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대법원의 9명 판사들 가운데 유일한 흑인이 클라렌스 토마스 판사이다. 그는 또한 흑인 법조인들 가운데는 드물게 보수 성향의 의견 개진과 판결문 작성으로 유명하다. 대법원 앞에 나타나는 변호사들과의 법적 견해 교환에 거의 한 번도 참여하지 않는 묵언 거사로도 이름이 나있다.
그의 전임자였던 서굳 마샬은 흑백 통합의 효시라고 불리우는 1954년 브라운 대 캔사스 토피카 시교육위원회 사건에서 유색인종 지휘향상위원회(NAACP)를 대표해 만장일치의 판결을 도출해 냈고 존슨 대통령에 의해 최초의 흑인 대법원 판사로 임명된 사람이었다. 물론 진보적인 사람이었는데 그가 자진 은퇴하자 그 후임으로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1991년에 토마스를 임명했다. 토마스는 가톨릭계 고등학교와 대학을 나와 예일 법대를 다녔고 미주리주의 검찰 차장을 거친 후 존 댄호스(공화) 당시 미주리 상원의원의 입법 보좌관을 지냈다. 그리고 연방평등고용위원회(EEOC) 위원장으로 있다가 미 연방 DC 항소법원 판사로 임명된 지 얼마 안 되어 대법원 판사로 지명되었는데 그의 임명 청문회 때 민주당의 리버럴들이 많은 반대를 하고 나섰다. 흑인들이나 기타 유색인종들이 과거에 차별을 받았기에 그들을 우대해야 된다는 긍정적 (인사) 정책을 종국에는 그런 정책의 수혜자들에게 오히려 해가 된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토마스를 흑인이나 백인들의 리버럴들이 혐오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1991년의 상원 법사위의 청문회에는 아니타 힐이라는 법대 교수가 그의 인준을 반대하는 증인으로 나타났다. 힐 교수는 EEOC에서 위원장이었던 토마스 판사의 보좌관을 했었던 바 토마스가 외설 영화를 즐겨 본 내용을 그에게 옮기면서 성적 희롱을 자주 했었다고 주장했다. 토마스 판사는 절대 그런 일 없었다고 딱 잡아떼었다. 둘 다 진실을 말하겠다고 선서를 했기 때문에 둘 중이 하나는 거짓말쟁이임이 분명하다. 힐 교수의 문제점은 성적 희롱을 당했을 당시에는 아무런 불평도 안했다가 몇 년 뒤의 청문회에서 그런 주장을 했으니까 결국은 토마스가 인준을 못 받게끔 하자는 리버럴들의 계책이라는 게 보수 진영의 해석이었다. 리버럴들은 성희롱을 한 사람은 대법원 판사 자격이 없다는 주장이었다.
좌우지간 토마스가 청문회에서 공개적인 수모를 당한 끝에 대법원 판사가 된 것은 상기한 바와 같다. 당시 청문회 회의장에는 토마스의 둘째 부인 지니 토마스가 남편이 사용했다는 갖가지 외설 대화의 내용이 언급될 때마다 얼굴이 일그러지는 표정을 짓곤 했던 것이 기억된다.
그런데 최근에 지니 토마스가 뉴스거리가 되었다. 얼마 전 힐 교수의 전화 녹음기에 “19년 전에 당신이 한 일에 대해 사과를 해야 될 것이 아니냐. 연락을 기다리겠다”는 메시지를 남겨 놓았기 때문이다. 힐 교수는 대학 경찰에 그 녹음 내용을 알려 주었고 미디어에 보도되면서 19년 된 논쟁의 불씨가 다시 당겨진 것 같다. 그런데 토마스 판사의 부인은 ‘리버티 센트럴’이라는 보수 성향의 단체를 이끌면서 티파티를 조직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때문에 이미 뉴욕 타임스 등의 주목을 받고 있던 바 힐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던 일화와 겹쳐져 래리 킹 CNN 쇼에 의해 크게 다루어지는 등 토마스의 입장을 더욱 곤란하게 만들고 있을 것이다.
래리 킹 쇼에는 토마스의 예전 애인이 등장하여 자기 경험으로도 토마스가 음란 영화를 즐겨보며 음담패설을 일삼는 사람이었다고 주장했다. 역시 법대 출신으로 연방 검사와 연방의회 보좌관직을 거쳤다가 은퇴했다는 그 여인은 자신의 회고록을 출판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어 출판사 물색을 위해 꽤 오래된 이야기를 꺼낸다는 의심을 받기에 족하다. 내 소견을 말하자면 토마스가 외설적인 언사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선서를 하고도 힐의 증언을 정면 반박했기 때문에 거짓 진술을 했다면 대법원 판사 아니 평범한 법조인으로서의 자격에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차라리 힐의 주장을 수긍하면서도 변화를 보였기에 인준을 해달라고 읍소했다면 토마스가 불쾌한 과거에 시달리는 일이 덜 했을 성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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