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세계화가 참 요란하다. 작년 5월 농림수산식품부 주도하에 한식세계화 추진단이 결성되고 올해 3월 한식재단이 출범하더니, 이달 초에는 LA에서도 미서부 한식세계화 추진위원회가 발족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식을 왜 세계화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고, 이게 대통령과 영부인까지 나서서 추진해야하는 일인지 정말 모르겠다. 세상에는 정부가 추진해야할 사업이 있고,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일들이 있다. 아무리 한식이 웰빙 건강음식이고 좋은 문화상품이라지만 정부가 나서서 음식홍보를 국가 프로젝트로 삼는 건 좀 우스워 보인다.
그런데다 사업계획을 보니 스타 셰프 양성, 향토음식 전문가과정 개설, 재료의 공동구매, 한식표준 조리법 개발 등 이상한 내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스타 셰프를 정부가 양성한다는 것도 그렇고, 향토음식 전문가는 말 그대로 향토에서 자생적으로 나와야 자연스럽지 않은가? 또 재료를 공동구매하고 표준 조리법을 만들겠다니, 식당마다 일부러도 달리 쓰는 식자재와 레서피를 어떻게 평준화 하겠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금 한국정부가 추진하는 한식 세계화는 너무 인위적이고 인공적이며 겉치레에 치우친 느낌이다. 한국은 이미 자동차와 IT산업, 스포츠와 한류 등으로 국제무대에서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오바마 대통령도 툭하면 한국을 본받으라고 하는 이 마당에, 갑자기 한식도 맛보라며 외국인들 입에 떠 넣으려고 하다니, 좀 유치하지 않은가.
한식 세계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해외 한인들이 운영하는 식당의 역할이라고 본다. 외국인들을 직접 상대하는 식당 업주들이 협조하지 않으면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말이다. 그런데 오랫동안 LA의 수많은 한식당을 이용해온 사람으로서 우리의 요식환경을 돌아보면 세계화는커녕, 세계화를 막는 문제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이 식당 홀에서 버젓이 끌고 다니는 설거지통이다. 손님이 먹고 난 그릇들을 치우기 위해 등장하는 바퀴달린 회색의 고무 ‘다라이’말이다. 한국음식은 반찬이 많아서 수많은 그릇들을 치우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이해한다. 그래도 그렇지, 음식찌꺼기 묻은 더러운 설거지통을 끌고 다니며 한 통에는 먹다 남은 국물을 죽 따라 붓고, 다른 통에는 지저분한 그릇을 산처럼 쌓고, 아래통엔 물컵, 옆 통에는 휴지와 나무젓가락 쓰레기를 구겨넣는 모습을 보게 되면, 먹고 있는 음식이 넘어오려고 할 만큼 혐오스럽다. 이런 식의 무식한 식탁 청소는 타인종 식당에서는 본 적이 없다.
또 하나는 부족한 종업원과 그로 인한 서비스 부재다. 한식당에는 종업원의 손길이 필요한 메뉴가 유독 많다. 고기를 굽고 잘라준다든지, 밥을 볶아준다든지, 게와 조개를 토막 내고 발라주는 등 타인종 식당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서비스가 많다. 그런데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종업원 숫자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때문에 사람이 몰리는 식당에서는 웨이트리스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바람에 물 한잔도 제때 서브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요즘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무제한 고기구이 집들의 문제는 한층 심각하다. 타인종 친구들과 타운의 고기집을 몇번 다녀온 아들은 항상 창피하다고 했다. 처음에 들어갈 때만 친절한 척하고는 고기를 더 시키기 시작할 때부터 외면하고, 고기 양을 적게주거나 늦게 가져다줘서 불판이 다 타버리며, 나중에는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표시를 낸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종에 관계없이 무제한 고기집을 이용하는 모든 사람이 겪는 일로, 손님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돈으로 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한식당이 외국인을 끌어들이기 힘든 가장 큰 문제는 어쩌면 ‘빨리 먹고 빨리 돈 내고 빨리 일어서야 하는 분위기’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한식당종사자 교육’ 같은 프로그램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인 것이다.
바로 어제 LA타임스 푸드 섹션에 반(Bann) 식당을 소개하는 기사가 났는데 유명한 레스토랑 비평가 아이린 버빌라가 이런 말을 썼다. “코리아타운의 식당들은 대부분 호마이카 식탁에 형광등을 켠 작은 음식점들이다. 싸구려 음식을 찾거나, 국수나 두부 한 접시를 먹으러 간다면 좋을 곳들이다. 그러나 반은 혁신적인 메뉴와 스타일리시한 환경으로 다른 식당들과 차별화를 보이고 있어 쾌적한 환경에서 여유있게 디너를 즐길 수 있다”
타운에 한식당이 수백개가 넘지만 외국인들이 느긋하게 식사할 수 있는 곳이 몇 군데나 될까. 근본적으로 다른 식당문화를 개선할 방안은 없는데 기술적, 산업적, 홍보적 전략만을 가지고 한식 세계화를 외치고 있으니 오히려 이미지만 나빠질까 걱정스럽다.
정숙희 특집 1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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