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노동절, 당시 민주당 뉴욕 연방하원의원 척 슈머의 참모였던 짐 케슬러는 보스에게 팩스 한 장을 전송했다 : “우린 상하 양원을 모두 잃을 겁니다”
클린턴 취임후 첫 중간선거를 앞두고 등 돌린 민심을 읽은 슈머와 케슬러는 다음날 톰 폴리 연방하원의장을 만나 말했다. “11월 선거가 걱정입니다. 하원을 잃을 수도 있어요. 당신의 재선도 장담할 수 없어요…” 폴리는 대답대신 잡담만 늘어놓더니 슈머를 툭 치며 말했다. “이봐, 난 하원도, 내 재선도 걱정 안해”
그해 공화당은 하원 54석, 상원 8석을 추가로 획득해 40년만에 처음으로 양원의 주도권을 장악했고 16선을 바라보던 30년 베테런 폴리는 낙선했다. 1862년 이후 처음으로 현직 하원의장이 낙선한 미 선거사의 이변이었다.
2010년이 1994년의 재판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무성하다. 모두가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쓰나미를 예보한다. 갤럽, 월스트릿저널, 워싱턴포스트, CNN 등의 여론조사가 예외 없이 10%포인트 안팎의 공화당 지지도 우세를 전하고 있으며 미 연례정치학회는 모의실험 결과 공화당의 하원 장악 가능성을 79%로 점치고 있다.
민주당은 참패할까? 만약 선거가 오늘 실시된다면 그럴 것이다. 그러나 여론조사는 유권자의 현재 마음을 반영한 것이다. 11월 선거결과에 대한 예상이 아니다. 선거는 정확히 55일 남았다. 정치적으로 8주는 짧은 기간만은 아니다. 지금 공화당이 편승한 성난 민심의 물결에 휩쓸려 순식간에 지나갈 수도 있지만 예기치 못한 변수로 판세가 뒤집히는데 부족한 기간도 아니다.
변수는 선거직전 중대사건의 발생을 뜻하는 ‘10월의 충격(October surprise)’같은 외부적 요인일 수도 있고 앞으로 남은 시간을 빈틈없이 활용하는 내부적 선거 전략일 수도 있다.
금년이 94년과 다를 것이라는 전망은 민주당의 자세에서 시작된다. 공화당의 다수당 탈환을 상상조차 못했을 정도로 자만했던 당시와 달리 금년 재선에 임하는 모든 민주당 현역의원들은 아무도 재선을 당연시하지 않는다. 불리한 정치 환경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최선의 대비를 의미한다.
존 베이너 연방하원 공화당 대표는 100석 추가를 자신하며 새 하원의장이 될 기대에 부풀어 있지만 공화당의 ‘압승가도’에 걸림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두 가지가 그중 크다.
우선 ‘양날의 칼’로 규정된 티파티의 역할이다. 민심의 분노를 조직화하여 공화당 열기를 불붙이며 공화당 승세를 선도했지만 극단적 주장으로 내분을 초래하고 있다. 경선에서 승리한 너무 튀는 티파티 후보의 본선 경쟁력 약화도 문제다. 재선이 위태롭던 네바다주 해리 리드 연방상원 민주당 대표의 입지가 공화후보로 티파티의 주자 샤론 앵글이 결정되면서 한결 안정된 것으로 분석된다.
다른 하나는 정책의 부재다. 94년 공화압승을 뒷받침한 것은 뉴트 깅그리치의 탄탄한 조직이 제시했던 ‘미국과의 계약’이었다. 캠페인 전략이 아닌 통치 정책이었고 그것은 ‘다수당 공화당’이 성공적으로 정착하는데 훌륭한 길잡이가 되었다. 금년에도 9월말 새로운 통치플랜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티파티와 중도보수, 거기에 무소속 유권자까지 동시에 어필할 수 있는 메시지 찾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은 ‘오바마 반대’가 유일한 메시지다. 공화당 일각에선 더 이상은 필요치 않다고 지적한다. 오바마 정책에 대한 ‘심판’만으로도 금년 선거에서의 승산은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를 유권자의 신중한 ‘선택’으로 끌어가려고 애쓴다 : 불황을 초래했던 부시의 과거로 돌아갈 것인가, 회복기의 미래를 열어가는 오바마와 동행할 것인가?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주려는 공화당인가, 중산층의 일자리를 되찾아 주려는 민주당인가?
이번 선거의 키워드는 ‘경제’다. 모든 것을 압도하는 유일한 이슈다. 그러나 경기침체를 시작한 것이 오바마가 아니라는 것, 단숨에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모르는 유권자는 드물다. 문제는 좋아질 내일에 대한 확신이다. 민주당이 82년의 레이건처럼 희망의 메시지를 심어주는데 성공할 수 있다면 유권자의 마음잡기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언제나 적용되는 선거의 본질도 있다. “선거는 로컬이다” - 선거의 결과를 좌우하는 것은 공화당·민주당에 대한 전국적 지지 보다는 각 후보들에 대한 지역 유권자의 선호도라는 뜻이다.
민주당 정부 2년에 대한 ‘전국적 심판’이 아닌 유권자들의 ‘지역적 선택’으로 치러지는 선거에서 민주당이 경기회복의 내일을 확신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심어줄 수 있다면 판세는 얼마쯤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선거는 전통적으로 노동절을 기해 본격 캠페인에 돌입한다. 미 전국 곳곳이 끝없는 유세, 뜨거운 논쟁으로 달아오를 것이다. 현재 읽을 수 있는 대부분의 선거지표는 공화당 편이다. 고실업율 끈질긴 어두운 경제, 불안한 민심에서부터 대통령 당선후 첫 중간선거에선 집권당 패배라는 관례의 역사, 티파티가 불 지핀 투표 열기까지 모두가 공화당의 승리를 예보한다.
그러므로 여전히 선거전망의 타이틀은 승리인가, 패배인가가 아니다. “공화당은 압승할 수 있을까, 승리에 그칠까” “민주당은 참패할까, 선방할 수 있을까” - 앞으로 두 달은 이 타이틀의 변화추이를 지켜보는 기간이 될 것이다.
박 록 /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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