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한 달 전 은행에서 편지 한통이 날아왔다. 모기지 재조정이 최종 승인됐다는 내용이다. 월 페이먼트 경감액은 250달러 남짓, 기대에는 못 미쳤지만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감지덕지다.
지난 해 10월 비영리단체 NACA(naca.com)가 LA컨벤션센터에서 마련한 대규모 모기지 엑스포에 참석, 재조정을 신청한 지 1년 만에 얻은 결실이다. 모기지 재조정 신청 이후 4~5개월간은 감감무소식이었다. 포기할 것인가 말 것 인가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왠지 오기가 발동했다. 이때부터 NACA에 수시로 이메일을 띄우고 일주일을 기다려야 약속을 잡을 수 있는 전화상담도 마다하지 않았다. 은행에도 보름에 서너 차례 전화를 걸어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확인하고 채근했다.
녹록치 않았다. 은행에 통화라도 할라치면 40~50분 수화기를 들고 있기는 예사. 워낙 방대한 조직이다 보니 힘들게 통화에 성공해도 이부서 저부서로 돌려주기 일쑤다. 수입 명세서와 재정상황을 설명하는 ‘하드십 레터’(hardship letter)등을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하는 것도 만만한 일은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4개월간의 시험기간(trial period)을 승인받았다. 시험기간은 향후 모기지 재조정을 해 줄 경우 페이먼트를 잘 할 수 있는 건실한 홈오너인지 여부를 테스트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도 약간의 혼란이 있었다. 시험기간 중 페이먼트 액수는 줄었지만 영구 재조정이 되지 않을 가능성에 대비해 원래의 페이먼트 액수를 내야한다는 게 은행측 설명.
적잖은 한인들이 시험기간을 받으면 모기지 재조정이 이뤄진 줄 생각하지만 이는 오산이다. 이 기간을 성공적으로 마쳐야 60~90일 후에 이자율을 조정해 월 페이먼트 액수를 결정하고 융자 재조정의 프로세스가 종료되는 것이다.
2004년 다우니에 62만달러짜리 단독주택을 구입했던 김모씨도 각고의 노력으로 결실을 얻어 낸 케이스다. 그는 집값이 40만달러대로 곤두박질치고 사업마저 부진하자 지난해 변호사를 통해 재조정에 나섰다. 하지만 반년을 지나 돌아온 은행의 답변은 ‘재조정 불가’였다. 최악의 경우 숏세일까지 각오했던 김씨였기에 아예 혼자서 은행측을 상대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전략적으로 두 달 치 페이먼트를 내지 않았다. 고의로 페이먼트를 밀리면 크레딧만 망가지고 융자 재조정은 더 힘들 것이라는 전문가의 조언도 있었지만 집을 잃는 편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고육책을 선택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은행측에서 연락이 왔다. “왜 페이먼트가 밀렸냐”는 물음에 김씨는 재정상황을 완곡히 설명하고 융자 재조정만 된다면 페이먼트를 계속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득했다. 융자 재조정이 되지 않을 경우 숏세일이나 포클로저로 갈 수밖에 없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은행측은 ‘하드십 레터’ 등 관련서류 제출 요구했고 김씨는 철저하게 준비했던 서류들을 발송했다.
이후에도 변동사항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명을 곁들인 편지를 보내는 등 은행측과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유지했다. 그리고 3개월의 시험기간을 거쳐 영구 재조정을 받았다. 김씨는 “험난한 과정의 마침표를 찍게 되니 경제적 부분을 떠나 스스로 뭔가를 해냈다는 자신감이 충만해졌다”고 만족해했다.
어렵게 페이먼트를 낮춘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철저한 서류준비와 함께 확실한 수입 증명이 핵심이다. 또 복잡한 재조정 절차를 이해하지 못해 중도 포기하거나 심사과정에서 은행과의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에 실패하는 것도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특히 경험에 비춰보니 은행측에 자주 연락해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는 지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내심이다. 재조정에 소요되는 기간은 빨라야 5~6개월, 해를 넘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심사기간 중 페이먼트를 꼬박꼬박 내고 잘 버티는 게 성공의 열쇠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야심차게 선보인 모기지 재조정 프로그램은 당초 기대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절차는 복잡하고 조건은 까다롭고 신청자는 몰리지만 은행들의 업무처리는 느려터지니 홈오너들의 가슴은 새까맣게 타들어간다. 그렇다고 쉽게 포기하거나 아예 처음부터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는 생각이다. 가능성을 타진해보고 두드려 보는 편이 낫다. 문은 두드리는 자에게만 열린다.
이해광 경제부 부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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