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하 사회부장
좀 어려울 듯한 시사 문제 하나. 다음 다섯 명의 인물들 가운데 공통점이 없는 한 사람을 고르시오--조이 베어드, 킴바 우드, 린다 산체스, 버나드 케릭, 재닛 리노. 의도된 정답이 재닛 리노임을 알아차리셨다면 미국 정·관계 시사 상식이 풍부하거나 이민문제에 관심이 많은 분일 것이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8년간이나 법무장관을 지낸 재닛 리노는 상당히 친숙한 이름인데, 그럼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장관이 될 뻔 했다가 낙마한 것이 공통점이다. 소위 ‘내니게이트’(nannygate)에 휘말린 주인공들이었다.
기업 변호사였던 조이 베어드는 1993년 클린턴 대통령의 첫 법무장관 지명자였으나 불법 신분이었던 유모와 운전기사를 고용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여론의 질타 속에 지명이 철회됐다. 그녀의 뒤를 이어 연방 판사 출신 킴바 우드가 법무장관 후보로 내정됐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유출됐는데 그녀 역시 불체자 유모를 고용했던 일이 불거졌고, 이로써 결국 미국 첫 여성 법무장관이라는 기록은 플로리다주 검찰총장 출신인 재닛 리노의 것이 됐다.
당시 막 출범하는 클린턴 행정부를 무척 곤혹스럽게 했던 조이 베이드와 킴바 우드의 낙마사건은 이후 ‘내니게이트’가 불체자를 유모 또는 가정부 등으로 고용한 사실이 드러나 구설수에 휘말리거나 공직까지 내놓게 되는 경우를 지칭하는 용어로 널리 쓰이는 계기가 된다.
린다 산체스는 2001년 미국 역사상 히스패닉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연방 정부 각료직에 지명된 인물이었다. 텍사스 주지사 시절부터 히스패닉과의 가까움을 과시했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당선 후 첫 노동부 장관으로 지명했던 그녀는 그러나 한때 과테말라 출신의 불체신분 여성을 가정부로 두었던 사실이 이웃에 의해 폭로되면서 역시 장관 후보에서 자진 사퇴하고 만다.
이후 부시 대통령은 2004년 당시 사임의사를 밝힌 탐 리지 초대 국토안보부 장관의 후임으로 뉴욕 경찰국장 출신의 버나드 케릭을 지명하지만, 그도 또한 불체자 고용문제의 회오리를 맞고 자진 사퇴한 뒤 이후 탈세 등의 혐의로 철창신세까지 지게 돼 ‘내니게이트’의 최대의 희생자(?)로 기록된다.
그런데 케릭 사태 이후 한동안 잘 눈에 띄지 않던 ‘내니게이트’ 용어가 다시 뉴스에 전격 등장했다. 이번에는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뛰어든 이베이 CEO 출신 멕 휘트먼 후보가 타겟이 됐다. 그녀의 집에서 9년간 가정부로 일했다는 멕시코 출신 여성이 지난달 29일 휘트먼 후보가 자신이 불체 신분임을 알면서도 일을 시키다가 작년에 주지사 출마가 결정되자 자신을 해고했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대해 휘트먼 후보는 이 여성이 자신의 집에서 일한 사실은 인정하지만 그녀가 가짜 서류를 제시해 속였기 때문에 불법 신분임을 몰랐다며, 이 여성이 민주당 성향의 글로리아 올레드라는 유명 변호사의 주선으로 소위 ‘폭로 기자회견’까지 연 것은 각본에 의해 짜인 정치적 음모라고 즉각 반박했다. 휘트먼은 거짓말 탐지기 조사까지 받을 용의가 있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이지만, 불법 이민 강력 대처를 주장해 온 휘트먼이 불법 신분 가정부를 9년간이나 고용하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드러난 것만으로도 이번 주지사 선거전이 ‘내니게이트’라는 태풍의 사정권에 들게 됐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사실 ‘내니게이트’의 존재는 미국 내 불법이민 문제에 도사린 정치적 위선이 얼마나 큰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강성 보수표를 의식해 불법 이민 척결을 외치면서도 뒤에서는 불체자를 고용하고 하는 행위가 스캔들임은 분명하지만, 그냥 떠들썩하게 당사자들만 매도한다고 해서 문제가 극복될 수는 없다.
미국 내 불법체류자 문제의 뿌리가 저임금 노동력을 이민자들로 충원해야 하는 사회경제적 구조에 있음을 인식한다면 1,100만에 달한다는 미국 내 불법체류자의 합법화 길을 열어주는 포괄적 이민개혁만이 문제 해결의 근본적 방법임이 분명하다. 답답한 것은 이민개혁 시계 역시 안개속이라는 점이다. 초당파적 명분이 충분한 ‘드림법안’마저 중간선거를 앞둔 정치기류 속에 다시 좌초된 상황에서, 또 하나의 ‘내니게이트’를 바라보는 심정은 착잡하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