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경기가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경제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집을 갖는 것이 여전히 현명한 방법인가?”라는 주제가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불러온 심각한 경제 불황을 겪으면서 “과연 무리를 해서라도 집을 장만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어느 때보다 현실성 있게 다가오고 있는 것. 그러나 타임, 뉴욕타임스 등의 주요 언론들은 연일 “주택이 가장 안전한 투자이던 시대는 지났다”고 진단하면서도 여전히 주택을 소유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는 반론도 설득력있게 소개했다.
■ 무리한 주택구입은 이제 그만
시사주간지 타임은 최근 ‘주택 소유에 대한 반대(The Case Against Home Ownership)’라는 표지기사를 통해 “빛을 내서 주택을 소유하는 것이 더 이상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모두가 집을 가져야 한다는 욕심, 이를 뒷받침해왔던 정부의 정책이 현재의 위기를 불렀고 이제 집 소유에 대한 일반인들의 근본적인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집을 소유한다는 것은 ‘아메리칸 드림’의 출발점이자 중산층으로 진입한다는 의미였다.
정부도 금융위기 이전까지 줄곧 주택소유를 장려해 10% 이내만 다운페이하고 30년 고정 모기지를 받아 집을 사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집값은 꾸준히 올랐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 근본이 달라졌다. 7월 기존 주택판매가 15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데 이어 신규 주택판매도 사상 최악으로 드러났다. 부동산 가격은 고점대비 평균 30% 가까이 급락했지만, 수요가 없다. 과거와 달리 부동산이 오히려 경기악화의 주범으로 몰리자, 정부 정책도 금융규제를 강화해 예전처럼 빚을 내 집을 사도록 하는 방향에서 급선회하고 있다.
집소유가 현명한 투자가 되지 못한다는 주장의 가장 큰 근거는 한마디로 더 이상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무리하게 모기지를 내도 집 값 상승이 원금과 이자율을 충분히 상쇄시켜주던 시대가 아니다. 남아있는 모기지보다 현 시세가 낮은 주택이 수백만 가구 이상이다. 미국의 주택소유자들은 3년전에 비해 무려 6조달러 이상의 자산 손실을 입고 있다. 못지않게 중요한 이유는 주택 구입자에게 무조건적으로 유리하던 세제 관행이 바뀔 가능성 때
문이다. 모기지 이율에 대한 세제 감면은 구입자에게 가장 중요한 동기가 되어왔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주택소유 위주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들은 “주택은 렌트 거주에 비해 훨씬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더 많은 자동차 운행을 하게 한 주범”이라며 “미국보다 훨씬 개인소득이 높은 스웨덴의 경우 주택 소유율이 36%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 그래도 주택은 꼭 장만해야
반론을 펴는 사람들은 “무책임한 대출과 능력없이 집을 사는 사람들이 문제일 뿐 여전히 집을 소유하는 것은 중산층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라고 반박한다. 특히 많은 부동산 관계자들은 “안정적인 직업과 수입이 있다면 오히려 요즘처럼 주택을 구입하기에 적기가 없다”고 강조한다. 주택 가격도 많이 떨어졌지만 사상 최저인 모기지 이자율, 이윤을 기꺼이 낮추려는 건설업자 등 모든 조건이 구입자에게 유리하다는 것이다.
저축률이 워낙 낮은 미국에서 모기지 불입 자체가 일종의 ‘강제적인 예금(forced saving)’ 역할을 한다는 주장도 여전히 설득력있다. 차익으로 인한 이득은 기대하지 않더라도 꼬박꼬박 납입하고 나면 은퇴 후 가장 든든한 재산인 집 한 채는 남는다. 주택 소유에 대한 오래된 믿음에는 경제적 요인외에 심리적인 요인이 중요하게 자리잡고 있다.
뉴욕타임스가 인터뷰 한 커플은 오랜 렌트 생활을 마치고 집을 장만한 뒤 “이제는 딸의 방 색깔을 내 맘대로 칠할 수 있다”고 기뻐하며 처음으로 자신의 집을 갖게 된 사람들의 심정을 대변했다. 울타리와 정원이 있는 마이홈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 아메리칸 드림이다.자녀들의 교육문제와 주거환경도 중요한 주택 소유의 동기다. 뉴욕을 비롯한 미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렌트 주거지역은 주택 밀집지역인 교외보다 공립학교 환경이 열악하다. 범죄율, 레저 조건도 차이가 심하다.
부동산 가격이 투기에 의해 좌우되고 단기 이익을 노려 무분별하게 주택 대출을 하던 한국과는 달리 어쨌든 실거주지 목적으로 장기 금리로 집을 사는 미국에서 “빚내서 집을 산다”라는 의미는 “감당 못할 대출금을 안고 사는 하우스 푸어(House Poor)”라는 개념과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논쟁이다. <박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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