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의회가 이번 주부터 레임덕 회기에 들어갔다.
절름발이 오리, 레임덕(Lame duck)이 미 연방의회 공식기록에 등장한 것은 1800년대 중반이었다. 1700년대 런던증권가에서 파산으로 비틀대는 기업가를 비유하던 ‘레임덕’은 미국으로 건너와 낙선이나 은퇴로 임기가 만료된 공직자를 뜻하는 정치용어로 정착했다.
초기 레임덕 기간은 참 길었다. 11월 선거후 새 대통령이 취임하고 새 의회가 개원하는 3월초까지 무려 17주에 달했다. 아무것도 안하거나 못하는 권력누수의 상태에서 부작용이 속출하던 레임덕 기간이 7주로 줄어든 것은 1933년 수정헌법 20조에 의해 대통령 취임과 의회개원이 1월로 앞당겨지면서였다. 선거를 치른 후 연방의회 레임덕 세션이 매번 꼬박꼬박 열린 것은 아니었다. 대공황의 와중에서도 열리지 않았고 2차 대전 등 전시를 제외하곤 대부분 생략되었다.
레임덕 회기의 비중은 조금씩 커진 것은 최근 들어서다. 주로 지연된 예산안 처리가 단골안건이긴 했지만 클린턴 탄핵, 북미자유무역협정, 국토안보부 창설 등 주요법안이 퇴장하는 레임덕들에 의해 결정되기도 했다.
요즘 워싱턴엔 레임덕들이 유난히 많다. 새로 입성하는 공화당 새 하원의원만도 80명에 이르니 다음 달이면 낙향해야할 양당의원은 상하원 합해 100명이 넘는다. 이들이 마지막으로 참여할 금년 레임덕 세션은 수조달러 규모의 안건을 다루는 숨 가쁜 회기가 될 것이다.
표결을 기다리는 20여개 법안들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반드시 상정처리 되어야 할 사안이다. 우선 시행 만료가 눈앞인 법안이 3개나 된다. 12월말로 종료되는 부시 감세조치 연장안, 11월30일로 끝나는 장기실업자 수당혜택 연장안, 그리고 12월2일로 임시 시행안이 만료되는 정부지출안 등으로 가능한 빨리 처리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이제 하원 다수당의 지위에서 내려와야 할 민주당이 꼭 성사시키고 싶어 하는 법안들이다. 특히 이민개혁의 축소안인 드림법안과 군동성애자 차별정책 폐지안은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앞으로 한동안 빛을 못 볼 진보적 어젠다여서 전략무기감축협정 상원비준과 함께 오바마도 통과를 위한 전폭지원을 다짐하고 있지만 결과는 글자그대로 ‘예측 불가능’이다.
레임덕 회기가 시작된 이번 주 의사당 주변은 부산하기 그지없다. 신참의원들을 위한 오리엔테이션, 양당과 각 분야별 코커스 등이 곳곳에서 열리면서 지난 선거에 대한 결산토의, 새 의회의 지도부 선출 등이 진행되고 있다. 본격적 법안토의는 추수감사절 휴가를 마치고 돌아올 11월29일에나 시작될 것이다. 이때부터 짧으면 2주, 길면 4주 만에 레임덕 회기는 마무리된다.
할 일은 태산인데 시간은 너무 짧다. 시간보다 더 큰 문제는 공화당의 협조의지다. 속 타는 민주당에 비해 공화당은 느긋하다. 어떤 안건도 아직 민주당이 다수당인 레임덕 회기보다는 공화당이 하원다수당으로 복귀하는 새해 112대 의회에서 다루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레임덕 회기의 성과는 결국 민주당의 의지에 달렸다. 상당수 역사가들이 현 111대 의회를 “가장 생산적 회기 중 하나”로 꼽는다. 헬스케어개혁과 금융규제 등 장기적 국익을 위한 역사적 과제를 실현했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이런 정책방향을 마지막까지 고수하며 이번 회기를 의미있게 매듭지을 것인지, 공화당 기세에 지레 겁먹으며 흐지부지 접어버릴 것인지…파워를 넘겨주기 전 한동안 오지 않을 이 마지막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민주당의 당면과제로 주어진 것이다.
선거패배로 사기가 저하된 민주당에겐 천하를 다 가진 듯 의기충천한 공화당에 맞서는 것부터가 당장은 쉬운 일이 아닌 듯하다. 어떤 안건에서도 양보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공화당에 비해 민주당에선 이런저런 타협안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레임덕 회기의 최대쟁점인 부시 감세조치 연장안부터 그렇다. 공화당은 납세자 2%에 불과한 부유층의 영구 감세를 포함하지 않으면 98%인 중산층 이하의 감세도 동의하지 않겠다며 완강하다. 적자해소를 선거공약으로 내세우며 승리를 거두었지만 부유층 감세로 인한 7천억달러 적자 증가에 대해선 언급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200만 장기실업자의 실업수당 연장엔 반대한다. 지출삭감을 위해서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어느 선에서 감세연장안의 타협을 이룰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부유층 감세연장은 통과시키고 가난한 실업자의 수당혜택 연장은 부결시킨 채 회기를 마감한다면 이를 주장한 공화당이든, 이에 타협한 민주당이든 ‘메리’ 크리스마스를 마음 편히 즐기기는 힘들 것이다.
금년 레임덕 회기에서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드림법안이다. 불법체류자녀들에게 대학입학과 군 입대를 통해 시민권 취득의 길을 열어주자는 드림법안은 ‘초당적 법안’이다. 찬성한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11명이나 되었지만 9명이 등을 돌려버렸고 민주당 내에도 반대표가 있었다. 당론을 따라야 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표밭의 반이민 정서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선거는 끝났다.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미국만이 내 나라’인 젊은이들을 위해 인도적인 한 표를 던져줄 것을 기대한다.
민주당이 막강 다수당의 마지막 결단력을 발휘한다면, 은퇴 혹은 낙선으로 물러나는 레임덕들이 보다나은 사회를 위한 ‘사명감’을 절감한다면 드림법안은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박 록 /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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