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 휘트먼이 자신이 해고했던 가정부에게 발목을 잡혔다.
캘리포니아의 새 주지사를 뽑는 우편투표는 이미 시작되고 있는데 불법이민 고용에 대한 강력단속을 역설해온 공화당 후보 휘트먼이 불법체류 가정부 고용 논란에 휘말려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갈 길이 바쁜데 벌써 2주째다.
확인된 사실은 한가지다 : 불법체류 멕시컨 여성 닉키 디아즈 샌틸란이 9년간 휘트먼 가족의 가정부로 일하다 지난해 해고당했다.
나머지 정황에 대해선 양쪽의 주장이 다르다.
휘트먼의 주장 : 직업소개소에 허위 신분서류를 제출하고 취업한 닉키가 지난해 6월에야 불법체류 사실을 털어놓았다, (불법은 불법이므로) 해고했다, 그러나 그의 사정이 딱해 이민당국에 고발은 안했다, 닉키는 내 가족과 같았다, 이번 소동은 브라운 측의 음모다…
닉키의 주장 : (휘트먼의 주지사 출마가 가시화될 무렵인 지난해) 불체 사실을 고백하고 도움을 호소했다, 그러나 그는 마치 ‘쓰레기 던져버리듯’ 나를 해고했다. “앞으로 당신은 날 모르고, 난 당신을 모르는 거야, 날 본 적도 없고, 나도 당신 본 적 없는 거야, 알아들어?”라고 말한 후 전화를 끊었다, 가족의 일원이었다고? 휘트먼은 날 그렇게 대한 적이 없었다, 난 아무의 사주도 받지 않았다, 누구의 꼭두각시도 아니다…
휘트먼은 닉키의 불체 사실을 전혀 몰랐을까? 6년전 부부 앞으로 닉키의 소셜번호가 의심스럽다는 내용의 사회보장국 서한이 발송되었다. 휘트먼은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닉키의 변호사는 휘트먼의 남편이 ‘해결하라’는 자필 메모를 써서 닉키에게 준 그 서한을 공개했다. 휘트먼은 기억이 안 난다고 말했다.
어느 쪽이 거짓말인가는 현재까지 밝혀지지 않았고, 어느 누구도 굳이 밝히려고 하지 않지만 가정부 논란은 접전이면서도 밋밋했던 이번 선거전에 흥미진진한 핫 토픽으로 떠올랐다.
닉키의 폭로 이틀 후인 지난 2일에 열린 주지사 후보 2차 토론의 하이라이트도 ‘가정부’였다. 라티노 밀집지역인 프레스노에서 개최된 이날 토론은 지난 몇 달 라티노 표밭에 공들여온 휘트먼이 벼르던 기회였다. 주관처인 유니비전 TV가 스패니시 동시통역으로 중계까지 했다.
“라티노 지지 없이는 이번 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천명하며 토론을 시작한 휘트먼에게 사회자가 물었다. “그처럼 오래 일한 가정부에게 왜 좀 배려해주지 않았습니까?” 앞으로의 닉키 입장이 걱정된다고 말한 휘트먼은 다음 순간, 놀랍게도 민주당 후보 제리 브라운을 향해 공격의 칼날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제리, 부끄러운 줄 아시오. 당신들이 닉키를 추방위험에 빠트린 거요. 닉키를 당신 정치야망의 제물로 삼다니 정말 부끄러운 줄 아시요!” (정치사이트 ‘캘버즈’는 이 장면을 지켜보던 정치옵서버들이 ‘오 마이 갓’을 연발하며 ‘와, 재밌어지겠다…’는 기대로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토론의 명수인 브라운은 아마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가정부 논란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사실 증거가 없다)고 일축한 후 브라운은 이날의 강펀치를 날렸다. “당당하게 자신의 두발로 서서 ‘내가 실수했다, 미안하다’라고 말할 수 없다면 주지사에 출마하는 게 아니요. 당신은 닉키를 탓하고, 나를 탓하고, 좌파를, 노조를 탓하면서도 정작 당신자신은 책임을 안지려고 하는군…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줄 모른다면 리더가 될 수 없는 거요”
이날 이민 유권자들을 더욱 실망시킨 것은 드림법안에 대한 휘트먼의 답변이었다.
고교를 수석졸업하고 이제 프레스노 주립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려는 한 불법체류 여대생이 질문했다. “나 같은 학생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드림법안을 지지하겠습니까?”
브라운의 답변은 확실했다. “연방 드림법안을 지지하며 캘리포니아 드림법안에 서명할 것이다. 서류미비자이건 아니건 모든 아이들에게 성공할 기회를 주는 것이 우리의 도덕적 의무다”
‘불법은 불법’이라며 휘트먼은 반대를 못 박았다. 그러나 (나도 꼭 듣고 싶었던) 이유는 빈약했다. “…불체자에게 혜택을 주면서 가주 주민의 대학진학 기회를 막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본다” 정말 휘트먼은 이 똑똑한 여대생 때문에 다른 합법체류 학생이 부당하게 교육기회를 빼았겼다고 믿는 것일까?
토론 내내 휘트먼은 브라운의 강펀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흔들렸다. 지난 몇 달 그 많은 돈을 쏟아 부으며 호소했던 라티노의 지지 확보도 현재로선 오히려 더 멀어진 듯 보인다.
닉키 논쟁 이후 엊그제 연이어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가 그렇다. 브라운의 리드는 오차범위를 넘어섰다. 4일의 라스무센 조사에선 49% 대 44%로, 5일의 로이터 조사에선 50% 대 43%로 브라운이 앞서고 있다. 히스패닉·아시안 이민계의 휘트먼 지지율 변화도 눈길을 끈다. 2주전 66% 대 17%로 브라운에 뒤지던 것이 이번 주엔 65% 대 7%로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라스무센 조사는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전을 양당의 ‘경합’에서 ‘민주 우세’ 지역으로 바꿔 놓았다.
선거는 25일 후다. 3주밖에 안 남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3주 이상 남았다고 할 수도 있다. ‘가정부’의 파괴력을 속단하기는 힘들다는 말이고 판세의 반전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반이민 주지사의 당선 가능성이 아직 건재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박 록 /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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