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가방 속에는 대체 뭣이 들었을까. 한국에서 미국까지, 몇날동안 머나먼 길을 따라다니며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영상으로 소리로 담아내던 취재진은 그게 못내 궁금했던 모양이다. 워싱턴DC 정토회 사무실 겸 숙소에 도착한 그가 가방을 여는 동안 카메라를 들이댄다. 가방도 스님을 닮았다. 쟁여둔 게 거의 없다. 가사 한벌에 속옷 몇벌에 세면도구 두어가지에, 그리고 머리를 박박 밀어 조금만 서늘해도 꽤 싸늘하게 느껴질테니 그때 쓸 요량으로 접어서 넣어둔 털모자 한 개. 그것뿐인가 싶은 취재진에게 그는 여적 다듬지 않은 덧니들을 드러내며 그냥 웃어보인다.
올해 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KBS가 방영한 특집다큐 ‘부처님의 외출’의 한 컷이다. 부처님? 그렇다. KBS 특집다큐는 그를 그렇게 이름했다. 뭇사람들은 그것을 감동으로 시청했다. 일회성 시청으로 모자라 그것은 DVD로 구워져 미국으로 유럽으로 사방팔방 퍼졌다. 다큐 끝머리를 장식한 말마따나 그는 지금도 외출중이다, 여전히 길 위에 있다. 이달 초 시애틀과 밴쿠버에서 순회강연을 한 그가 최근 북가주를 다녀갔다. 9일과 10일 1박2일동안 로스게이토스에서 명상수련회를 하고 10일 저녁에는 프리몬트에서 특별강연을 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LA로 떠났다. 그는 이달말까지 쉴새없이 미국 각지를 돌며 순회강연을 한다.
숙소가 따로 없다. 등 붙이고 눈 감으면 곧 숙소다, 자동차건 비행기건 어느집 곁방이건 허름한 모텔이건 어디건. 하긴 언젠가, 비싼 침대에서 비단이불 덮고 자면 좋은 꿈 꾸냐, 그런다고 악몽 안꾸냐고 되물으며 너털 웃었던 그다. 여비랄 것도 없다. 설사 있어도 쓸 일이 별로 없다, 남몰래 즐기는 돈드는 허튼 취미가 있지 않고서야.
강연료니 뭐니 하는 것도 없다. 무료강연 무료법문은 20여년 이어온, 앞으로도 계속될 그의 철칙이다. 그래도 꺽꺽 쥐어주는 봉투는 봉투째 동행행자에게 직행이다. 그건 다시 에누리없이 정토회 계좌로 입수다. 한번 그곳에 잠기면, 그가 아무리 정토회 지도법사라도 멋대로 꺼내쓰는 건 원천불능이다. 그럴 줄 알고 더러 “이건 보시금 아니니까 거기 넣지 마시고 스님 가용으로…”라며 따로 찔러주는 것까지 얄짤없이 정토회로 넘겨버리니 그는 늘 빈털터리일 수밖에 없다. 세계 곳곳을 누비며 그가 쓰는 돈이란 짐은 많은데 공짜카트는 없는 짠 공항 같은 곳에서 카트를 쓰느라 지불하는 이삼불정도가 고작이다.
법륜스님. 세상에 둘도 없이 가난한 이 수행자가 세상에 둘도 없는 부자들이 엄두조차 못내는 일들을 해내고 있다. 한국에서 인도에서 필리핀에서…, 수행에 전법에 환경운동에 평화운동에 빈민구호활동에…, 집단법문에 개인상담에…. 이 세상에 자기몫으로 떼어둔 건 풀 한포기 돌멩이 하나도 없으니 도리어 이 세상이 다 자기몫이 됐다. 일일이 열거하기 힘든 그의 움직임들을 정토회 웹사이트(www.jungto.org)에 가면 대충 엿볼 수 있다.
