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Gypsy’란 말은 이집트에서 온 사람(Egyptian)을 의미한다. 이는 영국인들이 처음에 집시의 근원을 이집트로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학자들은 집시라는 말이 현재 인도에 존재하고 있는 종족인 Cingar 혹은 Cengar에서 유래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집시는 독일어로 찌고이너(Zigeuner) 프랑스 치간느(Tsiganes) 이탈리아 징가로(Zingaro) 헝가리 치가니(Cigány) 그리고 루마니아어로 찌가니(Ţigani)이다. 이들 용어는 ‘손대지 않은, 원래 그대로의’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아칭가노이(Atsínganoi)에서 유래한다. Cingar에서 파생된 용어는 특히 동유럽에서 많이 통용되었고 또 집시들 자체 내에서가 아닌 외부 사람들이 집시를 부를 때 사용되었기 때문에 종종 경멸적인 의미를 내포하였다. 따라서 집시들은, 이보다 산스크리트어 기원의 집시 언어인 롬(rom) 혹은 로마(roma)라는 용어를 더 선호하고 있다. 롬이나 로마는 ‘남자’ 혹은 결혼한 남자를 의미하지만 광범위한 의미에서 우리 그룹에 속한 사람 즉 ‘우리(we)’를 의미한다. 국제집시연맹은 집시라는 명칭이 이탈리아 수도 로마나 루마니아 국호와 혼동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r’을 하나 더 붙여 ‘rrom, rroma’로 통일시켰고, 이에 1995년 유럽의회도 공식 서류상에 <로마(rroma)>의 사용을 승인했다.
유럽에서 집시가 가장 많은 나라는 루마니아이다. 1940년대 나치 대학살을 피해 집시가 루마니아로 대거 이동한 사실 외에도 중세 때 많은 유럽 국가들이 집시를 추방한데 반해 루마니아는 노예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중세 루마니아 영주들은 집시를 온갖 궂은일을 시킬 수 있는 노동력으로 간주했다. 사실상 중세 서유럽에서 집시추방, 집시 사냥과 같은 사건들이 자행된 것을 고려해보면, 당시 서유럽 집시들에게 루마니아는 역설적으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였을 것이다.
그동안 집시는 여러 국가에 흩어져 생활하면서 그들만의 고유한 문화를 유지하는 동시에 그곳의 문화를 받아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랜 기간 동안 역사적 과정 속에 나타난 집시민족의 정체성은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면이 더 많이 부각되었다.
루마니아의 집시가 노예 신분에서 해방된 해는 1864년이다. 하지만 집시의 노예제도와 관련된 여러 흔적들과 그에 따른 후유증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집시의 사회구조 속에 남아있으며 루마니아인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수세기 동안 지속된 노예 신분으로 인해 집시는 미래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없게 되었으며, 스스로의 책임하에 행동하는 진취적인 정신 또한 약화되었고, 또 어떤 사건에 대해 체념하는 운명론적 삶의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집시는 과거 그들이 속했던 계급이나 직업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고 또 지주, 수도원 그리고 영주 등 그들이 어디에 귀속되어 있었느냐에 따라서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노예제도는 아직도 집시의 정신세계에서 상당부분 차지하고 있으며 일상생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늘날 루마니아인들은 집시민족에 대해 약간의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집시의 정체성 역시 종종 열등 혹은 하위의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집시와 관련된 표현들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예를 들어 ‘강둑에 도달하여 집시처럼 빠져 죽다’, ‘집시는 결국 집시로 남는다’ 등이 있다. 첫 번째 표현은 강 중앙부터 헤엄쳐서 강둑까지는 잘 도착했지만, 정작 강둑에 다 와서 바보처럼 빠져죽는다는 의미이다.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한 경우를 비유해서 사용하는 표현인데, 예를 들어 축구경기에서 잘하다가 경기종료를 얼마 안남기고 골을 내주어 역전패를 당할 때 사용되는 표현이다. 또 마지막 비유는 다소 거친 예지만 ‘걸레는 아무리 빨아도 걸레다’라는 의미이다. 이처럼 집시관련 표현들이 다소 부정적이지만 그렇다고 루마니아인들이 집시민족 자체를 혐오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루마니아인들은 집시의 상스러운 말투나 행동, 속임수 등과 같은 몇몇 부정적인 측면을 비판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루마니아인들은 일상생활에서 집시음악을 즐겨 듣고 있으며 또 집시에 대해 루마니아인들이 말하는 것을 잘 들어보면 집시와 더불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이것은 지상의 모든 만물과 공생하려는 루마니아 민족성과도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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