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나 <수필가>
알래스카를 가다
태고의 신비를 감추고 있는 듯한 ‘자연의 보고’ 알래스카. 1959년 49번째 미국의 주가 된 이곳은 뛰어난 자연환경으로 모든 이들에게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로 손꼽힌다. 현대 문명과 자연이 공존하는 알래스카로 떠나보자.
인구 28만 앵커리지 시내 곳곳 호수
수상 비행기 ‘판툼’수백대 대기
1964년 9.2 강진 진원지엔 공원이
알래스카의 거대한 빙하는 지구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자연의 모습이다.
2년을 미루던 알래스카 여행을 떠나게 됐다. 시집 갈 날을 받아 둔 처녀처럼 며칠 전부터 가슴이 설랬다. 존 웨인 공항에서 두 시간 반을 날아와 시애틀 공항에서 비행기를 바꿔 탄 뒤 남편과 내가 앵커리지 공항에 내린 건 그 곳 시간으로 밤 9시20분이었다. 이번 여행의 동반자인 영자씨와 성희씨는 아마 벌써 도착했을 것이다.
비행기에서 준 콜라 두 잔밖에 마신 게 없건만 다소 흥분한 탓일까. 다섯 시간이 넘는 여행에도 피곤하거나 시장함은 느낄 수가 없다. 짐 찾는 곳으로 내려가니 이미 도착한 영자씨가 나를 보고 반갑게 달려온다. 제일 먼저 도착한 성희씨도 바로 눈에 띈다.
그들 두 사람은 각각 다른 비행기로 이곳에 왔다. 내가 알래스카 여행을 떠난다는 말을 듣고 막차를 타는 심정으로 우리 부부와 동참을 했다. 그들이 따라 오겠다고 했을 때 사실 상당한 부담을 느꼈다. 남편과 나는 자주 두 사람만의 긴 여행을 했지만 타인들이 낀다면 그렇게 편하지는 않을 것 같아서였다.
더구나 남편은 미국 사람이다. 거기다 그녀들이 우리의 여행 스타일을 따라줄 지 또 그들의 기대를 만족시켜 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다행히 남편은 무던한 성격이어서 그들이 합류하는데 큰 불편은 느끼지 않았다.
몇천마일 떨어진 곳에서 친구를 만나니 헤어졌던 애인을 만난 것보다 더 반갑다. 밤 10시가 가까운 시간인데도 알래스카의 태양은 휴식을 모른다. 중천에 떠 있는 해를 보며 우리가 북극(North Pole)에 가까이 왔다는 걸 실감나게 했다.
예약한 호텔의 셔틀버스를 타고 다운타운에 있는 데이스인 호텔에 짐을 풀었다.
그냥 잠자리에 들기엔 너무 아까워 호텔 건너편에 있는 ‘컨트리 키친’으로 들어갔다. 밤 10시에 닫는다는 식당은 문 닫을 시간인데도 우리를 거절하지 않았다. 식당 안은 통나무로 벽지를 바른 듯해 알래스카에 나무가 많다는 것을 한 눈에 느끼게 했다. 식사를 끝내고 나오면서 아직도 뜨겁게 쏘아대는 해를 보고 왠지 먼 나라에 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잠자리를 옮긴 탓인지 어젯밤은 잠을 설쳤다. 비행기, 배, 기차 그 어느 것을 타도, 그리고 아무리 오래 타도 멀미를 하지 않는 나는 틀림없는 김삿갓의 방랑체질이다. 21세기를 살아가기엔 딱 좋은 체질이지만 옛날 같으면 집시처럼 떠도는 역마살이 낀 팔자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런 내게도 한 가지 아킬레스건이 있다. 여행 첫날 밤, 자주 잠을 설치는 일이다. 그러나 어딘가로 흘러가고 싶어 하는 내 방랑벽은 하룻밤 잠을 설치는 일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알래스카는 북극의 멀고 먼 나라인양 신기하고 감미롭게 내게 다가왔다. 높고 낮은 산들이 굽이굽이 이어진 골짜기 속에 깊이 잠들었던 대지가 긴 기지개를 켜며 하늘 문을 열고 몸을 푸는 모양이다.