“스님이 이런 얘기 하모 좀 이상하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지난 10일(금) 저녁, 프리몬트의 웜스프링스 커뮤니티센터. ‘지금 여기에서 행복해지기’라는 제목으로 SF정토회(총무 허성호)가 마련한 특별강연회에서 법륜스님은 후반부에 ‘정말 이상한’ 화제를 꺼냈다. 남녀가 호텔방에서 하룻밤 즐겼다 치자, 그런데 남자가 여자에게 돈을 줬다면, 놀이를 한 이는 누구고 노동을 한 이는 누구냐, 거꾸로 여자가 남자에게 돈을 줬다면? 스님의 물음에 160좌석을 꽉 메우고 주위에 듬성듬성 서서 눈과 귀를 모은 청중은 그 뜻을 알겠다는 듯 가벼운 웃음으로 답했다. 바로 직전에 디스코장에서 춤을 추더라도 돈을 주고 들어가 플로어에서 춤추는 사람들과 돈을 받고 무대위에서 춤추는 댄서를 예로 들며, 누가 놀이로 추는 것이며 누가 노동으로 추는 것이냐, 그런데 정해진 시간보다 30분 더 추자고 하면 좋아라 할 이는 누구며 귀찮아 할 이는 누구냐고 물었던 것에 덧대어 던진 질문이었다.
이날 저녁 7시부터 9시30분까지 2시간반, 그중 첫머리 영상자료 상영 등을 빼고 2시간가량 이어진 스님의 특별강연은 ‘특별’했으되 여느 ‘강연’은 아니었다. 알쏭달쏭 용어들이 범벅된 일장훈시 법문은 한톨도 없이 즉석에서 질문을 받아 즉석에서 답하는, 법륜스님 특유의 즉문즉설로 이어졌다. 아주 오래된 서가에 꽂힌 아주 오래된 서적에나 있을 법한 고담준론은 없었다. 대신 장삼이사들이 일상적으로 부대끼는 문제들이 ‘즉문’으로 톡톡 튀어오르고 그때마다 스님의 ‘즉설’이 줄줄 이어졌다. 그래서 생동감이 철철 넘쳤다. 스님의 즉설은 해답제시가 아니었다.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가르침도 아니었다. 위에서처럼 질문자에게 질문을 되던져 스스로 답을, 길을 더듬도록 유도하는 식이었다. <부처님의 외출> 다큐에서 스님이 말한 대로 “나는 답을 주는 게 아니다, 그네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답은 나온다, 악몽에서 시달려도 눈만 뜨면 악몽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눈을 뜨게 하는 것이다.”
서면질문을 포함해 열댓개 즉문 중 첫째부터 그랬다. 여학생이 물었다. “책만 열면 졸음이 오고 늘어지고…” 스님은 즉설했다. “공부를 안하면 됩니다. 왜 그걸 억지로 할라 그래. 재미있는 것도 엄청나게 많은데 뭣 때문에 졸리는 거 할라 그래요.” 장내에 웃음이 일었다. 물론 이게 끝은 아니었다. 과학에 관심이 있으나 학교에서 가르치는 과학과 개인적으로 관심있는 과학이 달라 고민이라는 여학생과 스님의 공개대화는 몇분간 더 이어졌다. 보긴 봐야겠는데 책만 열면 졸린다면 내가 문제인가 책이 문제인가, 과학에 취미가 있는데 학교에서 가르치는 과학에는 흥미가 없다면 과학 혹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과학이 문제인가 내가 문제인가. 책이 문제라면 다른 모든 이들도 책만 열면 졸려야 할 게 아닌가, 과학 혹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과학이 문제라면 다른 모든 이들도 여학생과 같은 고충을 겪어야 할 게 아닌가. 스님은 똑부러지게 이거다 저거다 안겨주지 않았다. 다만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답을 내게 했다. 몇차례 대화 끝에 여학생은 알아차린 듯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서울에 계신 노부모가 돌아가시면 그 슬픔을 어떻게 감당해야 될지 걱정된다는, 내친김에 사후세계가 궁금하다는 딸의 즉문에 스님은 나중것부터 즉설했다. “지금도 잘 못사는데 내일걱정은 하지 마세요.” 그리고 되물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걱정해야 되나, 산 나를 걱정해야 되나, 슬픔이 부모님(의 죽음) 때문에 오는가 그 담에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되나 하는 것에서 오나.” 경제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자살이 늘어나는 것과 관련해 종교인의 입장에서 한말씀 부탁하는 어느 거사의 즉문에 스님은 스웨덴 노르웨이 일본 한국 등을 예로 들며 “자살은 잘먹고 잘사는 데서 생긴다(더 심하다)”며 “종교가 물질적 가치를 대체할 정신적 가치를 제공해야 되는데 신앙이 돈 아래 있다, 종교가 여럿 있는 것 같지만 실은 하나다, ‘돈교’다”라는 등 물질에 종속된 신앙을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장일도 집안일도 완벽주의자인 아내 때문에 고민하는, 질문자의 표현으로는 “그런 아내에게 남편으로서 어떻게 도와줘야 되느냐”는 즉문에 스님은 단박에 핵심을 드러냈다. “아내가 완벽주의자라서 문제가 아니라 완벽주의자인 아내를 보는 내가 불편한 거여.” 그러면서 아내와 갈등을 빚지 않는 방법을 내놓았다. 언제나처럼 ‘오직 이것만’이 아니라 둘셋을 내놓고 스스로 생각해본 뒤 선택하라는 것이었다. “내가 아내보다 더 완벽주의자가 돼버리든지 아내의 완벽주의를 하나의 특징으로 인정하고 이해하면 돼요.”
