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오바마가 LA에 온 적이 있었다. 저녁 때 한 개인 집에서 열린 기금모금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무슨 목적의 돈이며 얼마를 모았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갑작스런 오바마 방문으로 그 일대에 사는 주민들은 큰 불편을 겪었다.
대통령 경호를 이유로 LA 공항에서 웨스트 LA 일대를 거쳐 행콕 팍 인근까지 길이란 길은 다 막는 바람에 퇴근하려던 시민들은 몇 시간씩 차 안에 발만 동동 구르며 꼼짝하지 못했다. 그 중에는 아이를 픽업해야 하는 주부부터 격무에 시달린 후 집에 가 쉬려는 직장인, 몸이 아파 치료를 받으러 가던 환자나 중요한 약속이 있는 비즈니스맨 등 별별 사람이 다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경호실은 대통령 안전을 내세우며 정확한 이동 경로나 시간도 알려주지 않았다. 사람들은 가뭄을 원망하던 옛 농부들처럼 한숨만 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개인적인 방문 때문에 경찰차 수십 대가 동원되고 수백 명의 경찰이 오버타임 근무를 해야 했다. 이에 들어간 돈은 국민의 피땀 어린 세금으로 지불했을 것이다.
오바마가 시카고에서 빈민들의 권익 옹호를 위해 싸우는 사회 운동가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동네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그는 아마 앞장서서 권력의 횡포를 규탄했을 것이다. 그러던 그가 백악관에 앉은 지 불과 1년 반 만에 시민들이 겪을 불편에 둔감해진 채 이런 일을 벌이고도 아무런 미안함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로 인한 교통 대란 이후 LA 타임스를 비롯한 주요 언론과 백악관에 항의 전화와 편지가 빗발쳤지만 오바마가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시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인간이 권력을 잡으면 어떻게 변하는가를 가장 뼈저리게 느낀 사람들 중 하나가 미 건국의 아버지들이었다. 미 독립 전쟁이 벌어졌을 당시 영국은 야만국이 아니었다. 근대 유럽 국가 중 가장 먼저 민주주의를 시작하고 산업혁명을 일으킨 선진국이었다. 그럼에도 투표권이 없는 식민지 주민들에 대해서는 주인으로 군림하려 했다.
스탬프나 차에 부과되는 세금은 액수로는 미미했지만 식민지 주민들이 이를 허용할 경우 영국이 식민지에 대해 무제한 과세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었고 그렇게 되면 대표권 없는 식민지 주민들은 영국인의 사실상 노예로 전락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식민지 주민 대표들이 “대표권 없는 과세 없다”를 들고 일어난 것은 조금도 놀랄 일이 아니다.
권력의 횡포에 맞서 일어선 미국의 창업자들은 자신의 후손들이 다시는 자신들과 같은 대접을 받지 않을 나라를 만드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였고 그 결과 나온 것이 연방 헌법이다. 헌법은 엄격한 3권 분립을 규정하고 무제한적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 권력을 감시하게 했으며 국방과 외교를 제외한 내치의 상당 부분을 주 등 지방 정부에 맡겨 중앙 정부의 권한을 분산시켰다.
귀족이나 부호의 후예라고 권력과 특혜를 두고두고 누리는 일을 막았으며 이름 없는 극빈 가정에서 태어났어도 사회 꼭대기에 오를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그 산 사례가 에이브러험 링컨이다. 1776년의 독립선언서나 1787년 제정된 연방 헌법은 당시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 기준으로 봐도 권력의 횡포에 시달리지 않고 인간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는데 토를 달기 어렵다.
그런 미국에서도 권좌에 오래 앉아 있으면 인간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레이건의 이란-콘트라 스캔들이나 클린턴의 르윈스키 스캔들 모두 집권 후반기에 터졌다. 수십년에 걸친 민주당 의회의 장기 집권에 따른 실정을 바로 잡겠다고 1994년 ‘공화당 혁명’을 일으킨 공화당원들은 민주당과 다름없는 추태와 스캔들 속에 2006년 의회 다수당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유권자가 집권자들을 심판하는 중간 선거일이 불과 2주 앞으로 다가왔다. 민주주의가 다른 어떤 정치 제도보다 우월한 것은 평화적이고 주기적으로 집권자를 갈아 치울 수 있다는 점에 있다. 피 흘리지 않고 썩은 물을 새 물로 가는 것, 그것이 건강한 사회를 가능케 하는 필수적 과정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이왕이면 많이 갈자.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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