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년이 지났다. 역사적 대변혁의 순간들은 2년여의 짧은 시기동안 급박하게 전개되었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었다. 12월 22일에는 루마니아에서 유혈혁명이 일어났다. 김일성식 세습독재를 꿈꾸었던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 대통령 가족은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곧바로 처형됐다.
차우세스쿠 정권의 패망과 독일통일은 자연스럽게 북한정권의 붕괴와 한반도 통일을 예언할 것 같았다. 그러나 공산주의 붕괴 20년이 지났어도 2,300만 북한 동포들은 여전히 김일성-김정일 체제하에 살고 있으며 김정일-김정은으로 3대 세습으로 이어지려 한다. 20년 전의 동유럽과 지금 북한사회의 이같은 불일치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가?
북한만큼 감시체계를 절대화한 공산권 국가는 없었다. 스탈린 독재 시기에도 지금의 북한처럼 30 가구를 한 단위로 묶어 서로를 감시하도록 만든 ‘인민반’ 제도는 없었다. 1950년대 소련 주민들은 적어도 국내에서는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고 외국방송을 들을 수 있는 라디오를 구입할 수 있었다.
동유럽 국가들은 소련보다 더 자유로웠다. 교회를 중심으로 낮은 수준의 ‘시민사회’가 형성돼 있었다. 특히 동서독은 오랫동안 방송교류를 하면서 쌍방의 사회를 서로 잘 알고 있었다. 1985년 소련에서 페레스트로이카(개혁)가 시작됐을 때 동유럽에서는 이미 민주화 운동을 위한 바탕이 형성돼 있었다. 하지만 북한에는 지금도 ‘인권’ ‘시민사회’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중국은 마오쩌둥의 대약진 운동, 인민공사의 잇따른 실패와 문화혁명으로 10여년간 엄청난 내홍을 겪었고, 이를 교훈 삼아 1978년부터 시장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김일성-김정일 정권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을 수정주의로 몰아붙이고 폐쇄정책으로 일관했다. 결국 1994~1998년 북한에서는 300만 명이 굶어죽는 끔찍한 식량난이 발생했다.
그래도 김정일은 개혁개방으로 가지 않고 핵개발을 선택했다. 김정일에게 주민들은 자신의 정권을 유지시켜 주는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1998년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이같은 상황에서 전개되었지만 큰 오류가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북한은 개혁개방으로 나오지 않을 도리가 없다”고 진단했다. DJ는 국제사회가 북한정권의 안전보장을 담보해주고 경제지원을 계속하면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정일 정권은 햇볕정책을 역이용하면서 달러와 식량, 비료 등 경제지원을 받아내고 핵개발 업그레이드로 선군노선을 더 강화했다. 결국 햇볕 10년 동안 북한은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되었다. 만약 김대중 정부가 정확히 진단했더라면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과의 강력한 공조체제로 북한의 핵실험을 막아내는 방법이라도 찾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햇볕정책은 김정일의 선군노선에 완패한 것이다.
구소련 체제 변화의 가장 중요한 계기는 스탈린 사망에 따른 수령 독재의 약화였다. 북한의 경우 김정일이 사망하면 단기간내 체제변화의 과정에 바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 내부에도 의미있는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90년대 중반부터 북한주민들이 스스로 생존하기 위해 개척한 시장이 최근 더욱 활성화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시장을 통제하기 위해 단행된 당국의 화폐개혁은 완전히 실패로 끝났다. 시장의 확대는 북한의 수령-당-인민대중의 수직체계, 즉 지시-복종체계를 허물고 있다. 당국과 시장의 힘겨루기에서 시장이 승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비핵개방, 한반도 평화구축 및 평화통일로 가려면 한국정부의 더 적극적인 대북전략이 요구되고 있다. 천안함 폭침사건 이후 전개된 한반도 정세는 7,000만 남북 주민이 살고 있는 한반도의 제한적인 지리정치적 위상을 객관적으로 보여주었다. 천안함 폭침에 경고 성격을 띤 한미 서해 합동훈련을 중국은 실탄 훈련까지 하며 완강히 반대했다.
북한은 앞으로 2012년까지 정권생존과 3대 세습 작업을 위해 한반도 군사긴장을 계속 높여갈 가능성이 높다. 이와 같은 악순환 구조를 끊으려면 현재의 북한 수령체제를 개혁개방체제로 전환시키는 방안을 포함하여 통일정책을 추진해가는 것이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위한 대전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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