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가주의 음악 팬들은 LA 오페라의 총감독이며 주역 테너이고 지휘자로 종횡무진 활약하는 플라시도 도밍고에게 깊이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25년이라는 짧은 역사의 LA 오페라가 세계 유수 오페라 단으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고, ‘링 사이클’이라는 대작을 무대에 올리는 일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도밍고가 LA오페라와의 계약을 2013년까지 3년 더 연장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그런데 그가 14년간 음악감독으로 활동해 온 워싱턴 국립오페라와의 계약은 연장하지 않고 2011년 6월 말로 종료된다고 27일 밝혔다).
세계 초연작품 ‘일 포스티노’
유명시인 네루다 말아 열연
’피가로의 결혼’ 혼신의 지휘
지난 주 LA 오페라는 25주년을 축하하는 2개의 시즌 오프닝 공연을 연속해서 무대에 올렸는데 여기서도 도밍고는 초인적인 활약으로 만석의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온을 뜨겁게 달궜다.
23일 세계 초연된 ‘일 포스티노’(Il Postino)에서 주인공 파블로 네루다 역을 맡아 열연한 그는 26일 막을 올린 ‘피가로의 결혼’(Marriage of Figaro)에서는 오케스트라 핏에 들어가 지휘봉을 잡고 2시간30여분의 열정적으로 지휘했다. 내년 1월이면 70세가 되는, 지난 봄에 결장암 수술까지 받은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완벽한 모습이었다.
특히 ‘일 포스티노’는 도밍고를 위한 오페라라고 해도 좋은 작품으로, 94년 오스카 음악상을 탄 동명의 영화를 작곡가 다니엘 카탄이 오페라로 쓴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도밍고 자신이 네루다 역을 맡고 싶다고 했을 만큼 의욕과 애착을 보였다는데, 과연 그 외에 어떤 사람이 노벨상 수상의 유명한 노시인 역을 그렇게 잘 소화할 수 있을지 알지 못하겠다.
또한 그와 함께 주역을 맡은 우편배달부 마리오 역의 젊은 테너 찰스 카스트로노보 역시 시인에게서 은유와 시를 배우면서 사랑과 정의를 실현해 가는 소박한 청년의 모습을 훌륭하게 노래해 갈채를 받았다.
오페라 ‘일 포스티노’는 영화 ‘일 포스티노’의 배경과 스토리, 등장 인물들에 전혀 변화를 주지 않고 같은 흐름을 사용하고 있으나 영화보다 코믹하게 만들어 더 가볍게 느껴진다. 음악 역시 잔잔한 스토리에 따라 극적인 긴장감 없이 이어지며, 세트 역시 소박하고 단아하게, 영상을 많이 이용하여 다양한 장면들을 심플하게 연출했다. 칠레와 이탈리아의 정치적 혼란, 남녀 간의 사랑, 시적 표현들을 적절하게 버무려 좋은 작품을 만들어냈는데, 그러나 도밍고가 네루다가 아니었다면 과연 얼마나 매력 있는 오페라가 되었을지, 그건 잘 모르겠다.
한편 모차르트의 희가극 ‘피가로의 결혼’은 막이 올라서 막이 내려올 때까지 즐거움과 기쁨과 경이로움이 가득한 정말 재미있는 오페라다. 풍성한 음악과 재치 있는 대사들, 얽히고설켜 정신없이 돌아가는 스토리, 여러 등장인물들의 고른 비중, 아름답고 화려한 세트, 실력 있는 가수들의 좋은 연주, 도밍고의 힘찬 지휘 등 모든 사람에게 강권하고 싶은 공연이다. LA 오페라 역사에서 가장 잘된 성공작이며 최고 인기작품이라 25주년 축하 공연작으로 선정했다고 했는데, 과연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일 포스티노’와 ‘피가로의 결혼’은 지난 1년간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온을 무겁게 드리웠던 ‘링 사이클’의 심각한 분위기를 깨고 밝고 경쾌한 분위기로 새로운 시즌을 성공적으로 개막했다. LA 오페라는 오는 17일까지 ‘일 포스티노’(10월2, 5, 9, 16일)와 ‘피가로의 결혼’(3, 6, 10, 14, 17일)을 계속 번갈아 공연한다. 티켓 20~270달러.
(213)972-8001 www.laopera.com
<정숙희 기자>
opera1, 2/ ‘일 포스티노’에서 네루다 역의 플라시도 도밍고와 마리오 역의 찰스 카스트로노보가 노래하고 있다.
opera3/ ‘피가로의 결혼’의 한 장면. 왼쪽부터 알마비바 백작(보 스코부스), 안토니오(필립 코코리노스), 피가로(대니얼 오쿨리치), 수잔나(말리스 피터슨), 백작부인(마티나 세라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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