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마림바 연주자 정지혜 캔사스 음대 부교수
타악인 정지혜, 혹은 마림바 연주자 정지혜란 이름을 알아두는 것이 좋겠다. 정지혜(Ji Hye Jung)는 이제 26세의 젊은 퍼쿠셔니스트로, 마림바 최고의 연주자 중 한 사람이라 해도 좋을 만큼 대단한 재능과 실력을 가진 음악인이다. 그 나이에 캔사스 대학 음악대학의 부교수로서 종신(tenure) 트랙에 올라 있는 그녀가 지난주 카메라타 퍼시피카의 2010~11시즌 오프닝 콘서트에서 정말 훌륭한 연주를 했다. 이날 콘서트는 정지혜의 연주회라 해도 좋을 정도로 레퍼터리가 4개의 마림바 곡들로 꾸며졌는데, LA타임스의 마크 스웨드 음악비평가는 그의 연주를 ‘장관’(spectacular)이라고 극찬했다. 마크 스웨드는 정지혜를 세계적인 마림바 연주자들과 어깨를 겨룰 재목의 ‘발견’(discovery)이라 했고, 예외적으로 ‘특출나다’(exceptional)고 했으며, ‘천부적 재능의 연주자’로서, ‘중심을 갖고 안정감 있게 큰 악기를 종횡무진 마음대로 다룬다’며 처음부터 끝까지 이례적인 찬사를 보냈다. 이날 공연은 클래식 라디오방송 KUSC(FM 91.5)으로 생중계됐다.
세계적 실력 인정받은 26세 ‘최고 퍼쿠셔니스트’
다음 시즌부터 실내악단 카메라타 퍼시피카 합류
정지혜를 처음 본 것은 꼭 1년 전 카메라타 퍼시피카의 지난 시즌 오프닝 공연에서 후앙 루오의 화제작 ‘4개의 코너’(To the Four Corners)를 연주했을 때였다. 플룻, 클라리넷, 바이얼린, 비올라(리처드 용재 오닐) 4개 악기의 연주자들이 무대의 네 귀퉁이에 섰고, 한 가운데 정지혜가 서서 여러 종류의 타악기들을 신들린 듯 두드리는데, 얼마나 자신감 넘치고 매력적인 연주를 하던지 함께 보러 간 사람들이 모두 넋을 놓았었다.
그런데 그녀의 마림바 연주를 들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양손에 네 개의 스틱(mallets)을 들고 마림바라는 악기를 자기 몸처럼 자유자재로 다루는 율동감 넘치는 연주에 지퍼홀 객석을 꽉 채운 청중들은 기립박수를 보내며 열렬히 환호했다.
특별히 이 날 세계 초연한 ‘매운 고추’(Hot Pepper)는 작곡가 브라이트 솅(Bright Sheng)이 정지혜와 캐더린 레너드 바이얼리니스트를 위해 위촉받아 쓴 피스로, 중국 민요를 연상케 하면서도 묘하게 현대적이고 강렬한 연주가 인상적이었다. 또한 바흐의 플룻과 합시코드를 위한 소나타를 정지혜가 플룻과 마림바 소나타로 편곡해 연주했는데, 열손가락을 위한 건반 악보를 4개의 스틱만으로도 어찌나 훌륭하게 표현하는지 마림바의 울림으로 새로 태어난 바흐 음악이 사뭇 신선했다. 또 비감미 넘쳐흐르는 오스발도 골리조프의 ‘마리엘’은 첼로와의 합주로 가슴을 울렸고, 솔로곡 조셉 슈완트너의 ‘벨로시티즈’는 엄청나게 스피디하고 격렬하며 화려한 연주로 듣는 사람을 흥분으로 몰아넣었다.
왜 흔치 않은 타악기 마림바를 연주하게 됐을까? 지난 15일 정지혜를 인터뷰하면서 가장 먼저 물어본 질문이다.
“다섯살 때 청주 우리예능원이라는 유치원에 갔는데 거기서 마림바를 처음 본 순간 그게 하고 싶었습니다. 피아노, 바이얼린 등 여러 악기들이 있었는데도 마림바가 하고 싶었어요”
마림바의 어떤 것이 다섯 살 아이를 매혹시켰을까?
“소리가 특이해서 좋았어요. 특히 저음에서 나는 소리가 어찌나 질박하고 자연스런 음색으로 가슴을 울리던지 눈과 귀를 뗄 수가 없었습니다”
마림바를 연주하려면 건반이 비슷한 피아노를 먼저 6개월 정도 공부하라고 해서 피아노부터 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피아노는 마림바를 하면서도 6년 넘게 쳤고, 플룻도 한 3년 불었는데 그건 호흡조절을 더 잘하기 위해서였다. 요즘 타악기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아졌는데 권하고 싶은 것은 먼저 건반악기를 익히는 것은 물론 다른 악기도 겸하라는 것이다. 박자와 리듬감뿐 아니라 멜로디의 흐름을 익히는데 좋다고 한다.