캘리포니아 날씨에 익숙한 성희씨가 옷을 많이 입으라고 몇 번이나 강조를 한다. 밖을 내다보니 벌써 싸늘함이 느껴진다. 낮 최고온도가 57도쯤 되리라 하니 그녀가 걱정을 할만도 하다.
오늘은 앵커리지 시내를 돌아보기로 했다. 시내 관광버스가 서는 곳은 우리 호텔에서 15분 쯤 걸어가 오른쪽으로 도니 바로 안내(visiter) 센터가 나온다.
Trolley 시내관광은 9시반에 출발한다고 해서 표를 산 뒤 기다렸다. 다행히 우리는 ‘AAA’나 ‘AARP’ 멤버십이 있어서 거의 모든 것을 10~15%씩 디스카운트를 받았다. 미국처럼 디스카운트 문화가 철저하게 지켜지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수년 전에 국립공원에서 평생 입장권을 하나 20달러에 구입했는데 그것만 보이면 국립공원은 어디나 무료 입장을 한다. 보통 한 번 입장료가 10~20달러인데 모든 국립공원이 무료라니 너무 미안한 마음에 가는 곳마다 조금씩 도네이션을 한다.
누군가 나를 위해 이런 혜택을 주었듯 내 작은 정성이 또 다른 누구를 기쁘게 해 주기를 진심으로 원한다. 나처럼 자주 돌아다니는 사람에게는 꼭 한번 구입해 볼 만한 것이다.
앵커리지는 현재 27만9,000명의 인구가 산다고 한다. 알래스카에서 가장 큰 도시의 인구가 내가 사는 오렌지카운티 헌팅턴비치의 인구보다 훨씬 적은 것 같다.
원주민 고유의 ‘울루’(Ulu) 칼을 만드는 공장을 지나간다. 울루 칼은 알래스카 에스키모인들이 만드는 칼로 카누나 카약 같은 배를 만들 때, 그리고 사냥을 할 때 쓰는 칼이다. 지금은 종류가 다양해 가정용으로 쓰기도 한다.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 칼을 기념품으로 구입하기도 한다.
버스에서 보니 시내 곳곳에 호수를 끼고 가장자리를 삥 둘러 ‘판툼’(수상 비행기를 일컫는 현지 명칭)이 수백대씩 주차해 있다. 판툼은 관광용, 수송용 등 용도가 다양하지만, 변화무쌍한 기후 탓에 알래스카의 항공기 사고가 세계 평균의 두 배가 넘는다고 한다.
앵커리지 해안가에 있는 지진 공원 앞에 버스가 섰다. 초라한 나무들로 둘러싸인 이곳은 전 알래스카를 공포로 몰아넣은 1964년 3월27일 금요일 오후의 대지진을 얘기하고 있다. 지금껏 세계에서 두 번째로 컸던 9.2를 기록한 그 지진의 진동이 얼마나 컸던지 알래스카는 물론 캐나다, 그리고 워싱턴주까지 심하게 흔들렸다고 한다. 그로 인해 120마일 떨어진 수워드시의 상당 부분이 물속으로 씻겨 사라져버렸다니 그 강도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지진 공원 자리는 원래 롤링힐로 앵커리지 해안을 한 눈에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주택지였다. 하지만 강력한 지진으로 30피트 아래 땅 속으로 꺼져 버렸고, 90피트 높이의 쓰나미가 90마일 속도로 몰려왔다니 인구가 많은 도시였다면 그 피해가 어떠했을 지 상상을 초월한다.
몇년 전에 있었던 진도 7.5의 인도네시아 지진으로 인한 그 엄청난 피해를 생각하면, 인간의 미약함에 허탈할 뿐이다. 우주의 섭리를 티끌만 큼도 알 수 없는 우리는 그저 짧은 순간을 머물다 가는 보잘 것 없는 존재다.
그 후 진원지였던 이곳이 지진 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알래스카에서 ‘판툼’이라고 불리는 수상 비행기는 겨울철 사람과 물건을 실어나르는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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