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예산안은 연방의회가 회기 내 반드시 통과시켜야 할 법안이다. 지난 48년 동안 예외가 없었다. 그래서 금년엔 물 건너갔다던 드림법안이 지난 주 마치 산타의 선물처럼 국방예산안에 수정안으로 끼워져 재상정되었을 때 행여나, 혹시나 하며 기대를 걸었었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나, 드림법안은 이번 주 연방상원에서 다시 한 번 무산되었다.
어떤 법안도 양극화의 칼날을 피하지 못하는 요즘 워싱턴 정계의 병든 분위기 탓이다.
이번 예산안엔 약 3,500개의 조항이 포함되었지만 양당이 대립한 쟁점은 드림법안과 함께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는 군 동성애자 차별정책 폐지 수정안이었다. 전원 반대표를 던진 공화당 의원들은 민주당의 “속 보이는 정치적 전략”을 탓했다 : 왜 관계없는 수정안들을 끼워 넣느냐, 재선에 고전하는 해리 리드 상원 민주당 대표가 히스패닉 표를 얻으려는 선거 작전이다…이렇게 탓하면서 상당수 공화당 의원들은 손발이 오그라들었을 것이다. 가난한 근로자들 위한 최저임금 인상안에 부유층 상속세 감면안을 묶어 버리는 등 끼워넣기는 공화당의 장기 중 하나였으니까. 친이민에서 반이민으로 180도 돌아선 존 매케인의 변신을 ‘정치적 전략’ 아닌 다른 말로 표현하긴 힘들테니까.
한 법안의 가부가 선거 앞둔 정치판의 이해타산으로 좌우되는 것은 물론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러나 드림법안은 그저 하나의 법안이 아니다. 거기엔 수십수백만명의 인생이 달려 있다. 그것도 스스로는 아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아이들의 미래가 걸린 법안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드림법안의 공동작성자인 리처드 루가의원까지 당론에 따라 반대표를 던졌다는 것은 양극화를 향한 분노를 넘어 절망을 느끼게 한다.
반대표를 던진 의원들은 표밭의 반이민 분노를 두려워했겠지만 드림법안에 대한 여론의 지지는 70%로 높다. 공화당 응답자의 지지도 60%나 된다. 반대할 대의명분이 없는 법안이다.
드림법안 시행의 결과는 미 사회에 마이너스가 아닌 플러스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LA타임스의 지적처럼 논란의 대상이 될 필요가 없는 이슈다. 어릴 때 부모를 따라와 미국에서 성장한 불법체류 고교졸업생들에게 신분합법화의 길을 열어주자는 것이다. 5년이상 살고 도덕적 성품을 가졌고 범죄에 연루되지 않았고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고…등의 자격 테스트를 통과하면 임시 합법거주 자격을 주고 2년이상 대학에 다니거나 군 복무를 마치면 영주권 신청을 허용하자는 것이다.
드림법안은 극우파들이 주장하는 ‘사면’도, 위법에 대한 보상도 아니다. 침체기에 재정부담을 안겨주는 경제적 손실도 아니다. 오히려 미국의 국익을 위한 확실한 자산 확보라 할 수 있다.
우선 구제대상이 미국 외엔 다른 조국을 알지 못하는 ‘아메리칸’들이다. 미국에서 자라고 미국에서 교육받아 영어로 말하며 리틀리그와 걸스카웃 활동으로 어린시절을 보낸 미국아이들이다. 단지 이들이 미국인임을 증명해 줄 서류가 없을 뿐이다.
게다가 미국은 “부모의 잘못에 대해 아이를 처벌하는 사회가 아니다”- 공화당의 유력한 대선주자로 꼽히는 마이크 허커비가 한 말이다. 이민가정의 ‘사랑의 매’도 아동학대로 엄중히 다스려 아이들을 부모로부터 격리수용하는 미국이 부모가 선택한 불법체류의 책임을 아이들에게 물어 이들을 사각지대로 내모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이들이 서류미비의 벽에 부딪치는 것은 고교를 졸업하면서다. 대학진학을 위한 학자금 대출도, 군대입대의 길도 막혀버린다. 그때까지 이들에게 투자된 공립교육비는 1인당 11만달러가 넘는다. 이들이 전문직에 진출해 성실한 납세자가 되는 것이 바람직한가, 그늘에서 불안하게 전전하며 다시 사회복지의 부담이 되도록 방치할 것인가 - 드림법안이 바른 해답을 줄 수 있다.
지난 10년 드림법안을 추진해온 리처드 더빈 민주당 상원의원은 이렇게 말한다. “많은 젊은이들이 내게 와 묻습니다. ‘언제 될까요?’ 그들의 눈에 찬 눈물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것이 내가 하려는 일입니다”
더빈의 웹사이트에 올려진 꿈꾸는 젊은이들의 사연, ‘DREAMers stories’ 중엔 한인 청년 민철의 이야기도 있다. 9살 때 도미해 GPA 4.2로 고교를 졸업하고 UCLA에서 미생물학을 전공하고 치대를 마친 후 치과의사 자격면허시험도 다 패스했지만 그는 의사 면허를 받을 수가 없다.
“전 생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살았습니다. 이제 와 짐을 싸갖고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여기서 살며 갚고 싶습니다. 제가 인간쓰레기도, 납세자의 돈을 짜내는 범죄자도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기회를 제발 주십시오. 받는 사람이 아닌 주는 사람이 될 기회, 제가 힘들었던 캄캄한 시간에 갇혀 좌절했을 때 사람들이 제게 해 준 것처럼 저도 주위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중간선거의 ‘광기’가 잦아들고 의원들의 바른 판단과 용기가 되살아난다면 드림법안은 선거 후 레임덕 회기에 재상정될 수도 있다. 그때도 안 된다면 내년에 다시 시도될 것이다.
드림법안은 죽지 않는다. 젊고 성실하고 유능한 수많은 젊은이들이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 한 드림법안은 죽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박 록 /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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