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대장’ 김정은이 마침내 2인자로 데뷔했다. 조선인민군 대장이란 칭호와 함께 당 중앙 군사위 부위원장에, 또 당 중앙위 위원장에 선임됐다. 44년 만에 열린 조선노동당 대표자 회의다. 그 무대를 통해 3대 권력세습의 쇼가 펼쳐진 것이다.
베일에 싸였던 이 ‘청년대장’의 모습도 공개됐다. 가슴에 훈장을 주렁주렁 단 장성들에 둘러싸여 박수를 치고 있는 모습이 뒤늦게 방영된 것이다. 과체중 체질에 인민복 차림의 청년대장의 모습에서 20대의 발랄함은 찾을 수 없다. 어딘가 비정적으로 보인다.
어찌됐든 메시지는 분명하다. 군이 다스리는 나라가 북한이고, 그 조선인민군 장성들은 이 청년대장을 떠받들고 보호하고 있다는 시그널을 강력히 흘리고 있는 것이다.
이 3대 권력세습은 그러면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필요조건은 어느 정도 채워졌다. 그러나 충분조건은 아직 미흡하다.” 한 국내 전문가의 지적이다.
‘김정은 체제’로 가기 위해 꽤나 고심했다. 김정은이 2인자임를 분명히 하면서 군(軍)과 당(黨)과 정(政)의 고위 간부들이 김정은을 지원하는 인사구도를 만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김정일의 1차 인사포석은 안정적이란 평가다.
문제는 후계자가 갖추어야할 충분조건이다. 불과 2년이란 세월동안 무리하게 추진된 후계세습과정은 북한 권력 내부에 상당한 부담을 남기고 있다. 그 결과 북한의 집권층은 크게 동요하고 있다는 게 관측통들의 진단이다.
김정은은 물론이고 김경희에게 대장 칭호를 내린 것부터가 그렇다.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중간급 북한 정부 간부가 한국 정부 관리와 가진 사석에서 보인 반응이라고 한다. 보통의 북한주민 반응은 더 차갑다. 군 내부의 반발도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북한 내부 권력은 생각보다 그 동요가 심하다. 안정과는 거리가 멀다.” 영국의 북한문제 전문가 에이던 포스터-카터의 말이다. 권력투쟁으로, 또 정책노선을 둘러싼 논쟁으로 북한의 엘리트계층은 심각한 분열상을 보이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대장’ 김정은이 대중의 호응은 고사하고 엘리트계층의 지지조차 제대로 끌어낼 수 있을지 극히 회의적이라는 것이다. 달라진 외부 환경 역시 3대 권력세습 전망을 흐리게 하고 있다.
“북한문제와 관련해 한 가지 공공연한 비밀이 있다. 한국은 물론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국가들 모두가 적극적인 개입을 꺼린다는 사실이다.” 6자회담과 관련해 일찍이 한 전문가가 한 말이다. 무엇을 그러면 원했나. ‘스테이터스 쿠오’(status quo)-현상유지다.
미국의 입장이 그랬다. 미국은 사실에 있어 김일성에서 김정일로의 권력세습을 인정했었다. 김일성 사망 후, 그러니까 1994년 말 당시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 핵 프로그램을 동결하는 기본합의서에 서명함으로써 갓 출범한 김정일 체제를 인정했던 것이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중국의 경제발전에 한반도에서의 현상유지는 필수라는 입장과 함께. 한국은 흡수통일을 이룩한 독일이 안게 된 경제 부담에 놀라 통일정책을 사실상 포기했었다.
천안함 사태이후 상황은 일변했다. 미국은 북한의 3대 세습 쇼에 냉소적이다. 김정은을 과도적 인물로 보고 있다는 말이다. 더 주목할 점은 오바마 행정부가 일찍이 지지를 천명한 한반도 통일정책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통일한국’을 처음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북한문제와 관련해 미국과 한국은 ‘레짐 체인지’도 고려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통일한국은 경제적 라이벌이 될 것이다. 일본의 종래 입장이다. 그러나 북한의 두 차례 핵실험과 천안함 사태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자유민주주의체제로의 통일된 한국이 더 바람직하다는 쪽으로.
오직 중국만이 여전히 한반도에서의 현상유지를 희망한다. 핵을 가진 북한이 통일된 한국보다 바람직하다는 것이 변하지 않은 중국의 입장이다. 3대 권력세습이란 무리수를 감행하면서 김정일은 중국의 품에 안겼다. 오직 중국으로부터만 권력승계 승인을 받아낸 것이다.
그러나 그나마 공짜가 아니다. 개혁· 개방, 다시 말해 중국식 시장경제체제 도입의 압력을 받고 있다. 역설적인 사실은 이 중국식 개혁·개방정책이 도입될 때 한반도의 현상유지는 급격히 무너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북한 내에서 현상타파를 가장 열심히 추구하는 세력은 시장세력이다. 김정일 체제는 이 세력을 발본색원하기위해 화폐개혁 등 온갖 강수를 구사했다. 그러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고 시장세력은 오늘날 가장 강력한 체제 위협세력으로 남아있다. 이런 상황에서 개혁·개방을 추구할 때 어떤 결과가 올까. 수령절대주의체제 붕괴다.
역사의 되풀이는 비극이다. 그 두 번째 되풀이는 코미디다. 공산주의 비조 칼 마르크스의 말이다. 두 번째 시도되는 김일성 왕조의 권력승계. 이는 아무래도 세기적인 ‘코미디’다. 북한 주민의 눈물과 피를 담보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주 섬뜩한 넌센스의 ‘블랙 코미디’다.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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