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민주당 바바라 박서의원의 선거전은 그동안 대진운이 좋은 편이었다. 3번이나 치른 캘리포니아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 강력한 라이벌도 없었고 매번 선거환경도 나쁘지 않았다. 그 때마다 공화당 후보를 가볍게 누르고 압승을 거두었던 그가 그러나, 이번엔 피 말리는 접전을 치르고 있다. 전국의 표밭을 흔들어대는 공화당 바람 속에서 강적을 만난 것이다.
대기업 휴렛패커드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한 칼리 피오리나는 터프하다. 실물경제에서 터득한 전문성을 앞세운 그는 정치초년생 답지 않게 침착하고 정연하다. 인터뷰 마이크가 꺼진 줄 알고 박서의 헤어스타일을 비웃는 경박함도 드러냈지만 3선의원과의 공개토론에서 밀리지 않는 당당함도 과시했다. 무엇보다 69세 현직에 비해 한결 신선한 아웃사이더, 56세 새얼굴이다.
게다가 반현직의 정서가 대세인 이번선거에서 연방하원 10년까지 포함한 ‘박서의 28년 의정생활’은 집중포화의 표적으론 안성맞춤이다. 불과 2년전 “마치 장례식장에 온 듯” 침울했던 캘리포니아 공화당의 분위기도 요즘 완전히 바뀌었다. 모두가 익사이팅, 기세가 충천이다.
이번 선거에 투표할 캘리포니아 주민은 약 1천만명으로 추산된다. 등록유권자는 민주당 45%, 공화당 31%, 무소속 25%로 나뉜다. 숫자로는 민주당이 단연 우세하지만 ‘참여 열기’라는 변수가 있다. 꼭 투표하겠다는 공화당 유권자는 83%로 열기가 뜨거운데 민주당은 상대적으로 시들하다. 6월 60%에서 (오바마의 참여 호소가 주효했는지) 9월엔 75%로 늘어났다. 심드렁한 민주당 유권자들을 흔들어 깨우지 않으면 박서의 승리는 물 건너 갈 것이다.
그런데도 판세는 공화당의 기대만큼 잘 풀리지는 않고 있다. 하긴 상대가 ‘역전의 투사’ 박서이고 전선은 민주당의 텃밭인 ‘딥 블루’ 캘리포니아다. 공화당으로선 전혀 만만한 싸움이 아니다.
“의회에서 도대체 무얼했는가, 18년간 제안한 법안이 고작 4개라니…”라는 피오리나의 공격보다 유권자에게 강하게 어필한 것은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공약으로 내세운 피오리나를 겨냥한 박서의 공격이었다 : “CEO 시절 피오리나는 일자리를 해외로 아웃소싱, 3만명을 감원시켰고 자신은 2천만달러의 퇴직금을 챙겼다. 보통 사람이 400년동안 풀타임으로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다. 아래선 고통당하고 위에선 흥청망청, 월스트릿을 연상케 하지 않는가…성공한 경영인이라고? 그는 해고당한 실패의 본보기다”
여전히 예측이 어려운 ‘접전 중’이지만 아직은 박서가 리드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6월 예선이후 실시된 28번의 각종 여론조사에서 피오리나가 앞선 것은 3번뿐이었다. 16일 폭스뉴스 조사에선 48% 대 44%로, 18일 서베이USA 조사에선 46% 대 44%로 박서가 앞서고 있지만 양쪽 다 안심하거나 포기하기엔 너무 근소한 차이다.
가차 없는 난타전을 펼치지 않을 수 없다. 한쪽은 “무능한 현직의원”에 “당파성 강한 극단적 리버럴”이고 다른 한쪽은 “부유층 대변 고위경영자”에 “캘리포니아 정서와는 엇나가는 극우 보수”다. 요란한 양쪽의 네거티브 선전에 시달리다 보면 기권하고 싶은 유권자가 한 두 명이겠는가.
그래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선거가 끝나면서 당선자의 투표가 중요해지는 연방상원 선거에선 특히 그렇다. 다른 어떤 선거에서 보다 각 이슈에 대한 후보들의 입장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금년 상원 후보 두명 모두 만족스럽지 않다면서 지지선언을 생략한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지의 이유가 흥미롭다 : “우리가 지지하는 사안의 비효율적 대변인”과 “우리가 반대하는 사안의 강력한 대변인” 중 어느 누구도 선택할 수 없다.
녹색산업으로 일자리 창출을 약속하는 박서는 지난해 경기부양책의 성공을 강조하는데 경기부양책을 실패로 단정짓는 피오리나는 감세와 정부규제만이 살길이라고 역설한다. 박서는 최고부유층 감세는 폐지되어야 한다고 믿지만 피오리나는 (10년간 7천억달러 세수손실을 감수하더라도) 부유층 감세도 연장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당의 경제대책이 지지부진한 것은 사실이지만 너도나도 감세와 규제완화, 지출억제만 선언할 뿐 구체적 대책은 내놓지 못한 공화당의 경제대책도 못미덥기는 솔직히 매한가지다.
경제만이 아니다. 다른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도 둘의 입장은 대조적이다.
포괄적 이민개혁, 헬스케어 개혁, 총기규제, 기후변화 대책, 여성의 낙태권 보장, 동성애자 동등권…박서가 추진해온, 진보적 캘리포니아 주민의 대다수가 지지하는 이 모든 이슈에 피오리나는 강경한 반대를 거침없이 표명한다.
강경보수를 자처하지 않으면 사실 공화당 예선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그러나 본선에 접어들면 다르다. 특히 진보적인 캘리포니아에선 공화후보도 본선에선 중도로 돌아서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피오리나는 여전히 강경 보수의 입장을 고수한다. 말 바꾸기가 성행하는 정치판에서 ‘신선한’ 느낌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에서 애리조나 이민법을 지지하고,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한 ‘로우 대 웨이드’ 판결을 번복시키겠다고 단언하는가하면, 헬스케어개혁 폐지를 공약하는 후보에게 자신을 대변하도록 한 표를 던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동양계 이민여성인 나의 입장은 그렇다.
박 록 /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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