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4일 밤에는 케네디센터에서 KBS 교향악단의 연주를 보게 되었다. 우리 부부가 한국을 떠난 1964년 당시의 KBS 교향악단과 비교해 보면 엄청난 국력의 신장과 비례해서 음악계도 장족의 발전을 했다는 결론이다. 모두가 가난하던 시절, 서울 시향과 KBS 교향악단의 단원들은 각각 김생려와 임원식의 지휘봉 아래서 연주 활동을 하면서도 월급으로는 생활이 안 되어 부유층의 음악 가정교사로서 부수입을 벌어야 했던 시절이었다. 현재는 자세한 급료는 몰라도 음악인들이 음악만 해서도 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라는 느낌은 이번 KBS의 미국 공연들이 모두 무료였다는 사실로서 입증되는 것 같다.
금년에 상임 지휘자가 되었다는 함신익은 한때 보스턴교향악단의 지휘자로 명성을 날리던 세지 오자와를 연상시키는 열정적 지휘를 했다. 예일대 음대의 교수라는 그의 직함에 어울리게 구미 언론들이 그의 왕성한 지휘활동을 “열정적이며 정교하고 섬세한 지휘”라고 표현한 것을 그대로 옮길만한 연주회였다. 또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프리마돈나 소프라노 홍혜경의 가고파와 동심초는 심금을 울렸다는 표현을 받기에 합당했다. 첫 연주곡인 김지명의 ‘영웅’은 이층 관객석에서의 다섯 명의 관악기 연주자들의 등장 등 색다른 데가 있었다.
KBS 교향악단의 국제적 감각은 미국 참전 60주년과 같은 행사에서 으레 볼 수 있는 양국 국가의 연주가 없이 곧바로 프로그램에 진입했다는 점에서 느낄 수 있었다. 로시니의 윌리엄 텔 서곡도 좋았지만 특히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은 예전에 음반으로만 들었고 실연은 본 적이 없던 것이라서 받은 느낌 때문일 수도 있지만 5악장이나 되는 대곡이며 난곡을 아주 성공적으로 전개했다는 결론이다. 콘트라베스만도 여덟 개라는 지적은 역시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한 아내의 입에서 나왔다.
앙코르를 환호하는 청중의 기립 박수에 응해 들려준 곡들 중에서 가장 좋았던 것이 도라지 타령, 아리랑 등의 민요 모음곡인 이유는 역시 고향 향수 때문이었을 것이다. 뉴욕 공연 때와는 달리 홍혜경의 앙코르가 없었던 것은 옥의 티였지만 앙코르를 세 차례 한 다음 아예 악장의 손을 끌고 나가버리는 애교도 있었다. 청중들도 질이 높았지만 환상 교향곡의 처음 세 악장 끝마다 일부 사람들이 박수를 친 것이 조금은 귀에 거슬렸다.
KBS 교향악단 이야기를 쓰다보니 아내의 KBS 인연이 생각난다. 6.25 사변 전에 아내는 KBS 아동 합창단원으로 자주 방송에 나갔었고 예를 들면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생일에는 ‘우리들의 이 대통령, 만수무강을 온 겨레가 다 같이 비옵나이다’라고 노래했었다고 회고를 하곤 한다. 1962년 KBS-TV가 막 시작되었을 때 당시 5급 공무원 시험을 보아 프로듀서 제 1기생이 되었지만 6개월도 못되어서 나와 결혼하는 바람에 그만둘 수밖에 없어 때로는 그냥 KBS에 남아있을 수 있었으면 어디까지 올라갔을까라는 ‘죽은 자식 나이 세기’ 따위의 헛 공상을 하기도 한다.
나도 KBS 직원이 될 뻔한 적도 있었다. 동아일보 견습기자 시절인 1959년 나는 사회부 기자들의 회식에서 만취되어 당시 사회부장 최호씨에게 건방지게도 몇 년 있으면 나도 부장이 될 수 있다는 식으로 대들었던 적이 있었다. 오죽 주정이 심했으면 6년 선배이던 사회부 경찰 출입 기자가 그 다음날 나를 숙직실로 불러내서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라고 욕하는 동시에 정강이를 발로 찼기까지 했을까. 좌우지간 창피가 막심해서 동아일보를 그만두고 KBS 제2 방송국 아나운서 모집에 응할 생각을 했었다.
필자가 2003년도 고려대학 언론 대학원의 초빙 교수로 한 학기 가르쳤을 때는 김인규 현 KBS 사장과 같은 교수실을 썼었다. 당시 KBS 이사이던 그가 다른 중견 언론인들과 더불어 당시 서울 시장이던 이명박의 관저에 초대되어 남북한 운하와 4대강에 대한 그의 지론을 듣고 와서 그의 경륜에 대해 감탄하는 듯한 이야기를 하기에 이명박씨가 집권하면 한자리 할 것이라고 생각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 내 짐작대로 이명박 대통력 선거에 언론 담당으로 큰 공을 세우더니 그의 첫 직장이던 KBS의 수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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