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8을 기억하라’-. 북경의 일본대사관 앞. 수 백 명의 중국인 시위대가 몰려들어 반일(反日)시위를 벌이고 있다. ‘일본은 다오위에서 물러가라’는 피켓 물결 가운데 여기저기 보이는 것이 바로 이 문구다.
2010년 9월18일, 그러니까 만주사변 발생 79주년이 되는 날 벌어진 시위다.
집회와 시위가 금지된 지역이다. 그런데도 수 백 명이 나왔다.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등장한 시위대. 그 모습에서 새삼 역사의 아이러니란 것을 느끼게 된다. 역사란 그 주체만 달라질 뿐 되풀이 되고 되풀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1931년 9월18일 만주 봉천외곽에서 원인 모를 폭발사건이 발생한다. 이를 빌미로 일본 관동군의 대대적인 군사행동이 시작된다. 그 책임을 중국 측에 전가하면서 만주에 대한 침략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유조구사건’으로 불리는 이 폭파사건은 이타카키 세이시로 대좌 등 일본의 소장파 장교들이 획책한 도발이었다. 이를 계기로 일본의 정국은 소장파 장교들이 주도, 정당내각은 종지부를 찍게 된다. 이후 군국주의 대두와 함께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으로 전선은 확대된다.
그리고 80년 후. 일본과 중국은 또 다시 충돌했다. 진원지는 동중국해 외딴 해역이다. 중국명은 다오위(釣魚)섬, 일본에서는 센카쿠(尖閣)열도로 불리는 섬 부군에서 일본정부가 중국어선을 나포했다. 순간 사태는 일파만파로 확산됐다.
사건발생 17일 만에 결국 일본이 한발 뒤로 물러섰다. 보복조치로 중국은 일본인 관광객 4명을 준 간첩혐의로 체포했다. ‘눈에는 눈’식의 보복에, 정치·외교적 압력에, 또 경제제재조치까지 취했다. 관제 반일시위는 전 방위 ‘일본 때리기’의 시작일 뿐이었다.
그 결과 중국은 마침내 중국어선 선장의 석방을 이끌어낸 것이다. 이 일본과의 충돌에서 그러면 중국은 과연 승리를 거둔 것인가.
‘상처뿐인 승리다’-. 디플로매트지의 지적이다. 중국인 선장 석방이라는 단기적 성과는 거두었지만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영유권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외교관례를 무시한 중국의 마구잡이식 외교에 주변국들은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다. 때문에 득(得)보다는 실(失)이 많다는 평가다.
이코노미스트도 같은 진단을 하고 있다. ‘평화굴기’란 말은 헛소리가 됐고 책임 있는 당사자로서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다. 그리고 일본인들의 적개심만 심화시켰다는 것이다.
조그만 일에도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다. 단호하다. 아니 호전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이번 일본과의 충돌 뿐에서 만이 아니다. 베트남과도 그랬다. 유럽 국가들과도 그랬다. 미국을 상대로도 그 외교수사가 거칠기 짝이 없다.
무엇이 중국의 외교 행태에 이 같은 변화를 가져왔나. 서해에서 남중국해 그리고 동중국해에서 벌이고 있는 ‘중국식 힘의 외교’와 관련해 새삼 던져지고 있는 질문이다.
관련해 한 신문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중국의 소장파 장교와 1930년대 신드롬’-영국 텔레그라프지에 실린 에세이다.
“중국의 ‘핵심적 이해’가 걸린 지역이다.” 중국의 외교정책이 강경일변도로 치달으면서 북경당국이 마치 전가의 보도인 양 내거는 외교 수사이자, 엄포다. ‘핵심적 이해가 결렸다’는 것은 그 이해를 지키기 위해서는 무력동원도 불사한다는 말이다. 대만이, 티베트가 중국이 말하는 ‘핵심적 이해지역’이다.
북경 당국은 그 리스트를 계속 늘려가고 있다. 그 케이스의 하나가 남중국해로, 중국은 걸핏하면 남중국해에서 무력시위를 벌인다.
이 일련의 상황에서 서방이 특히 주시하는 것은 중국 인민해방군의 소장파 장교들이다. 이들 소장파 장교들은 미국에 대한 호전적 발언을 서슴지 않으면서 주요 외교정책에 대해 공개적인 발언도 마다하지 않는다.
남중국해가 중국의 ‘핵심적 이해’가 걸린 수역이라고 선포하고 나선 것도 소장파 장교들이다. ‘서해가 중국의 내해(內海)’라는 괴이한 논리개발과 함께 미 핵 항모 조지 워싱턴 호의 서해 진항을 공개적으로 저지하고 나섰던 것도 바로 이들 소장파 장교들이다. 그리고 센카쿠 열도에서의 사태를 둘러싸고 가장 험한 말에, 거친 행보를 보여 온 것도 이들이다.
공산당 지도부는 그러나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을 뿐이다. 무엇을 말하나. 군부의 영향력이 날로 커지면서 공산당은 군부를 제대로 통솔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다. 아니 공산당이 오히려 군부에 의존하고 있다는 해석마저 나오고 있다.
“젊은 장교들이 전략을 통제하고 있고, 주요 외교정책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중국이다. 1930년대 일본 군국주의의 소장파 장교들처럼.” 한 관측통의 지적이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중국의 야망. 그 야망이라는 무한궤도를 질주하는 중국인민해방군 소장파 장교들은 과연 어떤 시각으로 한반도를 응시하고 있을까. 왠지 불쾌감이 치밀어 오른다.
옥 세 철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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