타고난 재능 말고, 젊은 나이에 최고 수준의 연주자로 올라선 비결은 무엇일까?
“어린 시절부터 시작한 것이 무시 못 하는 실력으로 쌓인 것 같습니다. 자유롭게 악기를 움직일 수 있다는 건 몇년 해서 되는 게 아니거든요. 그리고 연습을 정말 많이 했어요. 주말에도 연습하느라 어릴 때도 친구 생일파티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을 정도지요”
초등학교 2학년 때 연습이 하기 싫어 꾀병을 부리고 2주 정도 쉬었던 것이 전부, 그 이후 지금까지 연습벌레로 살았다. 오죽하면 동료 연주자들에게 놀림을 당할까.
“캔사스 시골에 살다가 LA에 왔으면 맛있는 것도 사먹고, 바닷가에도 가고, 재밌게 놀만도 한데 콕 틀어박혀 연습만 한다며 이번에도 카메라타 퍼시피카 단원들이 놀리더라구요”
한 우물 스타일인가, 의리가 있는 걸까? 미국으로 떠나올 때까지 청주 우리예능원 이영순 선생님에게 마림바를 배웠다는 정지혜는 예원, 예고를 거쳐 서울 음대 1학년 재학중 미국으로 와 피바디 음대를 전액 장학금으로 입학, 2007년 수석 졸업했고 예일 음대 석사과정 역시 전액 장학금 입학해 2009년 음대학장 추천 최고학생으로 졸업했다. 그리고 클리블랜드 대학 강사로 활동하다가 2년 전 캔사스 대학이 음대를 창설할 때 교수로 영입됐다.
한국의 주요 오케스트라와 100여회의 콘서트를 가졌고, 서울대 콩쿠르, 경원대 콩쿠르 등 국내 유수 콩쿠르들은 물론이고 오스트리아 린즈 국제 마림바 콩쿠르, 예일 고든 콩쿠르, 휴스턴 오케스트라 콩쿠르에서 모두 1등을 휩쓸었으며 휴스턴 오케스트라, 잘츠부르그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협연했으며, 카네기홀에서 지휘자 데이빗 로버츤과 메시앙 전 프로그램을 협연했다.
“클래식 음악계에 마림바가 등장한 역사는 50여년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에 연주곡이 터무니없이 적은 것이 큰 안타까움입니다. 그래서 연주자이며 교수로서 나의 임무는 연주와 티칭뿐 아니라 마림바 레퍼터리를 보편화시키고 새 곡이 많이 쓰이게끔 노력하는 것이죠.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할 일이 많습니다”
고무적인 것은 현대 작곡가들은 타악기를 안 써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타악기는 현대음악에서 굉장히 중요한 악기라는 사실이라고 강조하는 정씨는 “피바디와 예일에서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이 타악기를 서포트 하는 음악을 많이 만들겠다고 약속하고 있어 미래가 밝다”며 환히 웃는다.
“타악기는 헤아릴 수 없이 종류가 많아요. 세상의 모든 나라에서 사용하는 두드리는 악기는 모두 타악기죠. 그러니까 내가 해본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더 많다는 겁니다. 타악기는 계속 개발되고 있다는 점이 다른 클래식 악기와 다른 점이고, 소리만 낸다면 무엇이든 다 다룰 줄 알아야 하니까 타악인은 계속 공부해야 합니다”
그녀는 현대 음악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곡과들, 폴 랜스키, 알레한드로 비냐오, 존 세리, 루카스 리게티, 마틴 브레스닉 등과의 새로운 타악기 음악 창조에 힘쓰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쁘고 흥분되는 소식은 정지혜가 다음 시즌부터 카메라타 퍼시피카의 정 단원이 된다는 것이다. 미 서부지역에서 가장 우수한 실내악 앙상블에 재능 있는 한인 연주자가 두 명이나 단원으로 활약하게 되다니, 남가주 음악 애호가들은 운이 너무 좋다고 할까. 카메라타는 브라이트 솅에게 다음 시즌을 위한 작품을 2개 더 위촉했는데 그 하나는 정지혜를 위한 마림바 콘첼토라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용재 오닐의 비올라와 마림바의 협연도 이루어질 것이라 기대해 본다.
◆마림바는
현대음악에서 대단히 중요하게 사용되는 타악기로, 요즘 전 세계적으로 마림바(사진) 붐이 일고 있다. 실로폰의 일종인 타악기로 장미목(rosewood) 조각을 말렛(Mallet 스틱)으로 때려 연주한다. 가볍고 울림이 적은 실로폰과는 달리 소리가 깊고 풍부하며 부드럽고 아름다운 공명이 클래식하면서도 모던한 음색을 내기 때문에 독주악기로 많이 쓰인다. 원래 아프리카의 민속악기였으며 미국에 이어 중남미에 보급돼 라틴아메리카의 민속악기로 쓰이다가 1950년대부터 클래식 음악의 악기로 쓰이기 시작했다. 큰 것은 음역이 6옥타브 1/2이나 되며 4명이 동시에 연주하는 것도 있다.
<글 정숙희 기자·사진 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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