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또 다른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출발이자 일상의 틀을 벗어나 다른 곳에 있는 또 다른 진지한 생을 경험하는 현장이다.” 16세기 말 중국의 문사 도용은 자신의 여행기 “명료자유”에서 “여행의 본질은 그 어떤 의무에서도 해방된 자유로운 나그네 길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중국의 한가로운 문사처럼 그렇게 너그러운 일탈의 자유, 관조의 여유를 지닌 채 여행을 할 수는 없었다.
나의 유럽으로 향한 길은 한국인의 위상을 드높이며 열심히 각자의 자리에서 일을 하고 있는 재 유럽 동포들과 그들의 지도자 한인회장들은 만나기 위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빡빡한 일정에 쫓겨, 한나라에 하루 이상을 머물 수도 없고 이름난 유적과 문화유산들을 휘둘러보거나 쉴 여유조차 없이 회의에 참여하고 동포들을 만나고 행사에 참여하고 그리고 또 비행기를 타고 또 타고 한 번 정도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행복한 보헤미안처럼 일에서 떠나, 돌 하나 벽돌하나에도 역사가 숨 쉰다는 유럽의 관광지를 둘러보고도 싶은 생각이 안 드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나에게 주어진 해외 한민족 협의회 의장이라는 무거운 자리가 그저 그 권위를 즐기라고 주어진 것이 아님을 알기에, 그리고 누군가는 전 세계에 퍼져있는 재외동포들을 끌어안아 한 민족 한 겨레로 화합을 하고, 그들의 수고와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어야만 하기에 여행의 감미로운 감상과 낭만은 잠시 뒤로 접어두기로 하였다. 피곤하고 힘들지만 단 하루의 시간도 허무하게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맡은 일에서 잠시라도 멀어지고 싶은 마음 또한 추호도 없다. 독일 베를린 한인회장의 초청으로 베를린에서 개최되는 손기정 마라톤 대회에 해외 한민족 대표자 협의회 의장의 자격으로 참석하기 위해 미국을 떠났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일정이 허락 되는대로 유럽의 나라들을 순방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들의 한인회장들을 만나고 동포들을 만나 진솔한 이야기들도 나누고 싶었다. 동포들을 만나 할 수만 있다면 그들에게 새로운 힘과 희망과 도전과 꿈을 심어 주고도 싶었다. LA에서 출발하여 시카고경유 두 시간까지 포함하여 도합 13시간이 걸리는 긴 항로… 힘들고 피곤했지만 이 여행 또한 나에게 주어진 일의 일부라 자위하며 그 피로마저도 즐기기로 하였다.
LA시간으로 밤 1시30분 런던 도착, LA라면 잠자리에 들었을 시간이다. 그러나 도착한 런던은 그곳 시간으로 아침 10시가 되어 있었다. 2,400여년 전 켈트족 이후 정치와 종교와 전쟁의 역사가 휘돌아 흐르던 나라, 의회의 역사가 처음으로 시작된 역사의 도시답게 런던은 중후하고 근엄한 모습으로 나를 반겼다.
도착하자마자 한인회를 방문하여 관계자들을 만나 간담회를 갖고 그리고 그날 밤에는 ‘남문기 성공학’강의를 했다. 참석하신 동포들 중에는 젊은이들이 많았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 많은 젊은이들이 열정과 도전정신을 가지고 성공학 강의에 큰 관심을 갖고 참여한다는 것은 분명 그들에게 뿐 아니라 런던의 한인들의 미래에 좋은일 일 것이다.
다음날 이른 새벽 KBS 라디오와 특집방송을 하고 서둘러 고속전철을 타고 해저 터널을 통해 정오가 다 되어 파리에 도착, 91년도에 왔던 파리의 모습과 별반 달라진 것은 없었다. 여전히 복잡하고 분주해 보이는 파리, 사실상 낭만과 예술의 도시라지만 외부에서 보이는 파리의 풍경은 그 반대로 보이기조차 했다. 파리에서 임남희 재불 한인회장을 만나 그와 현안문제를 나누고는 서둘러 공항으로 가서 독일로 출발, 비행기가 하늘로 오르는 순간 에펠탑이 눈에 확 들어왔다.
역시 역사적인 도시답게 전체적인 도시모습이 웅장했다. 파리 중심을 흐르는 아름다운 세느강, 런던에는 템즈강이 있다. 강은 바로 도시의 젖줄이다. 워싱턴 DC에 포토맥 강이 흐르듯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도 한강이 어머니의 젖줄처럼 흐르고 있다. 그 강을 통해 역사가 흐르고 문화가 꽃피고 민족의 애환이 살아 숨 쉬는 것이다.
미국의 동포들과 유럽의 동포들에게도 같은 강물이 흐르고 있다. 서로가 살고 있는 지역은 다르지만 세계각지에서 살고 있는 동포들의 가슴에는 분명히 하나의 강물이 흐르고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혈관 속에 뜨겁게 흐르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한민족의 피인 것이다.
오후 5시가 넘어 독일 베를린 도착, 마중 나온 김진복 베를린 한인회장과 함께 대사관으로 가서 바로 이어진 문태영 주독대사 초청만찬, 그곳에서 유럽 한인회장들과 함께 하며 재외 동포들의 현안을 의논하고 미주의 자랑스러운 한인들의 소식을 전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렇게 유럽의 둘째 날은 저물고 있었다.
독일과 영국의 우리 동포들, 그들과 사는 곳은 다르지만 우리에게는 분명한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그들과 우리 안에 흐르고 있는 한민족 한겨레의 뜨거운 피인 것이다. 독일의 광산 근로자와 간호사들과 하와이 사탕수수 밭의 초기 미주 이민자들, 그 이후로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우리의 750만 재외동포들은 오늘도 조국을 심장으로 삼고 전 세계에 고국의 혈관이 되어 맥맥이 힘차게 흐르고 있다. 조국의 문화를 나르고 조국에 영양분을 전하며 세계 속에 거대한 대한민국으로 지금도 그들과 우리들은 힘차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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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문기
<뉴스타 부동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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