집을 사고싶은데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도움을 받자니 이것저것 주문이 많아서 고민한다는 즉문에는 “남의 도움을 받으면 간섭받을 각오를 하고 간섭받기 싫으면 굶을 각오를 하라”고 일렀다. 앞서 가려움증에 고생하는 연단앞 청년이 긁으면 덧나고 안 긁으면 가려워서, 심지어 마음까지 가려운 것 같아 미치겠다고 한 즉문에도 스님은 의사처럼 갖가지 처방을 내리면서도 가려움도 싫고(그래서 긁으면서도) 긁어서 덧나는 것도 싫은 그 마음이야말로 욕심이라는 것을 표현을 달리해 지적했다. 대통령이 되려는 것 자체가 욕심이 아니라 (대통령이 되면 해서는 안될 어떤 것도 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모순되는 두가지를 동시에 채우려는 것이 욕심이라는 보족설명이 따랐다.
그밖의 즉문들도 한둘을 빼고는 거의다 일상 속에서 누구가 겪을 법한 문제들이었다. 스님의 즉설을 관통하는 공통어는 결국 모든 것은 자기문제요 선택문제였다. 자기문제를 제대로 풀기 위해서는 자기문제를 제대로 봐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자기자신을 정면으로 직시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세상사람들은 자신을 돈으로 감싸고 직위로 포장하고 누구누구를 안다는 식의 관계로 둘러치면서 자신을 직시하는 걸 회피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자신의 문제를 자신의 손으로 풀지 못한다는 지적이었다. 내 자신과 정면으로 한번 맞닥뜨릴 것이냐 말 것이냐, 이 또한 선택의 문제이기도 했다. 각각의 선택에는 각각의 과보가 따른다는 것 또한 자명한 이치였다. 내 문제가 내 문제인 줄도 모르고 밖으로 눈을 돌려 풀려고 덤비는 한 결코 풀릴 수 없다는 가르침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단디이’ 마음먹고 내 자신과 정면으로 한번 부닥쳐볼까. 이런 생각이 들었음직한 이들을 위해 스님은 정토회가 실시하는 4박5일 ‘깨달음의 장’에 다녀올 것을 권장했다. SF정토회는 매년 두세차례씩 LA정토수련원에서 열리는 깨달음의 장 참가자를 모집한다. 다음 깨장은 10월 중 열린다. SF정토회는 또 북가주 여러곳에서 매주 두세차례 열린법회와 정기법회를 열어 스님의 즉문즉설은 물론 부부갈등 직장문제 등 특별한 주제에 따른 영상기획법문을 함께 나눠보고 있다. 관련문의는 510-213-0853 또는 sfjungto@yahoo.com으로 하면 된다. <정태수 기자>
사진/ 지난 10일 프리몬트의 웜스프링스 커뮤니티 센터에서 열린 특별강연에서 법륜스님이 180여 청중을 향해 ‘즉문즉설’로 행복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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