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마운트 버논의 조지 워싱턴 저택에서 일했던 흑인노예들을 기념하는 행사가 있었다. 대통령도 과거에 흑인노예를 소유했던 역사의 한 면과 흑인들이 어떤 삶을 살았나 다시 한 번 기억하게 해주는 행사였다. 서너 시간이나 떨어진 곳에서 대학생 합창단이 와서 흑인 영가도 들려주었고, 이곳의 한 초등학교 학생들은 백인, 흑인에 상관없이 어우러져 노래를 하기도 했다.
문득 필자가 처음 교육위원에 당선되었을 때 있었던 에피소드가 하나 생각났다. 버지니아 훼어팩스 카운티에서 최초로 선거를 통해 교육위원을 선출한 것은 1995년 11월이다. 이 선거에서 필자는 브래덕 지구에서 당선되었고 3명의 광역 위원중의 하나로 흑인 한 분이 당선되었다. 이 분은 그 전에도 다년간 임명직 교육위원으로 봉사를 하신 적이 있는 분이었다.
당시 임기를 마치는 12명의 임명직 교육위원들의 분포를 보면 공화당 수퍼바이저가 임명한 위원이 8명이었고 민주당 수퍼바이저가 임명했던 교육위원은 4명에 불과했다. 당연히 교육위원회 의장은 공화당 측에서 맡고 있었다. 그런데 선거 결과로 이 분포가 정반대로 뒤집어졌다. 민주당의 후원을 받은 후보가 8명이 당선되었고 공화당에서는 4명의 당선자 밖에 배출하질 못했다.
선출된 교육위원들이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하는 안건은 의장 선출이었다. 8명의 민주당계 당선자들이 그들 중에서 누구를 의장으로 밀 것인가에 대해 임기 시작 전에 논의를 갖기로 했다. 당시 의장직에 출마하고자 하는 후보는 두 명이었다. 한 명은 그 흑인 당선자였고 다른 하나는 현직에 있었던 백인 여성위원이었다. 두 후보는 의장 출마에 대한 소감을 피력한 후 자리를 피해 주었고 나머지 여섯이 논의에 들어갔다. 필자를 포함한 6명의 당선자들은 논의 결과 백인 여성위원을 의장으로 선출하기로 했다.
나중에 논의의 결과를 접해들은 흑인위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자신은 나머지 여섯 명이 그날 그 자리에서 그렇게 빨리 결정을 할 줄 몰랐다며 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필자에게 왜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사실 그 흑인위원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것 보다는 다른 후보를 의장으로 지지하였다는 것이 좀 더 정확한 표현이 될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굳이 이유를 묻는다면 당시 필자는 이미 그 백인 여성위원과는 6개월 정도 같이 일해 본 경험이 있었고, 그 6개월 동안 의장으로 봉사하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음을 배울 수 있었다고 대답해 주었다. 이에 그 흑인위원은, 자신이 그 백인 여성위원보다 훨씬 여러면에서 경력이 우수하다고 설명하였다.
그 때 필자가 보였던 반응이 이 분에게 조금은 인종적으로 민감하게 받아들여진 것이 있었다. 필자는 이분에게 나로부터 지지를 받으려면 의장이 될 만한 자격이 있음이 ‘증명’ 되어야 할 것이라고 했었다. 사실 이 분과는 같이 일해 본 경험이 없기에 성격이나 지도력 등이 어떤지 알 기회가 없었다는 의미로 한 얘기였다. 그런데 이 말에 대한 이 분의 반응이 놀라왔다.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흑인 지도자들은 객관적으로 훌륭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해도 늘 자격이 있음을 다시 한 번 ‘증명’해 보여야 했다는 것이었다. 뜻밖이었다.
물론 필자는 전혀 어떤 인종적인 편견을 갖고 한 얘기가 아니었다. 이 땅에서 겪은 흑인들의 아픈 역사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못하고 무심결에 내뱉은 단어 한마디가 이 분에게 이렇게 상처가 되리라곤 생각하질 못했다. 그 때의 그 사건은 필자에게는 오랫동안 생각을 하게끔 하는 교훈이 되었다.
그 후 백인 여성 의장이 1년의 임기를 두 번 거친 후 또 다시 그 흑인위원과 다른 백인위원 사이에 의장직을 놓고 경합이 있었다. 백인 후보가 경합에 유리한 상황이었다. 그 때 필자가 중간에서 중재해 백인위원이 딱 1년만 의장을 한 후 그 다음 해에 꼭 그 흑인위원을 의장으로 선출하기로 약속을 받아내었다. 그 결과 훼어팩스 역사상 최초로 흑인을 교육위원회 의장으로 선출하는 역사적인 일이 1999년에 있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던 이 흑인 의장은 거의 20년간 교육위원으로 봉사한 후 2003년에 은퇴했다.
요즈음도 필자는 누가 자격이 있는지를 ‘증명’해 보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괜히 잘못 받아들여질까 보아서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렇게 물어보는 내 자신이 물어볼 자격이 되는지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기 때문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