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주지사와 민주당 상하원, 거기에 공화당 협조없이 통과시킬 수 있는 예산안 가결권까지, 지난주 선거후 캘리포니아는 외견상 더 바랄게 없는 ‘민주당 천하’로 접어들었다. 그렇다면 정치 베테랑 새 주지사의 노련한 리더십 아래 이제 민주당 예산안은 일정대로 순항하고 새크라멘토는 양극적 교착상태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안을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명쾌한 대답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브라운의 최우선 과제는 재정난 타개를 위한 균형예산 실현이다. 시행 가능한 예산안을 법정기한 내에 서명하는 것, 너무나 당연한 이 업무를 엄청난 도전으로 만들고 있는 어려운 정치 환경은 이번 선거로도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상하원 다수당과 주지사, 부지사, 총무처장관, 재무관, 감사관, 보험커미셔너까지 고위공직 거의 전부를 민주당에 맡기면서도 캘리포니아 유권자들은 발의안 투표를 통해 재정에 대해선 보수주의를 선언하며 양면적 의중을 드러냈다.
유권자의 메시지는 두 마디로 정리될 수 있다 :
“예산은 제때 통과시켜라. 그러나 납세자의 지갑엔 손대지 말라”
주민발의안 25 통과로 예산안 처리는 확실히 빨라질 것이다. 가결에 필요한 주의회 찬성표를 정족수 3분의 2에서 과반수로 낮추었으니 다수당인 민주당만의 찬성으로 통과시킬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유권자들은 주예산 부족을 메우기 위해 지방정부 기금을 전용해오던 것을 금지시키는 발의안 22와 기업의 각종요금 인상안 가결에 주의회 3분의2 찬성을 요구하는 발의안 26을 통과시키고 주립공원 관리위해 자동차등록세를 18달러 인상하자는 발의안 21과 대기업의 감세혜택을 폐지하자는 발의안 24를 부결시켰다. 지방정부 기금도 돌려쓰지 말고, 개인이건 기업이건 세금인상은 꿈도 꾸지 말라는 경고다.
예산은 복잡하고 골치 아픈 이슈이지만 기본은 단순하다. “수입한도 내에서만 지출”하면 요원한 꿈같은 균형예산도 실현될 수 있다. 적자? 지출을 줄이고 수입을 늘리면 해소된다. 민주당이 하든, 공화당이 하든 요술방망이 같은 다른 묘안은 없다. 어떤 프로그램을 얼마나 축소하고, 누구를 대상으로 언제 얼마나 세금을 올릴 것인가, 그 세부내용이 다를 뿐이다.
세금인상은 무조건 안된다는 유권자의 경고로 당분간 수입원은 차단된 셈이다. 남은 건 지출삭감이다. 발의안 25 통과를 환호하는 민주당 지도부와는 달리 브라운의 반응은 신중했다. “보다 큰 문제는 삭감을 단행해야 할 고통스런 절차다…” 지난 수년 공화당 주지사 시절, 대폭 삭감을 감수해야 했던 민주당은 이제 기대에 찬 시선으로 민주당 주지사를 바라본다.
지난주 당선 이틀 뒤, 브라운은 주의사당을 방문했다. 의회지도부와의 예산문제 미팅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가 자신이 직면한 도전의 무게를 실감한 것은 의사당 복도에서 일단의 사회운동가들과 마주쳤을 때였다. 새 주지사를 환호하며 그들은 5,000명의 서명이 담긴 탄원서를 내밀었다. 서명자들은 슈워제네거 현 주지사가 거부한 ‘웰페어 수혜자 취업시 차일드케어 보조금’을 되살려달라는 가난한 부모들이었다. 탄원서를 받아든 브라운이 슈워제네거에게 전해달라는 거냐고 묻자 그들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이걸 들어줄 수 있는 분은 당신이니까요”
저소득층에 대한 희생요구도 고통스럽겠지만 삭감 때마다 아우성 칠 이해그룹 달래기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특히 6,800만 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쏟아 부은 지지캠페인으로 당선의 일등공신인 노조의 지나친 요구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는 브라운이 안고 가야할 가장 큰 숙제로 남아있다.
난제를 풀어갈 첫 걸음은 주 의회와의 협력적 관계 정립이다. 브라운은 인간적 관계, 경험의 노하우, 모든 것을 동원해 초당적 합의를 이끌어내겠다고 강조해왔지만 ‘이단자’ 브라운에겐 민주당 지도부와의 원만한 관계부터 쉬운 일이 아니다.
30년전 브라운 주지사와 민주당 의회의 불화는 유명했다. 당시 브라운의 거부권행사가 무려 12번이나 번복당하면서 민주·공화 양당이 합의한 주요사항은 “브라운이 싫다”는 것이라는 조크가 정설로 통할 정도였다. 36세 야심차고 오만한 젊은 주지사와 72세 성숙하고 욕심 비운 주지사는 물론 다르겠지만 주의회 역시 달라졌다. 이념적으로 훨씬 더 양극화되고 주지사에 대한 비협조적 자세가 당연한 것으로 정착했다.
민주당 의회가 원하는 것은 세금인상이다. 내년에 증세위한 특별선거를 하자고 주지사를 압박할 지도 모른다. 브라운으로선 쉽게 수용할 수 있는 요구가 아니다. 그의 구체적 공약 중 하나가 “유권자의 승인 없는 증세는 없다”였으니까. 브라운에게도 세금인상이 절대불가는 아니겠지만 첫 과제로 택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번 주 브라운은 휴가를 떠났다. 다음 주초 돌아오면 “밤낮없이 풀타임”으로 예산에 매달리겠다고 다짐했지만 시간이 급하다. 새 주지사의 예산안은 내년 1월10일까지 제출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12월15일까진 초안이 완성되어야 한다.
세금인상 없는 대폭삭감의 긴축재정만으로, 120억달러나 될 적자는 얼마나 해소할 수 있을까 - 새 주지사에 대한 주의회와 유권자의 첫 시험대다. 험난한 여정의 첫발을 딛는 주지사의 행운을 빈다.
박 록 /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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