든 크라이슬러는 이를 통해 채권자들의 압박에서 벗어나 정상 영업을 할 수 있게 됐다.
아이아코카는 1980~82년 불경기에 맞춰 크기가 작고 연비가 좋은 다지 아리스와 플리머스 릴라이언트를 출시했다. 비씬 기름 값에 시달리던 미국인들에 이 차는 좋은 반응을 얻었고 이는 크라이슬러 재기에 도움을 줬다.
그러나 크라이슬러가 살아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미니밴이었다. 포드 사장으로 재직할 때부터 아이아코카는 온 가족이 함께 탈 수 있는 미니밴 개발을 주장했으나 대주주인 헨리 포드 2세와 의견이 맞지 않아 결국 쫓겨난 적이 있다. 크라이슬러로 와 마음껏 자기주장을 펼 수 있게 된 그는 같은 이유로 먼저 쫓겨나 크라이슬러로 와 있던 핼 스펄릭과 함께 미니밴 개발에 전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나온 것이 플리머스 보이저와 다지 캐러밴이었다.
다른 누구보다 먼저 미니밴 시장을 독점한 크라이슬러는 소형차 다지 옴니와 플리머스 호라이전을 출시하며 승승장구했고 한 동안 어느 자동차 회사보다 짭짤한 수익을 올리며 확장가도를 달렸다.
1925년 자동차 업계의 후발 주자로 출발한 크라이슬러가 GM, 포드와 함께 3대 자동차 회사로 올라설 수 있었던 비결은 공기 필터와 오일 필터, 고압 엔진을 주요 자동차 회사 가운데 처음 개발해 대량 생산한 데 있다. 타이어에 바람이 빠져도 바퀴가 튀어나가지 않도록 림을 휘게 만든 것도 크라이슬러가 처음이다. 이런 이노베이션은 결국 다른 자동차 회사도 따라오지 않을 수 없었다. 남이 하지 않는 것을 먼저 개발해 치고 나가는 과감함이 늦게 시작했으면서도 미 3대 자동차 회사로 이름을 올리게 된 비결인 셈이다.
2008년 금융 위기로 망할 뻔하다 500억 달러의 정부 구제 금융을 받고 가까스로 살아난 GM이 성공적인 신주 발행을 통해 ‘새 GM’으로 거듭 태어났다. 많은 전문가들이 폐업을 점치던 GM이 이처럼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은 파산을 통해 악성 부채를 털고 노조의 대폭적인 양보를 받아내 비용을 줄인 탓도 컸지만 무엇보다 릭 웨거너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차 품질이 개선됐기 때문이다.
컨수머 리포츠를 비롯한 자동차 평가 기관들은 GM 자동차의 성능이 이제는 일본이나 유럽 차와 비교해도 큰 손색이 없다고 보고 있다. 단지 ‘미국 차는 고장이 잘 난다’는 오랜 인식 때문에 소비자들이 찾지 않을 뿐 객관적으로는 ‘품질 격차’를 많이 줄였다는 것이다.
반면 GM과 똑같이 구제 금융을 받은 크라이슬러는 아직도 빈사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컨수머 리포츠 최근 평점을 보면 ‘소비자가 사도 괜찮을 차’ 항목에 크라이슬러 제품은 거의 없다. 외국은 그만 두고 미국 차끼리 비교를 해도 GM과 포드에 크게 뒤지는 것이다.
어느 시장도 마찬가지지만 영원한 선두주자는 없다. 끊임없이 남보다 나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기업만이 노력하는 동안만 조금 앞서 갈 수 있을 뿐이다. 크라이슬러가 지금처럼 맥 빠진 모습을 계속 보여준다면 ‘아메리칸 모터스’를 비롯한 수많은 자동차 회사들처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은 시간문제처럼 보인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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